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병상의 코멘터리

아버지 김수환, 어머니 정진석을 기리며

중앙일보

입력 2021.04.29 20:25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 2006년 2월 22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 받은 정진석 추기경(왼쪽)이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06년 2월 22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 받은 정진석 추기경(왼쪽)이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영화 '두 교황'의 보수 베네딕토와 진보 프란치스코처럼 대조적인 추기경
김수환 진보리더십, 정진석 보수리더십이 함께 한국가톨릭 성공 이끌어

1.염수정 추기경이 28일 정진적 추기경 선종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아버지였다면 정진석 추기경은 어머니’라며 추모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은 우리나라 최초 추기경, 27일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1931-2021)은 두번째 추기경, 염수정 추기경은 세번째. 이 세분이 한국가톨릭의 대표입니다. 염 추기경만 남았습니다. 통상 신자수 등을 감안해 교황이 임명하는 한국몫 추기경은 두 명입니다.

2.김수환과 정진석..두 추기경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마치 영화 ‘두 교황’에 등장하는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베네딕토 교황은 독일출신으로 보수의 화신입니다. 라칭거 추기경 시절 교황청 교리담당으로 워낙 강경보수라 ‘신의 로트와일러(독일 맹견)’라 불렸습니다. 그는 저명한 신학자입니다. 보수정통이라 해방신학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남미 해방신학의 대표격입니다.

3.김수환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같습니다.
가난한 옹기쟁이 아들로 태어나 어렵사리 사제가 된 김수환은 1956년부터 63년 사이 독일 뮌스터대학에 유학합니다. 그 시점과 그 장소는..우연히도 세상의 역사와 기독교의 역사, 양면에서 동시에 대전환 격동기였습니다. 2차대전이후 기존의 권위와 질서에 도전하는 사회혁명(68학생운동)이 유럽, 특히 독일을 휩쓸었습니다.

4.당시 사회적 변화를 정면으로 돌파한 가톨릭의 대전환은‘제2차 가톨릭 공의회’(1962년-65년)입니다. 전세계 주교들이 모여 4년간 가톨릭의 주요 철학과 방침을 모두 재정리했습니다.
요체는 교회의 변화와 쇄신, 다른 종교와의 화해, 세상과의 소통입니다. 자신만의 성채에 갇힌채 세상을 째려보던 독선적 교회가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덕분에 라틴어 대신 자기 나라 말로 미사를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개신교와의 화해도 시작됐습니다.

5.김수환은 이런 세상과 교회의 대격변 태풍을 핵중심에서 목도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런 흐름을 주도하던 기독교사회학을, 대표학자인 회프너 교수에게 배웁니다. 신부였던 회프너 교수가 소임을 맡아 대학을 떠나고, 후임으로 온 사람이 바로 보수정통 라칭거(베네딕토)였습니다. 기막힌 우연입니다. 김수환은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귀국합니다.

6.귀국후 김수환은 한국민주화의 중심이 됐습니다.
물론 정치가 아니라..‘인간존엄성’을 지키려는 종교적 소임이었다고 합니다만..결과적으론 민주투사였습니다. 1971년 박정희 유신정권의 출범에 대해 ‘독재 아니면 폭력혁명에 직면할 것’이라고 공개경고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당시 명동성당 시위대를 체포하려는 경찰에게 ‘나와 신부와 수녀들을 모두 밟고 지나가라’며 막았습니다.

7.정진석 추기경은 김수환과 너무 다릅니다.
명동본당 회장이었던 외할아버지 밑에서 여유 있게 자랐습니다. 전쟁중 참상을 보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1968년 이탈리아 유학해 교회법을 전공했습니다.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교회에서 법이란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대표저작도 ‘교회법해설’입니다. 베네딕토 교황처럼 라틴어를 잘 했고, 또 좋아했습니다.

8.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이었습니다.
장교출신 정진석은 부친의 월북과 숙청, 전쟁중 참상 등을 경험해서인지 북한문제에 특히 단호했습니다. 북한의 전쟁책임 인정과 반성을 강조했습니다.
정진석은 1980년 청주교구장 시절 청주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사형수 김대중의 가족들로부터 봉성체를 요청받았으나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발언으로 정의구현사제단으로부터 퇴진요구를 받았습니다.

9.그럼에도 불구하고..정진석 추기경은 김수환 추기경 이후 한국 가톨릭을 잘 이끌었습니다.
한국 가톨릭은 적지않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모범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신자도 도시 중심으로 여전히 늘고 있습니다.
김수환의 격동기 리더십과 정진석의 안정적 리더십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그 역할은 곧 아버지와 어머니 같았습니다.
양친을 잃은듯한 슬픔으로 조의를 표합니다.
〈칼럼니스트〉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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