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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이혼소송 밟고 있는데 싹싹 비는 남편, 어쩌나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110)

이혼 후 생계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를 회복한 경우도 많다. [사진 pixabay]

이혼 후 생계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를 회복한 경우도 많다. [사진 pixabay]

부부싸움 한 번 하고 이혼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닙니다. 곱씹어 생각하고 나서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가 상담을 하고 드디어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소장을 받기 전에 남편에게 말을 해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조만간 법원에서 서류가 올 거라고 하니 남편은 화는 냈지만 예상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행이다 싶더군요. 한집에 살면서 이혼소송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힘들 것 같아 내가 친구네 집으로 옮겼습니다. 20년 결혼 생활을 하면서 다투고 며칠씩 따로 지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따로 나와 지내면서 소송을 하게 되니 착잡했습니다. 남편은 법원에 아무런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고, 서너 달이 지난 뒤에 법원에서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자 이혼할 생각이 없다는 편지만 제출했습니다. 남편은 이혼할 이유가 없겠죠. 하지만 내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실 나는 집에서 경제권이 없습니다. 너무 답답해 아주 친한 친구에게만 털어놓았는데 아직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냐고 하더군요. 남편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고, 100원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에게도 그렇게 살기를 강요하고요. 물론 그 덕분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와 상가 2채를 마련했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시장 볼 때마다 남편에게 또 한소리 듣지 않을까 마음 졸이면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법원에 가기 전에 한 번만 만나달라고 합니다. 이제 얼마나 내가 속상했는지, 힘들게 살았던 것을 이해하니 앞으로는 잘하겠다고. 제발 본인을 믿고 소송을 취하해 달라고 합니다. 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가도 남편이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어서 진심일까 고민이 됩니다. 소송까지 쉽게 결정한 것이 아닌데 남편 말만 믿고 소를 취하하는 것이 맞는지 걱정이 많습니다.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아마 사례자도 한 번 믿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면 이혼은 다음 기회에 해도 된다고 할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사례자와 같은 의뢰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의뢰인의 남편은 더 많은 유책 사유가 있었지만 단호하게 나쁜 생활습관을 고치는 등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혼인관계를 회복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이혼 후 생계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를 회복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배우자에게 어떤 기대를 하지 않고 걱정거리를 꺼내어 놓고 정작 본인은 잊었는데 상대방이 진심으로 걱정하고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죠.

이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다시 이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은 변덕이 아니라 정답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니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사진 pixabay]

이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다시 이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은 변덕이 아니라 정답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니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사진 pixabay]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김애란 작가의 글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이혼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다시 이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은 변덕이 아니라 정답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니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혼을 결정한 것이 정말 잘한 일일까 하는 일말의 의심을 갖고 이혼소송을 시작했다가 소송 과정에서 상대방의 온갖 비열한 모습을 확인하면서 이제라도 이혼할 수 있으니 너무 다행이라는 당사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부부 상담부터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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