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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일본군 같다" 日도 욕한 스가의 올림픽 책임회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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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확대가 계속되는 데 스스로 (올림픽) 중지를 결정하지 못한다니, 전쟁 중에 무모한 작전을 강행해 수많은 희생자를 낸 일본군(軍)과 똑같다."

일본의 한 의료관계자가 29일자 도쿄신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도 "올림픽 개최 결정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하는 것"이라며 책임을 떠넘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를 이렇게 비판했다.

올림픽 85일 남았는데 코로나 상황 연일 악화 #초조한 올림픽 관계자들 '책임 떠넘기기' 급급 #스가, "개최 결정은 IOC 권한"이라며 책임 회피 #오미 분과회장 "개최 여부 논의 시작해야 할 때"

일본 도쿄 올림픽박물관 앞에 세워진 오륜 조형물. [AP=연합뉴스]

일본 도쿄 올림픽박물관 앞에 세워진 오륜 조형물. [AP=연합뉴스]

도쿄올림픽 개막을 85일 앞두고 일본 정부는 '올림픽 강행'을 외치고 있지만, 책임자들 사이에선 내분이 일어나는 분위기다. 올림픽 개최 및 진행 방안을 둘러싸고 일본 총리는 IOC에, 장관은 주최 도시인 도쿄도에 서로 결정과 책임을 떠넘긴다. 이 가운데 일본 정부 코로나19 분과회 회장은 28일 "이제 올림픽 개최 여부를 논의하기 시작해야 할 때"라고 경고했다.

"아베는 '올림픽 연기' 직접 결정" 

스가 총리는 지난 23일 도쿄·오사카 등 일본 네 개 지자체에 세 번째 긴급사태를 발령하는 자리에서 올림픽 취소 여부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올림픽의 개최 권한은 IOC에 있다"고 말했다. 감염자가 더 늘어나더라도, 긴급사태가 이어지더라도 자신에게는 올림픽 취소를 결정한 권한이 없다는 '책임 회피'다. 스가 총리는 이어 "IOC가 이미 도쿄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것을 세계 각국 IOC와 함께 결정했다"고도 했다.

현재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은 심각하다. 긴급사태 선언에도 불구하고 28일 하루 일본 전역에서 5791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올림픽 개최 도시인 도쿄에서는 29일 1027명의 감염자가 확인돼 3개월만에 1000명을 넘었다. 낙관을 어렵게 하는 것은 변이 바이러스다. 28일 열린 도쿄도 모니터링 회의에서는 현재 도쿄 내 확진자의 59.6%가 감염력이 높은 'N501Y'형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라며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2주 후 도쿄의 하루 신규 감염자는 2천명이 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23일 밤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시민들이 스가 총리의 긴급사태 선언 발표 영상을 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23일 밤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시민들이 스가 총리의 긴급사태 선언 발표 영상을 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긴급사태가 연장될 경우 올림픽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다들 답을 피하고 있다. 특히 스가 총리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도쿄신문은 "올림픽으로 감염이 전세계에 확산돼도 '(IOC 위원장인) 바흐씨가 하라고 했다'며 책임을 떠넘길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올림픽을 1년 연기하기로 직접 결정하고, 이런 의향을 IOC에 전달했다.

의료진 확보 문제, 정부-도쿄시장 서로 "네 탓"

현재 올림픽 개최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건 의료진 확보다. 올림픽 조직위는 올림픽 기간 중 하루에 의사 300명, 간호사 400명 씩, 대회 기간 중 누적 1만여명의 의료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TV로 올림픽 볼 시간도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안그래도 밤낮없이 일하고 있는데다 5월부터는 백신 대규모 접종도 시작되는만큼 인력 파견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장기 연휴인 '골든위크' 첫날인 29일 도쿄에서 시민들이 시부야 역 앞을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장기 연휴인 '골든위크' 첫날인 29일 도쿄에서 시민들이 시부야 역 앞을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마루카와 다마요(丸川珠代) 올림픽담당상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이를 확인하는 질문에 "책임을 가진 도쿄도가 계획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면서 도쿄도를 탓했다. 그러자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실무적으로 준비가 진행 중"이라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받아쳤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의 수장이 의료진 확보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인 셈이다.

이 가운데 일본 정부 감염증 대책 분과회를 이끄는 오미 시게루(尾身茂) 회장은 28일 국회에서 "조직위 등 관계자들이 (올림픽) 개최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해 온 오미 회장이 올림픽 취소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올림픽 개최 여부 판단에는 감염 상황과 의료계 '핍박'(감염자 급증으로 의료계 부담이 커지는 것) 상황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 매일 코로나 검사

한편 일본 정부가 28일 공개한 도쿄올림픽 방역 관련 규범집인 '플레이북' 내용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 및 모든 대회 관계자들은 각국에서 출국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96시간(4일) 내 두 차례의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뒤 음성증명서를 제출토록 되어 있다.

입국 때 일본 공항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선수는 14일간의 격리가 면제돼 입국 첫날부터 훈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입국 후 매일 1회씩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하고, 활동 범위는 숙박시설, 연습장, 경기장으로 제한된다. 또 선수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일반 시민과 접촉할 수 없으며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다.

올림픽으로 인한 감염 확산을 막으려는 조치지만 지나친 행동 제한이란 반발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이렇게 하면서까지 올림픽을 해야 하는가"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조치(上智)대 나가노 고이치(中野晃一) 교수는 도쿄신문에 "다양한 국가의 선수들과 관중들의 교류라고 하는 올림픽의 의의 자체가 이미 사라진 상황"이라며 "해외에서 불참 통지가 이어져 어쩔 수 없이 (올림픽) 중지로 내몰리기 전에, 일본 정치가들이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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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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