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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수효과 없다…상위 1%가 더 내야" 바이든의 '큰 정부' 선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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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28일 하원 본회의장에서 첫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28일 하원 본회의장에서 첫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으로 '큰 정부'를 제시했다. 팬더믹 종식과 경제 재건을 연방정부가 직접 주도하겠다는 것으로, 그 재원은 부자 증세를 통해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인프라·일자리·교육 등 6조 달러 예산으로 #일자리 만들어 미국 중산층 재건 구상 #'작은 정부' 레이건 후 40년 만에 큰 정부로 #"낙수 효과 작동 안 해…바텀 업 방식으로" #"中과 경쟁…반도체·전기차 미국이 이끌 것"

1980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정부가 모든 문제의 원천이라며 작은 정부를 내세웠다. 이후 40여년 간 미국을 지배한 작은 정부 철학을 버리고 바이든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큰 정부 시대를 열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통신 등이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둔 28일(현지시간) 첫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일자리와 교육, 사회적 돌봄 등을 담은 4조 달러(약 4500조원) 규모의 초대형 지출 예산을 의회가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날 소개한 '미국 가족 계획' 예산 1조 8000억 달러(약 1993조원)와 지난달 발표한 인프라 투자 구상인 '미국 일자리 계획' 예산 2조2500억 달러(약 2492조원)를 더한 규모다. 이미 의회를 통과한 1조 9000억 달러(약 2106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긴급구호 예산까지 더하면 총 6조 달러 규모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구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도로와 전기, 수도를 개선하고, 영유아 보육과 성인의 커뮤니티 칼리지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유급 병가와 돌봄 휴가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일자리 계획'을 "한 세대에 한 번 있을법한 미국에 대한 투자이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일자리 계획"이라고 불렀다. 특히 이번 계획은 오직 정부만이 할 수 있는 투자라면서 "미국을 재건하기 위한 블루칼라 청사진"이라고 추켜세웠다. 인프라 일자리의 90%는 대졸 학력이 필요치 않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앞으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위기가 다시 기회로 바뀌고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1시간 5분간 이어진 연설은 상당 시간을 천문학적 금액의 경기 부양 예산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중요한 이유로 중국과의 경쟁을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21세기에 승리하기 위해 중국과 다른 나라와 경쟁하고 있다"면서 투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바이든은 "미국 노동자가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에서 세계를 이끌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인공지능(AI), 배터리, 바이오 기술, 컴퓨터 칩, 청정에너지 등 미래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고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문학적인 예산에 필요한 재원은 부자와 기업에 대한 증세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업과 미국 최상위 부자 1%가 이제는 공정한 몫을 부담해야 할 때"라며 "연간 40만 달러(약 4억4300만원) 이하 소득자는 세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방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리는 안도 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낙수 경제 효과(trickle-down economics)는 결코 작동한 적이 없다"면서 "이제는 경제를 바닥에서 위로,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성장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예산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중산층을 재건하겠다는 구상이다.

대외 관계와 관련해서는 동맹과의 협력을 다짐했다. 바이든은 "테러리즘, 핵확산, 대규모 이주, 사이버 안보, 기후변화 등 어떤 나라도 우리 시대의 위기를 홀로 대처할 수 없다"면서 동맹과 함께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핵 문제 해법으로는 외교와 억지를 병행하겠다고 제안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세계 안보에 위협이 되는 이란과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해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해 외교와 단호한 억지(stern deterrence)를 통해 양국이 제기하는 위협에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는 경쟁 관계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을 4번, '시진핑 주석'을 3번 언급했다. 바이든은 "시 주석에게 미국은 경쟁을 환영하지만, 갈등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면서 중국을 상대로 미국의 이익을 옹호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강력한 군사력 주둔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9월 11일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재차 설명했을 때 양당에서 모두 박수가 나왔다.

취임 이후 역점을 뒀던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거둔 성과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민주주의의 무기고였던 것처럼" 미국이 다른 나라를 위한 '백신의 무기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1600명이 모일 수 있는 하원 본회의장은 이날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200명만 입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각각 "마담 바이스 프레지던트(부통령)", "마담 스피커(의장)"라고 인사하며 의회 연설하는 대통령 뒤에 두 여성이 앉은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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