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유방의 길, 항우의 길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01 00:26

업데이트 2021.05.0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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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31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지략은 장량보다 못하고, 나라 살림은 소하보다 못하며, 군사를 이끄는 데는 한신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 내가 어떻게 황제가 됐겠는가. 이 걸출한 인재들을 적절하게 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한나라 유방은 혼돈에 빠져 있던 중국을 통일한 뒤 이렇게 술회했다. 널리 알려진 유방의 삼불여(三不如)다. 실제로 유방보다는 항우가 훨씬 더 강했다. 역발산기개세의 거구였던 용장 항우는 한때 40만 대군을 거느릴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데 비해 유방은 가짜 유방을 앞세워 항우의 포위망에서 간신히 탈출할 정도로 힘에서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모두가 항우의 천하 제패를 당연시했다.

대선주자들 캠프 벌써 문전성시
옥석 가리는 용인술이 성패 좌우

유방은 좌절하지 않았다. 참모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고 항우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측근들까지 자기편으로 삼으며 역전의 발판을 다져 나갔다. 반면 항우는 유방을 일찌감치 없애야 한다는 범증의 계책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당대의 책사였던 그를 내쫓으며 고립을 자초했다. “나는 세 사람을 적재적소에 기용할 줄 알았지만 항우는 단 한 사람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천하를 얻고 천하를 얻지 못한 차이를 유방은 용인술,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혼자만 잘났다며 독불장군처럼 행세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런 자들일수록 용인술은 낙제점이기 십상이다. 대권을 놓고 다투는 정치의 세계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역대 대선 정국에서도 고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개인의 인기에만 의존하다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정치인이 어디 한둘이었나. 게다가 요즘처럼 복잡다단한 사회에서는 지도자 한 명이 수많은 현안을 홀로 풀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대신 얼마나 민주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참모진을 운영하며 최대의 시너지를 끌어낼 수 있느냐가 리더십의 성패를 좌우하는 세상이 됐다.

대선주자들이 충성도 높은 예스맨뿐 아니라 쓴소리하는 참모를 등용할 만한 그릇이 되는지도 체크 포인트다. 조조가 순욱을 영입하려고 찾아갔을 때 순욱은 “내가 당신을 욕하는 게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조는 웃으며 “욕하는 것에 일리가 있다면 욕할수록 좋지요”라고 답했고, 그렇게 순욱의 마음을 산 조조는 이후 20년간 순욱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쓸 수 있었다. 『정관정요』에서 위징이 “군주가 영명한 것은 널리 듣기 때문이며 어리석은 것은 편협하기 때문”이라고 당 태종에게 직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잖아도 차기 대선 유력 주자들 주위에 벌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일부 캠프는 이미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얘기도 들린다. 킹메이커를 노리는 원로 정치인들의 물밑 신경전도 치열하다. 일각에선 단지 개인적 인연과 경력만으로 서열을 매기거나 진용을 짜는 데 대해 “저런 자들이 캠프를 이끌어서야 대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이 어떻게 옥석을 가릴지, 그 용인술의 내공을 보면 그들의 미래 또한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바둑처럼 정치판도 초반 포석을 보면 판세가 어느 정도 읽히는 법이다.

인류사에 이름을 남긴 지도자들은 “나는 왕이다”가 아니라 “나는 길이다”고 했다. 오늘날 그 길은 혼자 열어갈 수 없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과녁에 활을 쏴야 하는 절박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매 순간 적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려면 유능한 참모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과연 내년 3월 대선에 도전할 후보들은 유방의 길을 걸을 것인가, 항우의 길을 걸을 것인가. 잊지 말아야 할 건 40%대 지지도에 취해 그게 자신만의 40만 대군으로 착각하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게 역사가 증명하는 냉엄한 정치의 세계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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