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은 있더라도 차별화는 없다”(지난 22일 페이스북)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선 핵심 노선이다. 그는 러시아산 스푸트니크 V 백신 도입을 주장하며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 때도 ‘민주당 정체성’과 ‘원팀 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만으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노무현·문재인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틀에서 대선을 치를 것”이라는 게 이 지사 측의 설명이다.
‘차별화’ 앞세운 DY 참패의 기억
이 지사는 지난 22일 “누가 뭐래도 민주당은 저의 요람이며 뿌리다. 정치 입문 이래 한 번도 당을 떠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수년간 친문(親文) 진영 일각에서 거론돼 온 ‘이재명 탈당설’에 대한 강력한 부인이었다.
이 지사 측의 한 핵심 의원은 2007년 정동영(DY)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언급했다. 그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낮을 때에도 김대중 정신을 계승했고 결국 승리했다. 반면 DY는 정반대의 길을 가서 패배했다”고 지적했다.
DY는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 여당(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았다가, 2007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다. 지지율이 뚝 떨어진 노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선 행보였다.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주자로 확정된 뒤엔 이런 선 긋기가 더 강해졌다.
이에 노 대통령은 대선을 100일 앞둔 기자간담회(2007년 9월 11일)에서 DY의 ‘차별화’에 대해 “졸렬한 전략이다. 필패 전략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예언은 현실이 됐다. “노무현 정부와 완전히 다른 정부”를 공언한 DY의 대선 득표율은 26.1%에 불과했다. 야권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이회창 무소속 후보로 분열됐던 점을 고려하면 기록적인 참패였다. 당시 이 지사는 DY 캠프 조직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 공동대표였다.
李 “金ㆍ盧ㆍ文 끌어온 수레, 밀어갈 것”
DY계로 정치 입문을 한 이 지사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수평적 정권교체의 역사적 과업을 이루신 김대중 대통령님,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여신 노무현 대통령님, 촛불 항쟁의 정신 위에 3기 민주정부를 이끌고 계신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앞장서 끌어오신 수레를 민주당원들과 함께 저 역시 힘껏 밀어갈 것”(22일 페이스북)이라며 민주당의 본류를 자처하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 3월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멘토인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경기도 국제평화교류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지난 25일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명칭은 ‘공정벌금제’로 바꿨다. 이 지사 측은 “문 대통령의 제도를 계승하면서도, 본인의 정책 브랜드로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친문 인사들과의 접점 찾기도 활발하다. 2016년 국민의당 돌풍 때 민주당에 잔류하며 문 대통령의 ‘호남 버팀목’이 되었던 민형배 의원이 지난 1월 가장 먼저 이 지사 지지를 선언했다. 이 지사 측은 다음 달 발족하는 지지 의원모임(대한민국 성장과 공정 포럼)에 최대한 많은 친문 의원을 영입하겠단 계획이다. 포럼에 관여하는 한 의원은 “민 의원뿐 아니라, 또 다른 청와대 출신 의원도 포함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친문도 “공정벌금 찬성”…완전 결합 가능할까?
민주당 내 친문 의원들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연초만 해도 이 지사의 전국민 재난지원금 주장을 비판했던 친문 김종민 의원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공정벌금제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이 지사의 공정벌금제를 찬성한다”는 글을 올렸다.
강성 친문들이 주로 활동하는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선 최근 이 지사를 비판해온 한 권리당원이 당 윤리심판원에 의해 제명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 16일 당선된 윤호중 원내대표가 이해찬 전 대표의 복심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해찬 전 대표는 과거 이 지사에 대한 당내 징계 요구를 일축했고, 현재도 이 지사와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지사가 친문과 완전히 결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도 적지 않은 친문 의원들이 이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가 아닌 ‘친문 제3후보론’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일각에선 정세균 전 총리가 그런 역할을 수행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일부 친문이 분화돼서 이 지사에게 흡수될 순 있지만, 친문 전체와 이 지사가 융화되기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