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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 가두고 "이건 운동장"…'특산품' 된 진돗개 충격 근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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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진도개테마파크의 진돗개. 왕준열PD

전남 진도군 진도개테마파크의 진돗개. 왕준열PD

천연기념물 제53호이자 우리나라 국견으로 사랑받아 온 진돗개. 전남 진도군은 대한민국 토종견인 진돗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다는 목적으로 지난 2012년 ‘진도개테마파크'를 개장했습니다(진도군은 심사를 통과해 천연기념물로 관리되는 진돗개를 ‘진도개’로 부릅니다).

[애니띵] 진돗개의 고향, 진도에 가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테마파크를 폐지해달라”는 글이 올라오면서인데요. 약 3만8000명의 동의를 얻은 해당 청원 글은 테마파크가 동물 학대의 일종이라며 “진도군이 진돗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홍보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진돗개들은 고향 진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직접 가서 확인해봤습니다.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도의 특산물 ‘진돗개’

진도의 명견인 진돗개가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다. 진도군은 세월호 사고 후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 플랫폼’을 구축한다. 프리랜서 장정필

진도의 명견인 진돗개가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다. 진도군은 세월호 사고 후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 플랫폼’을 구축한다. 프리랜서 장정필

“우리 황산이 잘했다고 박수 쳐주세요. 마지막 남은 인형도 가져와야지!”

지난 20일 오후 1시. 십여 명의 관람객 앞에서 진돗개가 장애물을 통과하고 재주를 부립니다. 강요나 윽박은 없습니다. 황산이는 훈련사와 하는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테마파크 폐지 청원에 대해 김동오(31) 훈련사는 “때리는 등의 가학 행위를 하면 금방 눈에 띈다”며 “개가 사람을 싫어하는 게 보이면 민원이 진작 발생했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진돗개가 썰매를 끈다고 오해를 받았던 ‘진돌이 썰매장’도 실제로는 아이들이 고무썰매를 타는 곳이었습니다.

입마개를 하고 경주를 하고 있는 진돗개들. 진도군청 홈페이지.

입마개를 하고 경주를 하고 있는 진돗개들. 진도군청 홈페이지.

가장 논란이 된 건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진돗개 경주였는데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청원인은 “뛰는 진돗개들은 입마개를 착용하고 있는 채로 체온조절도 힘들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테마파크 측은 “개들에게 입마개를 씌우는 이유는 뛰다가 흥분해 서로 싸울까 봐 예방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공연이나 경주가 학대는 아니라는 김 훈련사와 테마파크 측의 입장도 일리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후, 황산이가 돌아간 곳은 철창이었습니다.

철창에 갇힌 ‘특산물’ 진돗개

테마파크에는 황산이를 포함한 약 40마리의 진돗개들이 있습니다. 일부는 방사장에, 일부는 철창에서 사육견으로 길러집니다. 진도군으로부터 허가받은 농가에서 위탁한 강아지들은 테마파크에서 평생을 보냅니다.

특기가 있는 진돗개는 공연견이 되고, 어질리티(여러 개의 장애물을 통과해 목적지까지 달리는 놀이)에 소질이 없는 진돗개는 혈통 보전을 위한 사육견이 됩니다.

철창 속에 있는 아이들의 산책이 얼마나 자주 이뤄지냐고 묻자 테마파크 관계자는 “훈련과 산책이 이뤄진다”는 다소 두루뭉술한 답을 내놓더군요. 황산이처럼 공연견이 되는 게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르는 이유입니다.

테마파크를 관리하는 진도군청 공무원에게 “진돗개들이 테마파크 철창에 있다”고 말을 꺼내자 “그 정도면 운동장”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진도의 한 진돗개 분양 업체에서 분양홍보를 위해 새끼 진돗개의 사진을 찍고 있다. 새끼 진돗개들은 한 마리당 50만원에 혈통증명서와 함께 전국으로 배달된다. 백희연

진도의 한 진돗개 분양 업체에서 분양홍보를 위해 새끼 진돗개의 사진을 찍고 있다. 새끼 진돗개들은 한 마리당 50만원에 혈통증명서와 함께 전국으로 배달된다. 백희연

그래서일까요. 진도군 내 등록된 동물판매업 업체 17곳 중 한 곳인 한국진돗개보존협회에 가보니 테마파크에서 본 것과 비슷한 철창에 진돗개들이 한 마리씩 갇혀있습니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A씨는 “철창에 있는 수컷과 개인들이 집에 데리고 있는 암컷이 교배해 순수혈통이 태어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새끼 진돗개들은 50만원 정도에 혈통서와 함께 전국으로 배달됩니다.

농가 입장에서 진돗개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번식견입니다. 한 농가 주인은 “집에 암컷을 키우는데 1년에 한두 번씩 새끼를 낳는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했습니다.

철창 밖의 삶은 ‘마당개’

전남 진도에서 짧은 목줄에 묶인 채로 마당을 지키는 진돗개. 왕준열PD

전남 진도에서 짧은 목줄에 묶인 채로 마당을 지키는 진돗개. 왕준열PD

철창 밖의 삶도 가혹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테마파크 가까이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당개로 살아가는 진돗개를 만났습니다. 1m 목줄에 묶인 이 아이를 주인 할머니는 백구라고 부릅니다. 개의 다리가 아픈 것 같다고 하자 주인 할머니는 “안 아프다. 군에서 다 관리한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군에서 파악하는 진도 내 진돗개는 약 1만 마리. 목줄에 묶인 채 평생을 마당개로 살아가는 백구들까지 포함한다면 숫자는 훨씬 늘어나지만 관리 인원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오석일 진돗개 혈통관리팀장은 “진도 내의 진돗개는 약 1만 마리지만 이를 관리하는 건 5명으로 구성된 한 팀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진돗개 강아지. 왕준열PD

진돗개 강아지. 왕준열PD

진돗개가 ‘특산물’, 마당에 묶인 가축 대신 사람과 교감하는 반려견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진도=백희연 기자·왕준열PD(영상)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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