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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암소 양지·유통에 산적 꾸미 ‘개성탕반’ 되살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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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24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방배동 골목길에 위치한 ‘개성찬방’ 앞에 선 엄지아 대표. 박종근 기자

방배동 골목길에 위치한 ‘개성찬방’ 앞에 선 엄지아 대표. 박종근 기자

개성탕반을 복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식 행사를 여러 날 한다고 한다.

1930년대 폐업 전설의 ‘무교탕반’ #외할머니가 해준 고깃국서 실마리 #예전 글들 뒤져 잊힌 레시피 복원 #고기 반, 밥·소면 반 ‘1인용 어복쟁반’ #6일부터 주 3일 100% 예약제로

개성탕반은, 출전은 모르겠으나 평양냉면·전주비빔밥과 함께 조선 3대 음식의 하나라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어떤 음식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옛 문사들의 글에 단편적 기록만 남아 있다. 그런 조각을 모아 음식을 되살렸으니 ‘복원’이라 한 듯하다. 호기심과 구미가 다퉈 샘솟았다.

한식 연구와 요리에 40년 넘게 매진한 학자와 요리사, 외식 사업가와 함께 복원한 개성탕반을 맛봤다. 둥근 몸통 위에 구연부를 날개처럼 넓고 높게 펼친 깔끔한 백자 탕기(湯器)에 가지런히 담은 개성탕반은 화려했다. 금싸라기처럼 노란 조를 두어 지은 쌀밥과 삶은 수연 소면을 담고 그 위에 양지머리·차돌박이 편육 각 3점, 유통 4점, 집게손가락 크기 등심 두 가닥과 움파 세 줄기를 꼬치에 꿰어 구운 산적, 지단·석이버섯 채, 실고추, 잘게 썬 대파를 꾸미로 올렸다. 맑은 국물은 3가지 고기 삶은 육수와 사골·잡뼈를 세 번 곤 국물을 따로 식혀 기름을 걷어 내고 합쳐 끓였다 한다. 누군가 1인용 어복쟁반 같다고 혼잣말을 했다.

“행세 좀 하던 이들이 즐긴 고급 음식”

개성보쌈김치. 박종근 기자

개성보쌈김치. 박종근 기자

북한의 『조선말 대사전』은 ‘탕반=국밥’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설명 항목이 하나 더 있다. ‘장국을 붓고, 산적과 혹살을 넣은 다음 고명을 얹은 밥’이라고 했다. 요즘 학자들은 국(탕)에 밥을 만 음식 전반을 (장)국밥 또는 탕반(湯飯)이라고 본다. 좁게는 소고기가 들어간 국물에 만 밥이라고 본다. 예전에는 국물 간을 조선간장으로 했기 때문에 장국밥이라고 했으나 요즘은 소금을 많이 쓰니까 ‘장(醬)’은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복원한 개성탕반이나 남아 있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탕반은 표준국어대사전의 두 번째 설명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음식 현장에서 탕반을 처음 발견한 곳은 서울 헌법재판소 옆, 재동사거리에 있던 ‘종가’라는 음식점이다. 요리 잘하는 배우 이정섭(75)씨가 ‘순 서울식 정통 한식’을 내세워 23년 동안(1989~2012) 운영한 그곳에 예약 메뉴로 있었다.

조랭이떡이 들어간 개성만둣국. 박종근 기자

조랭이떡이 들어간 개성만둣국. 박종근 기자

거기 가끔 드나들던 1997년 무렵 한가한 틈에 “탕반은 제사 때 끓이는 탕국에 밥 말아서 먹는 건가요” 하고 물어봤다. 서울 녹번동에 여러 대 세거한 집안 장손인 그분은 일생 연기자답게 특유의 거부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말했다. “그거랑은 차원이 다르지. 소고기 여러 가지가 들어가서 준비할 게 많어. 행세 좀 하던 사람들이 먹던 고급 음식이야. 그래서 예약을 해야 할 수 있어. 언제 미리 얘기하면 한번 해 드릴게 잡사 봐.” 하지만 먹어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24년 만에 탕반을 먹으니 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탕반은 200년 전에 이미 유력한 외식이었던 듯하다. 유만공(1793~?)이 1843년 편찬한 『세시풍요(歲時風謠)』에는 “냉면집·탕반집 길가에서 권력을 잡고 있으니 다투어 들어가려는 사람들 세도가의 문전 같네(麪局湯坊當路權 爭登人似勢門前)”라고 읊은 시가 나온다.(강명관 『조선풍속사②』)

탕반 요리법을 설명한 첫 기록은 19세기 말 한글 필사본 요리책 『시의전서』다. “좋은 백미를 깨끗이 씻어서 밥을 잘 짓고, 무를 넣어 잘 끓인 장국에 나물을 갖추어 만들어 국에 만다. 밥을 국에 말아 나물을 갖추어 얹고 약산적(藥散炙)을 위에 얹어 후춧가루와 고춧가루를 뿌린다”고 했다. 글만 보면 국물에는 고기를 쓰지 않은 듯하다.

