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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는 악' 법 대신 복수…빈센조·마우스 통쾌함 뒤 찝찝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모범택시’에서 택시 기사 김도기(이제훈)가 장애인을 착취한 사업주에게 복수하는 모습. [사진 SBS]

‘모범택시’에서 택시 기사 김도기(이제훈)가 장애인을 착취한 사업주에게 복수하는 모습. [사진 SBS]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넘어 악에는 악으로 맞선다. 요즘 드라마에서 활약 중인 ‘다크 히어로’의 공통점이다.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의 이승기부터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의 이제훈,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의 송중기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하나같이 불의를 참지 않는다. 법으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응징할 수 없다면 범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이 꿈꾸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 죄지은 사람들은 발 뻗고 자도 당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사는 세상에서 이들의 등장은 통쾌함을 선사했다.

드라마서 인기끄는 다크 히어로들 #복수대행 '모범택시'시청률 16%질주 #마피아변호사·사이코패스경찰도 활약 #사적 복수 통쾌 vs 위험수위 반응 맞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복수대행 서비스를 내세운 ‘모범택시’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택시 회사인 무지개 운수는 오락기를 통해 신청하면 피해자 대신 복수에 나서는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범죄 피해자 지원 단체인 파랑새 재단을 통해 모인 유가족들은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처하게 될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나선다.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비슷한 범죄를 법보다 빠르게 처단하는 것. 장애인 착취부터 학교 폭력, 직장 내 괴롭힘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특수부대 장교 출신으로 젓갈 도적 사업가, 고등학교 수학 교사, 웹하드 업체 과장 등으로 변신해 적진에 잠입해 똑같이 갚아주는 김도기(이제훈)의 활약에 시청률은 6회 만에 16%(닐슨코리아 기준)까지 뛰었다.

법보다 빠른 사적 복수, 신을 대신한 심판

‘빈센조’에서 마피아 출신 변호사 빈센조(송중기)가 복수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힌 모습. [사진 tvN]

‘빈센조’에서 마피아 출신 변호사 빈센조(송중기)가 복수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힌 모습. [사진 tvN]

‘모범택시’가 사회의 공분을 일으켰던 사건들을 옴니버스 구성으로 담았다면, ‘빈센조’는 다크 히어로의 성장기에 초점을 맞췄다. 이탈리아 마피아 콘실리에리 출신으로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던 빈센조(송중기)는 금가 플라자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숨겨둔 금괴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번번이 좌절하면서 마피아 못지않은 카르텔을 형성한 대기업 바벨 그룹의 실체를 알게 되고 약자의 편에 서기도 한다. 박재범 작가의 전작 ‘김과장’(2017)의 TQ그룹 경리부 김성룡 과장(남궁민)이나 ‘열혈사제’(2019)의 국정원 출신 김해일 신부(김남길)보다 한 단계 레벨업 한 빈센조는 바벨화학 공장을 불태운다거나 바벨타워 분양권 입찰 현장에 폭탄을 설치하는 등 복수 스케일도 큰 편이다.

‘마우스’는 최근 등장한 다크 히어로 중 가장 극단적이다. 사이코패스 유전자 검사를 개발한 유전학 박사 겸 범죄학자 대니얼 리(조재윤)는 해당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정바름 순경(이승기)의 살인 충동을 이용한다. 어차피 누군가 죽일 수밖에 없다면 연쇄살인범이나 전과자처럼 사회에 해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동안 순간순간 드러나는 폭력성에 대해 연쇄살인범 성요한(권화운)의 뇌를 이식받은 후에 생긴 부작용으로 여겼던 그는 자신이 모든 사건의 진범임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빈센조가 최후의 심판은 신에게 맡기되 악인을 잡아 신 앞에 배달하는 것은 악인의 몫이라 믿었다면, 정바름은 한발 더 나아가 본인이 직접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신이 되고자 했다.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는 자 유죄” 등 성경 구절을 비꼰 대사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유 타당해도 행위 정당화되는 것 아냐 

‘마우스’에서 정바름 순경(이승기)이 범인에게 복수를 하고자 갈대밭을 찾은 모습. [사진 tvN]

‘마우스’에서 정바름 순경(이승기)이 범인에게 복수를 하고자 갈대밭을 찾은 모습. [사진 tvN]

전문가들은 다크 히어로의 사적 복수가 횡행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다. 작품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폭력성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면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보편화하면서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그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전부터 다뤄져 왔지만 드라마도 실시간 방송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골라서 몰아보는 독립된 콘텐트로 바뀌면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고 시청 등급도 19세 이상으로 조정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유가족이나 피해자에 대한 묘사 방식도 상당히 폭력적”이라는 설명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법 집행이 원칙대로 된다면 모두가 사법제도에 호소하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형벌의 수위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 보기 어렵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다크 히어로의 활약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적 복수의 이유가 타당하다고 해도 그 행위 자체는 불법이기 때문에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며 “특히 ‘마우스’는 어린이들이 피해자로 나오는 장면이 너무 많고 살인에 살인으로 맞서는 것은 위험수위”라고 덧붙였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악을 악으로 처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지만 불법을 자행한다 해도 ‘괴물’처럼 현행법 안에서 처벌을 받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계기로 함께 고쳐나가는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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