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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 중과 무서워 집 판다? 되레 매물 줄고 집값 뛰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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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14면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더 무겁게 한 뒤, 일정 기간 유예해 다주택자의 매물이 시장이 나오게 하겠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7·10 부동산 대책의 정책 목표다. 정부는 조정대상지역 내에 두 채 이상 주택을 가진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重課)세율을 10%포인트 높였다. 대신 실제 적용은 11개월 뒤로 미뤘다. 유예 기간을 두면, 양도세 중과세가 두려운 다주택자가 집을 내다 팔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그게 오는 6월 1일이다.

다주택자 내달부터 세율 10%p 인상 #유예 기간 둬 집 팔게 한 정책 실패 #세율 완화·집값 상승 기대 ‘버티기’ #“세금 65%, 더 오른다고 무슨 의미” #강남권 중심으로 증여만 크게 늘어 #전문가 “거래세 낮춰 퇴로 열어야”

정부는 7·10 대책 때 종부세율도 함께 끌어올렸다. 0.6~3.2%였던 다주택자의 종부세율은 1.2~6%가 됐다. 양도세처럼 따로 유예 기간을 둔 건 아니지만, 종부세 과세 기준일이 6월 1일이어서 자연스레 유예 기간이 설정됐다. 이를 두고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유예 기간이 끝나면 다주택자의 보유세·양도세가 확 늘어나는 만큼 그 전에 집을 팔던가, 세금으로 다 토해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다주택자가 집을 팔게 해 매물을 늘리고, 이를 통해 집값을 잡겠다는 7·10 대책은 성공한 걸까.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재·보궐선거 변수 등이 있었지만 어쨌든 정부 바람과 달리 집값은 내리지 않았고, 아파트 매물은 7·10 대책 이후 되레 더 줄었기 때문이다. 부동산빅데이터업체인 아실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서울 아파트 매물은 월 7만 건 수준이었다. 7·10 대책 직전인 7월 1일에는 8만1000여 건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그런데 7·10 대책 이후 매물은 확 줄어 연말까지 월 4만 건 수준을 보였다.

올해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1~2월에는 월 3만 건 수준으로 떨어졌고 3월에야 다시 월 4만 건 수준으로 올라섰다. 매물이 줄면서 매매 건수도 확 줄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지난해 12월 7524건을 찍은 뒤 올해 1월 5771건, 2월 3853건, 3월 3692건으로 감소세다. 4월은 한 달이 거의 지난 상태이지만 1048건(28일 기준)에 그친다. 매물이 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거나, 양도세 완화나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버티기’에 나선 때문이다.

우선 6월 1일부터 양도세 중과세율이 10%포인트 오르긴 하지만 이미 양도세 부담은 역대 최고다. 서울 압구정동 케빈부동산 김세웅 대표는 “한 다주택 고객은 지난해 말 실제로 집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세금이 65%(현재 다주택자 양도세 최고세율)에 달해 포기했다”며 “여기서 10%포인트 더 오른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줄곧 “퇴로(양도세 완화)를 열어줘야 매물이 늘어난다”고 강조해 온 이유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정부와 여당도 올해 초 양도세 일시 완화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티면 되는구나’라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논의를 중단했다.

내다 팔 수 없으니 다주택자가 주택을 정리할 수 있는 길은 증여밖에 없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지난해 7월 3362건을 찍은 뒤 매달 2000~3000건을 유지했다. 올해 들어선 1월 1026건, 2월 933건으로 감소세였다가 3월 2019건으로 증가했다. 이는 특히 강남에서 두드러졌다. 지난해 12월 84건이던 것이 1월에는 65건으로 줄었는데 3월 812건으로 폭증했다. 한 달 기준 강남 증여 건수로는 역대 최대치다. 심지어 강남에선 매매보다 증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양도세 중과세율 인상을 앞두고 대거 증여에 나선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과거엔 고액자산가를 중심으로 증여 상담이 많았지만 문재인 정부들어 양도세가 급등하면서 요즘엔 평범한 중산층도 증여를 고민한다”고 전했다.

시장에선 정부와 여당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버티기에 들어간 다주택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본다. 올해 초 양도세 일시 완화 얘기가 나온 데 이어 재·보궐선거를 치르면서는 양도세를 완화할 것 같은 인상을 줬다. 선거에서 참패한 뒤엔 마치 양도세 완화를 확정한 것 같은 발언이 이어졌지만 ‘정책 후퇴’, ‘부자 감세’라는 비난이 나오자 “부동산 세금 논의는 당분간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양도세 완화론이 또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송영길 당대표 후보는 지난달 27일 “한시적으로 양도세를 풀어서 매물이 나오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값이 계속 우상향하고 있는 것도 다주택자가 버틸 수 있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도 확산하고 있다. 서울 중계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정리할 사람들은 이미 팔거나 증여했고, 양도세 중과세율이 오르는 만큼 6월 1일 이후에는 매물이 더 줄어들 것 같다”며 “재건축 호재와 맞물려 매물 감소가 집값을 또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유인책(종부세 등 보유세 강화)을 썼으면 퇴로를 열어줘야 매물을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펴낸 ‘주요국의 부동산 관련 세 부담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거래세수 비중은 1.8% 주요 8개국 평균(0.7%)의 2.5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평균(0.4%)의 4.5배에 달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초엔 “보유세는 높이고 거래세는 완화하겠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을 짓는 것만 주택 공급이 아니라 기존의 물건을 시장에 끌어내는 것도 중요한 공급 대책”이라며 “주요 선진국처럼 보유세는 높이되 거래세는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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