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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움직이면 더 빨려들어간다…해루질族 노리는 ‘갯골 주의보’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8일 오후 11시14분쯤 충남 태안군의 한 해수욕장에서 해산물을 잡던 A씨(59·여)가 갑자기 물에 빠졌다. 옆에 있던 남편이 물에서 허우적대던 A씨를 구했지만 이미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 출동한 119구급대가 심폐소생술을 하며 A씨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지난 29일 자정쯤 충남 보령시의 한 해수욕장에서 해루질에 나섰던 70대 남성이 바닷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 인근을 지나던 해양경찰관이 그를 구조한 뒤 119구급대에 인계하고 있다. [사진 보령해경]

지난 29일 자정쯤 충남 보령시의 한 해수욕장에서 해루질에 나섰던 70대 남성이 바닷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 인근을 지나던 해양경찰관이 그를 구조한 뒤 119구급대에 인계하고 있다. [사진 보령해경]

50여분 뒤인 29일 자정쯤 충남 보령시의 한 해수욕장에서도 해산물을 잡다가 물에 빠진 70대 남성이 인근을 지나던 해양경찰관에게 극적으로 구조됐다. 혼자서 바닷가로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던 B씨(70)는 갑자기 갯골(갯벌이 깎이거나 퇴적해 깊이 팬 고랑)에 빠졌다. 수심이 깊어 간신히 몸을 지탱하던 B씨는 육지 쪽을 향해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마침 구조요청을 들은 한 주민이 119에 신고했다.

야간 만조때 불어난 바닷물에 휩쓸려 #캠핑족 증가하면서 안전 사고도 급증

한밤중 갯골에 빠진 70대 남성, 인근 지나던 해경이 구조

신고를 접수한 119상황실은 경찰과 해경에도 관련 내용을 전파했다. 보령해양경찰서 상황실은 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대천파출소와 보령해경구조대를 현장에 급파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70대 노인이 차가운 바다에서 버티기에는 상황이 급박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B씨가 사고를 당한 해수욕장 주변에 마침 해양경찰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령해경 홍원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이호준 경장은 근무를 마치고 동료 직원 2명과 독산해수욕장 인근을 지나던 중 B씨의 구조요청 소식을 접했다. 곧바로 차량에서 장비(오리발)를 챙긴 뒤 백사장을 가로질러 B씨가 있는 쪽으로 헤엄쳐갔다. 이 경장은 B씨를 구조한 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그를 인계했다.

지난해 7월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인근 갯벌에서 해산물을 잡던 20대 여성이 갯벌에 빠졌다가 출동한 해경에 구조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지난해 7월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인근 갯벌에서 해산물을 잡던 20대 여성이 갯벌에 빠졌다가 출동한 해경에 구조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이호준 경장이 사고 지점에 도착했을 때 B씨는 수면 위로 겨우 얼굴만 내밀고 간신히 숨을 쉬던 상태였다. 몇분만 늦었더라도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호준 경장은 “익수자가 잘 버텨줘서 구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태영 보령해경서장은 “구조된 B씨는 건강한 상태로 이 경장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했다”며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때는 반드시 2인 이상 움직이고 야간에는 활동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휴대전화 없이 혼자 해산물 잡던 50대 남성도 구조 

앞서 지난달 27일 오후 9시20분쯤 보령시 무창포항 인근 갯벌에서도 해루질(바닷물이 빠진 시간을 이용해 해산물과 어패류를 잡는 행위)하던 C씨(50대)가 갯벌에 빠져 고립됐다. 다리를 움직일수록 몸은 갯벌 속으로 더 빨려 들어갔다. 당시 C씨는 휴대전화가 없던 상황으로 손전등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했다.

인근을 지나던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은 뻘배 등 구조장비를 이용, 그를 안전하게 구조했다. C씨는 저체온증 등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다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는 썰물로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라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해 8월 충남 태안의 해수욕장에서 해산물을 잡던 80대 부부가 불어난 바닷물에 빠져 출동한 해경이 구조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지난해 8월 충남 태안의 해수욕장에서 해산물을 잡던 80대 부부가 불어난 바닷물에 빠져 출동한 해경이 구조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봄철을 맞아 바닷가로 관광객이 몰리면서 익수(물에 빠짐)와 고립·조난 등 안전사고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바닷가 캠핑·차박족까지 증가하면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2017~2109년 해산물 채취 안전사고 126건 발생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2017~2019년 3년간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야간에 해루질에 나선 관광객의 안전사고가 126건 발생했다. 사고로 12명이 숨지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상반기(1~6월)에만 16건의 사고가 발생해 26명이 구조됐지만 2명은 목숨을 잃었다.

안전사고는 대부분 물때(밀물과 썰물 시간)를 확인하지 않고 갯벌에 들어갔다가 고립되거나 야간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해산물을 채취하다가 발생했다. 한밤중 혼자서 해산물을 잡다가 갑자기 불어 오른 바닷물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고 대부분이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했다는 게 해경의 설명이다.

충남 태안의 한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던 남성이 급격히 불어난 바닷물에 고립돼 출동한 해경이 긴급하게 구조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충남 태안의 한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던 남성이 급격히 불어난 바닷물에 고립돼 출동한 해경이 긴급하게 구조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해경과 소방본부는 해루질이나 갯바위 낚시, 갯벌체험 등을 할 때 반드시 안전수칙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야간 갯벌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밀물 시간을 확인하고 휴대전화로 알람을 설정해두면 바닷물에 빠지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휴대전화는 방수팩에 넣고 호루라기 지참, 구명조끼 착용, 2인 이상 이동 등도 해경이 당부하는 안전수칙이다.

해경 "반드시 밀물 시간 확인, 호루라기도 지참" 

태안해경 관계자는 “바닷가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한순간 방심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며 “사고를 당하면 당황하지 말고 해경이나 119구조대에 신고하면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선 해경이 불법 해루질을 집중적으로 단속했다. 동해지방해양경찰청은 지난 1~3월 불법 해루질 순찰과 불시 단속을 통해 32건(38명)을 적발했다. 단속 유형은 비어업인 포획·채취 16건, 체중 미달 어획물 포획 12건, 마을어장(양식장) 수산물 절도 4건 등이었다.

태안해경은 충남도 등과 합동으로 불법어구를 이용해 해산물을 무단 채취하는 행위를 연중 집중 단속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태안해경은 충남도 등과 합동으로 불법어구를 이용해 해산물을 무단 채취하는 행위를 연중 집중 단속하고 있다. [사진 태안해경]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라 ‘어업인이 아닌 사람이 정해진 어구 또는 방법 이외의 장비를 사용해 수산자원을 포획·채취하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마을어장에 들어가 수산물을 포획하면 절도 혐의로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태안·보령=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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