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18곡에 어린 파란만장 현대사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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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21면

트롯의 부활

트롯의 부활

트롯의 부활
김장실 지음
조갑제닷컴

열풍이라는 표현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난데없는 것 같은 트로트의 인기 말이다. 그보다는 잊고 있던 우리 내면을 재발견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머리로는 철 지난 장르라고 부정하고 있었으나 가슴 깊은 곳에선 결코 식은 적이 없었던 우리의 거대한 트로트 사랑 말이다.

소개하는 책은 제목부터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살아난 ‘부활’이니 말이다. 읽다 보면 우리 대중가요사는 처음부터,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 트로트의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설명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요에는 시대정신이 밸 수밖에 없고, 시대정신은 당대의 굵직한 정치사회적 사건과 필연적으로 연관되는데, 트로트야말로 발생 초기부터 한국인이 겪어야 했던 숱한 풍상, 그 안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 국제시장. 없는 게 없었다고 한다. 1953년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피난살이하며 싹튼 사랑의 슬픔을 노래한 곡이다. [사진 조갑제닷컴]

한국전쟁 당시 부산 국제시장. 없는 게 없었다고 한다. 1953년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피난살이하며 싹튼 사랑의 슬픔을 노래한 곡이다. [사진 조갑제닷컴]

가령 연극배우 겸 가수였던 이애리수(1910~2009)가 1928년 발표한 ‘황성옛터’는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이 배경이었다. (이 노래의 멜로디를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신의 세대를 말해준다. 그런데 무려 90년 전 노래였다니!) 작곡가 전수린은 만주 지역까지 돌아다닌 순회악극단 ‘연극사(硏劇舍)’의 바이올린 연주자였다고 한다. 황해도 배천에서 장마를 만나 굶주린 채 여관방 바깥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작사가 왕평과 함께 둘러봤던 고려왕조의 폐허 만월대를 떠올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황성옛터’. 인생의 허무까지 떠올리게 하는 이 노래가 식민지 조선인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하지 않았겠느냐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그다음이 기막히다. 노래는 고국에서 폭발했다. 단성사 공연에서 노래를 처음 접한 관객들이 극장 의자를 발로 차고 울면서 합창하는 사태에까지 이르자 일본 경찰이 공연을 중단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1920년대 이후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가요 18곡을 선정해 제작 일화, 시대 배경을 세밀하게 풀어낸다. 30년대 대표곡 ‘꽃마차’를 소개하는 꼭지에서는 일제에 의해 강제됐던 한인들의 만주 이민사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50년대 대표곡 중 하나로 선정한 ‘비 내리는 호남선’은 56년 대선에서 이승만에 맞섰다가 급서했던 신익희 추모 열기로 인해 삽시간에 유행했다는 사연을 들려준다. 책의 부제 ‘가요로 쓴 한국 현대사’에 충실한 모습이다. 트로트가 아닌 송창식의 74년 노래 ‘고래사냥’, 주현미의 88년 곡 ‘신사동 그 사람’까지 문화사적으로 풀어냈다.

86세대인 기자에게는 익숙한 노래도, 익숙하지 않은 노래도 있다. 유튜브로 원가수의 노래를 찾아 들으며 책을 읽다 보면 코끝이 찡해진다.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는 저자의 내공도 한몫하는 것 같다. 문체부 차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저자는 웬만한 대중가요의 발표 연도, 작곡·작사가, 얽힌 사연을 상세하게 꿰는 전문가다. 미국 카네기홀에서 주로 교민들을 대상으로 트로트 공연을 한 적도 있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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