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용호의 시시각각

대통령의 공감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1.04.30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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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재의 위기를 있는 그대로 말함으로써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했다. 국민은 대통령의 이런 솔직함에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위로 없는 대통령의 백신 메시지
국민 불안에 사과, 솔직한 설명 없어
국민의 어려움 위로에 직접 나서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리더십에 관한 책『소통의 힘』에 나오는 대목이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 루스벨트의 대응을 책은 이렇게 평가했다. 루스벨트는 공감 리더십으로 진보 30년 집권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는 라디오 대국민 담화 '노변정담'으로도 신망을 얻었다. 루스벨트 연구자들은 "노변정담을 통해 국민은 자신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친밀감을 느꼈다. 대통령이 자신을 신뢰하고 고민을 직접 상담해 주는 사람이라 여겼다"고 적고 있다.

루스벨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존경하는 인물이자 롤 모델이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정부 프로젝트 이름이 '한국판 뉴딜'이다. 대선후보 시절 그와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적도 있다.

하지만 임기 말로 향하는 문 대통령과 루스벨트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롤 모델이 가진 솔직함과 공감 능력을 문 대통령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백신 국면을 보자. 접종률이 5.43%(29일 0시 기준)로 턱없이 낮다. 모범 K방역에 취해 백신 조기 확보에 실패한 건 팩트다. 있는 대로 사실을 설명하고 미흡한 건 사과했어야 했다. 하지만 백신 불안이 고조됐던 지난 12일 문 대통령은 "다방면의 노력으로 백신 수급의 불확실성을 현저하게 낮추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접종률이 아프리카 국가보다 못한 2%대였지만 그런 말은 안 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심지어 올 초엔 "백신이 충분히 빨리 도입됐고 충분한 물량이 확보됐다"고도 했다. 모더나·노바백스 백신 수급을 둘러싸곤 문 대통령과 정부 사이에서 말이 수시로 바뀌었다. 충분하다더니 러시아 백신까지 검토하라는 말도 나왔다. 상황이 이러면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든, 고개를 숙이든 하나는 했어야 했다.

더 의아한 건 자화자찬이다. 최근 국무회의나 수석·보좌관 회의에선 "세계적 방역 모범국가, 경제 위기 극복에서 선도 그룹"(19일), "경제는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빛을 향해…"(13일) 등의 자찬이 연이어 나온다. 급기야 27일에는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나 경제성장의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고 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을 뛰어넘자 나온 말인데 단언하긴 이르다. 재난지원금 효과로 인한 세금 주도 성장일 가능성이 큰 데다 당장 다음날 쏟아진 확진자가 755명이었다. 아직 내수와 고용은 얼음이다. 자찬보다 여전히 견디고 위로할 때가 아닌가.

소통에 문제가 생긴 건 훨씬 전부터였다. 지난해 추미애-윤석열 갈등,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윤미향 사건 등이 나라를 시끄럽게 해도 대통령의 메시지는 침묵하거나 적절한 타이밍을 찾지 못했다. 지지율 하락은 이와 무관치 않다.

다음 달 10일이면 취임 4년이다. 꼭 1년이 남는다. 지도자는 평소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하지만 어려울 땐 위로가 돼야 한다. 문 대통령은 그 점에서 한참 부족했다. 루스벨트의 노변정담을 생각한다면 메시지 전달 방식을 바꿔야 한다. 수석·보좌관회의나 국무회의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문 정부가 비판해온 박근혜 정부의 방식이다. 왜 국민이 참모들에 대한 대통령 지시를 들어야 하나. 거기에 무슨 신뢰나 친밀감이 있겠나. 대통령은 국민과 직접 얘기해야 한다. 소통하는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은 끝까지 허언으로 남길 것인가. 비록 레임덕이 닥칠지라도 코로나와 싸워야 하는 1년이 중요하기에 하는 말이다.

며칠 전 민주당 초선 고영인 의원이 국회에서 "(국민의 불안감은) 백신이 충분히 계약돼 있나, 또 안정적으로 수급은 되느냐가 아니겠느냐"며 "선거에서 패한 이유는 국민 고통과 불안을 알고 공감하는 능력이 없어서"라고 했다. 여당에서 나온 귀한 자성이었다. 이 정도에도 위로가 되는데 루스벨트 스타일로, 직접 나섰으면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정치에디터

신용호 정치에디터

신용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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