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인쇄술 전에는 보석 장식 박았던 귀한 몸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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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20면

책이 사는 세계

책이 사는 세계

책이 사는 세계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
서해문집

기술발달로 형태·보관법 변화
중세 땐 표지에 제목 안 밝혀

인쇄 혁명으로 출간 급증하자
공간 부족 도서관, 대출 장려

『책이 사는 세계』는 책과, 책이 깃들어 사는 책꽂이의 불가분 관계를 학술적 그리고 역사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그림이나 자료가 함께 실려 있어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다.

두루마리를 만드는 파피루스는 가장 먼저 사용된 글쓰기 재료였다. 그리스인들은 파피루스를 비블로스(byblos)라 불렀는데 이 말은 파피루스 수출 중심지인 페니키아의 도시 비블루스(Byblus)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어로 책을 가리키는 말인 비블리온(biblion)이 나왔으며, 다시 ‘진정한 책’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이 탄생했다.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1511년 목판화 작품 ‘자신의 방에 있는 성 제롬’(부분). 선반에 책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사진 서해문집]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1511년 목판화 작품 ‘자신의 방에 있는 성 제롬’(부분). 선반에 책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사진 서해문집]

로마시대엔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를 볼루미눔(voluminum)이라 불렀다. 영어에서 책(또는 권)을 뜻하는 볼륨(volume)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1~2세기에 재구성된 『일리아드』는 거의 90m에 달하는 파피루스를 채웠다고 한다. 현대의 컴퓨터 스크린에서의 스크롤링(scrolling)은 두루마리(scroll)의 작동 방식과 유사하다.

두루마리는 사용하지 않을 땐 끈으로 둘둘 말아 묶어 두거나 나무상자, 벽의 선반 등에 넣어 보관했다. 끄트머리에는 꼬리표를 붙여 내용 설명이나 저자 이름 등 필요한 정보를 표시하기도 했다. 기원전 300년께 건설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은 수십만 권의 두루마리를 소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독교시대 초기 수백 년 동안에는 제본한 수서(手書), 즉 코덱스(codex)가 있었다. 평평한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접어서 꿰매 철을 한 것이다. 라틴어로 ‘나무줄기’라는 뜻을 가진 코덱스라는 이름은 겉장이 나무로 덮여 있어서 붙여진 것인데 법전(code)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파피루스에 필사한 다음, 유대교 등 다른 종교의 두루마리 텍스트와는 구별되는 책으로 유통시키기 위해 코덱스라는 형태를 채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양의 가죽을 부드럽고 얇게 가공한 양피지(parchment)는 원산지 차르타 페르가메나(charta pergamena)에서 유래했다. 양 한 마리에서는 2절판 책 한 판(두 장)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책의 부분별 명칭. [사진 서해문집]

책의 부분별 명칭. [사진 서해문집]

중세 때만 하더라도 책 표지에 제목이나 저자를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성당 회랑에 있는 오목하게 들어간 공간은 열람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려면 사슬로 독서대에 묶어 놓아야 했다. 사슬책은 일부 도서관에서 18세기 말까지도 남아 있었다.

책을 어떤 식으로 진열하느냐에 따라 책 제목을 써넣는 자리도 달라졌다. 지금처럼 책등에 제목을 표시하기 전엔 책의 앞마구리나 윗마구리, 아랫마구리에 제목을 쓰고 이 제목이 보이게 서가에 뉘여 놓았다.

활판 인쇄술이 도입되기 전에는 많은 책이 정교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장정됐다. 종종 판자 위에 가죽이나 직물을 씌웠으며 때로는 금속 돋을새김을 하거나, 조각을 하거나, 보석을 달기도 했다. 책등은 책이 제대로 펼쳐지려면 구부러지거나 휘어져야 할 부분이었기 때문에 장식을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았다.

정교한 압형(押型) 장식을 한 가죽 장정이 돋을새김을 비롯한 3차원적 장정보다 유행하게 되자 책을 수직으로 꽂는 것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책등을 앞표지와 뒤표지에 맞먹을 만큼 장식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수직으로 꽂게 되면서 책을 지탱하게 하는 북 엔드도 필요하게 됐다.

15세기 중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주조는 책의 세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인쇄혁명을 불렀다. 책의 생산과 유통은 구별됐으며, 인쇄업자는 출판업자로 등록하지 않는 한 대중에게 책을 직접 팔 수 없는 시대도 있었다. 실제 제본은 제본 장인들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책의 출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많은 도서관은 선반 공간이 부족해졌는데 이 때문에 대출을 장려하기도 했다고 한다.

종이책의 e북화는 생각보다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종이책으로 된 영어사전, 국어사전, 백과사전은 디지털사전에 밀려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다 아예 책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책의 위기 속에 나온『책이 사는 세계』는 진정한 ‘책사랑꾼’들에게 잘 어울리는 선물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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