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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희대의 바람둥이로 만나는 낭만주의 미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한형철의 오페라, 미술을 만나다(5)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1756~1791)가 1787년에 프라하에서 초연한 작품입니다. 스페인의 실존 인물이자 전설적인 바람둥이인 ‘돈 후안’을 소재로 한 스토리입니다. 바람둥이의 대표주자인 돈 후안의 이야기는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곤 했지요. 사회규범을 어지럽히는 사회악을 응징함으로써 미풍양속을 바로 세우려는 교육적인 소재로도 널리 사용되었고요.

이 오페라는 초연 때부터 엄청난 환호 속에 성공을 거두었으며, 여러 전문가 그룹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오페라로 선정하는 등 현재까지도 모차르트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답니다.

막이 오르면 돈 조반니는 안나를 겁탈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그녀의 집에 침입합니다. 그녀의 비명에 안나의 아버지인 기사장이 나타나 돈 조반니와 결투하지만, 결국 그의 칼에 쓰러지고 돈 조반니는 도망칩니다.

길가에서 돈 조반니에게 버림받은 엘비라가 나타나 그에게 복수하겠다며 분노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복수심을 눈치챈 돈 조반니는 시종인 레포렐로에게 그녀를 떠넘기고 또 도망가지요. 레포렐로가 엘비라를 위로한답시고 돈 조반니가 만나고 헤어진 여자가 셀 수 없이 많으니 너무 억울해 말라고 하는데, 이건 더 열 받을 소리가 아닌가요?

광장에서 마을 사람들이 체를리나와 마제토의 결혼을 축하하며 합창을 하고 있는데, 돈 조반니와 레포렐로가 이곳에 옵니다. 첫눈에 체를리나에게 반한 돈 조반니는 압력을 행사해 그녀에게서 신랑을 떼어놓지요.

돈 조반니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체를리나를 유혹합니다. 체를리나는 처음엔 반항하나 결국 그의 화려함에 넘어가 그의 손을 잡고 돈 조반니의 집으로 갑니다. 가진 자의 화려한 유혹 앞에 없는 자의 무력한 욕망이 넘어가는 과정이 안타깝답니다. 도중에 엘비라가 나타나 돈 조반니의 행적을 폭로하며 체를리나에게 도망가라고 해, 다행히 봉변은 면하지요.

하지만 레포렐로가 능숙하게 체를리나를 저택에 잘 모셔 놓았다고 보고하자, 이에 흡족한 돈 조반니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초대하고 파티를 열고 재미있게 놀자며 아리아 ‘술에 취해 정신 잃을 때까지’를 부릅니다. 빠르고 경쾌한 이 곡은 끝없는 욕망을 나타내는 유명한 노래랍니다.

돈 조반니는 또 다른 꿍꿍이가 있어 레포렐로와 서로 변장하고, 그가 엘비라와 함께 자리를 뜨도록 연출합니다. 바로 엘비라의 하녀를 노리는 것이지요. 만돌린 연주와 함께 유명한 세레나데를 부르며 그 하녀를 유혹하는데, 마제토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낫 등으로 무장하고 몰려 왔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넘보는 귀족에게 작은 혁명을 일으킨 것이랍니다. 변장한 돈 조반니를 어둠 속에서 레포렐로로 착각한 마제토가 그에게 조반니의 행방을 물으며, 그를 찾아 죽이겠다고 씩씩댑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마을 사람들을 따돌린 돈 조반니는 자신에게 저항한 마제토를 오히려 두들겨 패고 도망칩니다.

한편 공동묘지로 도망해 레포렐로와 지난 경과를 이야기하던 돈 조반니가 재미있다며 웃자, 묘지의 조각상이 “그리 웃는 것도 새벽이 밝으면 끝이라”고 소리칩니다. 레포렐로는 놀라 자빠지지만 돈 조반니는 조각상에 놀란 기색을 숨기고 오히려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요. 저녁이 되자 결국 천둥소리와 함께 조각상이 집에 들어와 돈 조반니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는 끝까지 거부하고 결국 지옥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지요. 지옥에서는 그에게 더 큰 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합창이 울려 퍼집니다.

반성하지 않은 돈 조반니의 최후. [사진 flickr]

반성하지 않은 돈 조반니의 최후. [사진 flickr]

오페라에서 돈 조반니는 체를리나를 유혹하기 위해, 자신의 농토를 경작하는 ‘을’인 소작농 마제토의 처지를 악용해 그녀 곁에서 그를 내쫓지요.

무력한 마제토는 자신의 연인을 지키기 위해, 동네 사람들과 힘을 모아 낫을 들고 돈 조반니에게 저항합니다. 지금이야 당연한 사실이지만, 당시 귀족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했던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는 현장입니다. 모차르트의 전작 ‘피가로의 결혼’에서와 같이, 혁명이 오페라 속에서 시작되는 셈이지요. 비록 마제토는 돈 조반니에게 두들겨 맞고 쓰러지지만, 그 장면을 보는 프랑스와 파리의 시민 관객은 진정한 혁명을 꿈꾸게 되었답니다.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마다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예술이 시대 변화의 선두에 앞장서곤 했지요. 당시의 미술도 낭만주의 화가인 들라크루아에 의해 새로운 혁명적인 표현기법을 보여 줍니다. 그의 대표작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입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들라크루아.

이 작품은 7월 혁명(1830)을 소재로 한 그림이에요. 시민들이 갈구했던 낙원을 찾고자 외치는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영웅적 이미지를 상상하고 명암을 대비시켜 극적인 분위기를 표현함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성공적으로 끌어내고 있습니다.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된 이 작품은 세로 가로 260x325㎝인 대작인데요. 작품 앞에 관객이 서면,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혁명 희생자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들어옵니다. 처참한 모습의 그 희생자들 위로 눈부신 빛을 배경으로 프랑스의 삼색기를 든 자유의 여신이 행진을 이끌고 있고요.

그 좌우에는 권총을 치켜든 학생, 소총을 든 부르주아와 칼을 움켜쥔 농민 등 각계각층을 상징하는 모자를 쓴 대중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뜨거운 열망을, 화가는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답니다. 왕궁으로 가는 길을 막았던 바리케이드를 넘어서는 시민의 승리를 예고합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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