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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내라더니 "절 싫음 떠나라"···MZ 배운다며 이러면 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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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찬 LIG넥스원 대표(맨앞)와 임직원들. 사진 LIG넥스원

김지찬 LIG넥스원 대표(맨앞)와 임직원들. 사진 LIG넥스원

방위산업 업체인 LIG넥스원의 김지찬 대표를 포함한 10여명의 임직원이 지난 27일 경기 판교R&D센터에 모였다. 넥타이를 맨 사람은 없었고, 청바지를 입고 나온 이들도 상당수였다. 참석자 중 절반은 80~90년대생 젊은 직원이다. LIG넥스원의 임원들이 ‘MZ세대’ 로부터 최근 트렌드를 배우자는 뜻에서 만든 ‘리버스(Reverse) 멘토링’의 첫 모임이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로 인사를 나눈 이들은 ‘집단 셀카’로 첫날 출석 체크를 마쳤다. 각자 개성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애쓰다보니 어느새 웃음이 터졌고 어색함도 풀어졌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만드는 무기를 현장에서 직접 다루는 군인 대부분이 MZ세대”라며 “MZ세대의 생각과 회사 분위기가 무기에도 반영돼야 국방력도 튼튼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서 만남을 청했다”고 말했다. 이번 멘토링에 참여한 임원과 간부급 직원들은 후속 모임에선 후배들을 회사 밖에서 만나 2030 세대의 문화ㆍ관심사를 현장에서 보고 들을 예정이다.

학교·사회생활 선배가 후배에게 경험담을 들려주며 적응을 돕는 종전의 멘토링 개념을 뒤집은 ‘리버스 멘토링’이 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0~12월 1기 리버스 멘토링 그룹을 운영했다. 여기서 20대 직원들은 선배들에게 ‘인스타그램 체험’ ‘신세대 유행어 학습’ ‘방송과 문화 트렌드 이해’ 등을 가르쳤다. 교보생명도 회사 운영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선 MZ 세대의 의사소통방식이 회사에 자리 잡혀야 한다는 뜻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지난해 시작했다. 젊은 세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디지털 활용역량을 높이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확산하는 게 목표다. 이 과정에서 신상품이 발굴되거나 브랜드 이미지가 젊은층에 친숙해지는 성과도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매출 두배 늘린 구찌 

업계에서 리버스 멘토링 성공 사례로 꼽히는 대표적인 회사는 구찌(Gucci)다. 해마다 영업이익이 줄던 구찌는 2015년 새로 부임한 최고경영자(CEO)가 30세 이하 직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 경영회의 주요 안건을 토론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경험 중시’ ‘모피에 대한 반감’ 등 젊은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을 아이디어로 채택해 상품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3년 뒤(2018년) 구찌의 매출은 두배 이상(43억→98억 달러) 늘었고, 영업이익률도 26→40%로 증가했다. 매출의 62%가 35세 이하 고객으로부터 나온다는 점도 구찌가 얻은 수확이었다.

자료 LG경제연구원

자료 LG경제연구원

반면 오히려 조직 내 역효과를 낳은 사례도 있다. 지난해 6월 MZ세대 직원과의 간담회를 연 구현모 KT 사장은 경쟁사와의 급여를 비교한 직원에게 "통신 기반의 회사인 KT를 플랫폼 기반의 기업이나 재벌기업들과 비교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오히려 점수를 잃었다.

이후 구 사장은 “회사 대표로서 직원들이 기대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고 다짐한 귀한 경험이었다”고 수습했다. KT는 평균연령 29세인 ‘Y컬처팀’을 운영하며 신사업 아이디어를 경영진에 전달하는 리버스 멘토링의 본래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무엇이든 얘기해”는 No 

리버스 멘토링의 성공 요건으로는 ▶업무와 그 목적을 명확히 하고 ▶행사 위주의 진행을 지양 ▶젊은층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 꼽힌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은 “‘무엇이든 얘기해보라’고만 한 뒤, 별 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요구 사항은 많으면서 얘기할 기회를 주면 뒤로 숨는다’는 식으로 끝나는 실패 사례들이 많다”며 “논의 주제와 발언 제한 범위를 명확히 하면, 오히려 그 안에서 자유로운 의견이 나올 확률이 더 크다”고 말했다. 곽연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상급자에게 일대일 조언하는 게 어려운 우리 문화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도입 단계에선 여러 MZ세대 직원이 소수의 임원에게 트렌드를 조언해주는 방식이 한국 대다수 기업에 적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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