소 허파 전. 박종근 기자

소 허파 전. 박종근 기자

음식점 탕반의 기록은 ‘탕반집 메뉴 장국밥’으로 나온다. 특히 청계천 무교동사거리 모전교 근처에 있던 ‘무교탕반’이 역사가 깊고 유명했다고 한다. 조선 24대 임금 헌종(재위 1834~1849)도 미복을 하고 먹으러 다녔다 하는데, 이 또한 출전 확인은 안 된다.

‘무교탕반’에 관해 박종화(1901~1981)는 “장국밥은 양지머리만을 삶아 맛이 좋은데 젖퉁이고기를 넣어 주고, 갖가지 양념으로 고명한 산적을 뜨끈뜨끈하게 구워서 넣어 주어 유통과 산적이 잘 어울려서 천하진미였다”라고 찬탄했다. 조용만(1909~1995)은 1930년대의 문화계를 회고하면서 “설렁탕이나 냉면, 비빔밥이 다 10전이었는데 무교탕반만 그 세 곱절이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또 신태범(1912~2001)은 “장국밥은 … 값은 30전으로 비쌌으며 양지머리·차돌박이 편육과 고기산적이 웃기로 화려하게 먹었다”면서 “그러나 193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폐문했고, 1940년대는 아무도 쇠고기를 구할 수 없어서 이런 국밥집들이 없어졌다”고 그 소멸을 증언했다.

조선 3대 음식에 꼽힌 개성탕반이 어떤 음식인지는 더 오리무중이다. 북한 원고로 남북이 공동 편찬한 『조선향토대백과』 ‘개성, 서울, 경기도의 지방음식’에도 이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문일평(1888~1939)이 쓴 ‘평양과 부여’라는 글에 “일찍이 평양과 개성의 정반대되는 몇 가지를 지적하여 말한 일이 있다. … 하나는 탕반이 발달하고, 하나는 냉면이 발달되었으니 탕반과 냉면은 정반대가 아닌가”라고 개성이 탕반의 고장임을 암시했고, 홍승면(1927~1983)은 “그런 집들이 빛을 잃은 후에도 무교탕반은 남아 있었지만, 탕반이라고 하면 서울식이라기보다는 개성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하여 서울에서 많이 먹던 탕반이 개성 음식이라는 의견을 남겼다.

‘개성찬방’ 주인 엄지아씨의 요리 본능

두 가지 김치와 함께 개인 쟁 반에 차려 낸 개성탕반. 1+ 이상 등급의 한우 암소 유통 등 삶은 고기 100~120g이 들어간다. 박종근 기자

두 가지 김치와 함께 개인 쟁 반에 차려 낸 개성탕반. 1+ 이상 등급의 한우 암소 유통 등 삶은 고기 100~120g이 들어간다. 박종근 기자

복원한 개성탕반은 ‘무교탕반’의 장국밥에 관한 문사들의 증언들에서 가려낸 사실의 조각들을 짜맞춘 바탕에 더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현대화한 음식으로 보였다. 그 작업을 해낸 사람은 ‘개성찬방’ 주인 엄지아(44)씨다. 외할아버지가 개성 출신이고, 요리를 좋아하는 외할머니 덕에 그는 개성 음식을 자주 먹으며 자랐다. 어머니도 요리를 좋아해 음식점을 경영하기도 했다. 본인도 디자인을 전공해 삼성그룹 인터넷사업부에 취업했지만 나와 웹 제작회사도 운영하고, 카페를 하면서 인테리어 디자인과 시공도 하다가 3년 전 개성 음식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옆집에 자취하는 언니에게 깍두기를 담가 줬다는 ‘요리 본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지난달 여러 차례 실전 적응훈련을 마친 개성탕반은 오는 6일부터 매주 목~토요일, 1일 3회(점심 12시 30분, 저녁 4시 30분, 7시) 손님을 맞는다. 좌석은 8석이고, 예약금 1인 1만원 완전 예약제이며, 식사는 1인 1주문 필수다. 고기는 ‘팔판정육점’ 한우 암소 1+ 이상 등급만 쓴다. 삶은 고기 100~120g이 들어가는 탕반 한 그릇에 3만2000원(1일 20인분 한정), 조선향미(골드퀸 3호)로 빚은 조랭이떡이 들어간 개성만둣국은 2만원. 김치 두 가지와 함께 개인 쟁반에 차려 낸다. 추가로 개성보쌈김치(2~3인용 3만5000원), 소 허파 전(1만2000원)을 주문할 수 있다.

이 집 음식은 전반적으로 싱겁다. 탕반과 만둣국은 무염에 가깝다. 고기 원래 맛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게 하려고 그런다 했다. 간은 입맛대로 맞춰 먹는 게 좋다.

엄지아씨는 ‘한국인의 밥상’ 박완서 10주기 추모 편(4월 22일 방송)에서 고인의 작품에 나오는 유족의 추억 음식 개성만두와 생간 전을 만들었다. 박 선생의 큰딸인 수필가 호원숙(67)씨는 “어머니 만두와 비슷해서 반갑고, 집에서 먹는 것 같다”며 감회에 젖었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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