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악몽, 곁에서 봤다···"달라도 차별화 없다"는 이재명

중앙일보

입력 2021.04.30 08:00

업데이트 2021.04.30 08:13

“다름은 있더라도 차별화는 없다”(지난 22일 페이스북)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선 핵심 노선이다. 그는 러시아산 스푸트니크 V 백신 도입을 주장하며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 때도 ‘민주당 정체성’과 ‘원팀 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만으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노무현·문재인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틀에서 대선을 치를 것”이라는 게 이 지사 측의 설명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차별화’ 앞세운 DY 참패의 기억

이 지사는 지난 22일 “누가 뭐래도 민주당은 저의 요람이며 뿌리다. 정치 입문 이래 한 번도 당을 떠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수년간 친문(親文) 진영 일각에서 거론돼 온 ‘이재명 탈당설’에 대한 강력한 부인이었다.

이 지사 측의 한 핵심 의원은 2007년 정동영(DY)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언급했다. 그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낮을 때에도 김대중 정신을 계승했고 결국 승리했다. 반면 DY는 정반대의 길을 가서 패배했다”고 지적했다.

2007년 8월 5일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창당대회에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축사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8월 5일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창당대회에서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축사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DY는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 여당(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았다가, 2007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다. 지지율이 뚝 떨어진 노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선 행보였다.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주자로 확정된 뒤엔 이런 선 긋기가 더 강해졌다.

2007년 9월 11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연 모습. 이날 노 대통령은 “옛날 열린우리당의 무슨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DY)도 ‘차별화’라고 해서 참여정부를 공격하는 것을 선거 전략으로 채택했다. 졸렬한 전략이다. 필패전략 아닌가. 제가 아무리 지지도가 낮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2007년 9월 11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연 모습. 이날 노 대통령은 “옛날 열린우리당의 무슨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DY)도 ‘차별화’라고 해서 참여정부를 공격하는 것을 선거 전략으로 채택했다. 졸렬한 전략이다. 필패전략 아닌가. 제가 아무리 지지도가 낮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이에 노 대통령은 대선을 100일 앞둔 기자간담회(2007년 9월 11일)에서 DY의 ‘차별화’에 대해 “졸렬한 전략이다. 필패 전략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예언은 현실이 됐다. “노무현 정부와 완전히 다른 정부”를 공언한 DY의 대선 득표율은 26.1%에 불과했다. 야권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로 분열됐던 점을 고려하면 기록적인 참패였다. 당시 이 지사는 DY 캠프 조직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 공동대표였다.

2007년 12월 19일 실시된 17대 대선 결과. 네이버 캡처

2007년 12월 19일 실시된 17대 대선 결과. 네이버 캡처

李 “金ㆍ盧ㆍ文 끌어온 수레, 밀어갈 것”

DY계로 정치 입문을 한 이 지사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수평적 정권교체의 역사적 과업을 이루신 김대중 대통령님,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여신 노무현 대통령님, 촛불 항쟁의 정신 위에 3기 민주정부를 이끌고 계신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앞장서 끌어오신 수레를 민주당원들과 함께 저 역시 힘껏 밀어갈 것”(22일 페이스북)이라며 민주당의 본류를 자처하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 3월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멘토인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경기도 국제평화교류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지난 25일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명칭은 ‘공정벌금제’로 바꿨다. 이 지사 측은 “문 대통령의 제도를 계승하면서도, 본인의 정책 브랜드로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친문 인사들과의 접점 찾기도 활발하다. 2016년 국민의당 돌풍 때 민주당에 잔류하며 문 대통령의 ‘호남 버팀목’이 되었던 민형배 의원이 지난 1월 가장 먼저 이 지사 지지를 선언했다. 이 지사 측은 다음 달 발족하는 지지 의원모임(대한민국 성장과 공정 포럼)에 최대한 많은 친문 의원을 영입하겠단 계획이다. 포럼에 관여하는 한 의원은 “민 의원뿐 아니라, 또 다른 청와대 출신 의원도 포함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친문도 “공정벌금 찬성”…완전 결합 가능할까?

민주당 내 친문 의원들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연초만 해도 이 지사의 전국민 재난지원금 주장을 비판했던 친문 김종민 의원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공정벌금제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이 지사의 공정벌금제를 찬성한다”는 글을 올렸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8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강성 친문들이 주로 활동하는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선 최근 이 지사를 비판해온 한 권리당원이 당 윤리심판원에 의해 제명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 16일 당선된 윤호중 원내대표가 이해찬 전 대표의 복심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해찬 전 대표는 과거 이 지사에 대한 당내 징계 요구를 일축했고, 현재도 이 지사와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지사가 친문과 완전히 결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도 적지 않은 친문 의원들이 이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가 아닌 ‘친문 제3후보론’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일각에선 정세균 전 총리가 그런 역할을 수행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일부 친문이 분화돼서 이 지사에게 흡수될 순 있지만, 친문 전체와 이 지사가 융화되기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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