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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퍼스펙티브

이남자 잡기 혈안된 민주당의 위험한 선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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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여자도 군대 가라는 오래된 주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지난 4·7 재·보궐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20대 남성의 몰표(72.5%)를 받으며 선전하고, 이에 대해 “민주당이 20대 남성의 표 결집력을 무시하고 여성주의 정책에 올인한 결과”(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라는 자체 진단을 내놓으면서다. 다급해진 더불어민주당이 20대 남성 표심 잡기의 일환으로 이른바 ‘20대 남성 역차별’ 해소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여성징병제, 군 가산점제, 여성할당제가 일시에 논란 중이다. 남녀평등복무제, 1999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군 가산점제 부활, 공공기관 승진평가나 지자체 직원 채용 시 군 경력 인정, 군 복무자 예우법 제정…. 하루가 멀다고 민주당 의원들 입에서 터져 나온 얘기들이다.

여성 징병제, 군 가산점 논란 #“군대 간 것 벼슬 맞다” 발언도 #20대 불만을 젠더 이슈로 돌려 #성별 대립 부추기는 정치인들

물론 군 복무에 대한 사회적 보상체계 마련이나 여성징병제 자체는 충분히 논의할 사안이지만, 진지한 논의라기보다는 인기영합적으로 일부 남성의 분풀이에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라 위험성이 있다. 20대 남성의 사회적 불만과 선거 패인을 직시하기 보다 엉뚱한 젠더 이슈로 치환해, 가뜩이나 심화한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병역, 고통 분담·공정의 뿌리

한국 사회에서 ‘군’‘병역’ 만큼 뜨거운 감자가 없다. 20대 남성에게 병역은 취업·학업 등에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종의 ‘징벌’로 받아들여지는 게 사실이다. 고통 분담의 원칙, 공정성이 중요한 이유다. 재미교포 출신으로 군대 가겠다는 말을 번복했다가 19년 간 대한민국 입국 금지 상태인 가수 유승준의 경우만 봐도 병역기피 괘씸죄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병역은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주된 수단이기도 하다. 성 평등을 얘기하면 ‘여자도 군대 가라’는 게 고정 레퍼토리다. 실제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정(만장일치)으로 군 가산점제가 폐지되면서, “군필자 보상문제가 성별 논쟁으로 진행됐고, 여성징병제가 남성들의 불만을 표출하는 출구가 된”(권인숙 민주당 의원) 역사가 있다. 헌재는 당시 군 가산점제 때문에 공무원 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진 연대 남성 장애인 학생 1명과 이화여대 졸업생 5명이 함께 낸 헌법소원에서 위헌 결정을 했다. “군 가산점제가 여성, 장애인 미필자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훼손한다”고 봤다. 군 가산점제 폐지는 “2000년대 한국 사회 남성성의 가장 큰 특징인 ‘남자만 억울하다’라는 자기 피해자화”(최태섭 평론가)의 중요한 계기로 지목된다. 헌법소원을 낸 이화여대 졸업생 5명은 ‘이화오적’으로 불리며 신상이 털리고 협박과 성희롱을 당했는데, 장애인 남성에 대한 성토는 없었다.

#퇴행적인 군 가산점제 논란

양성희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양성희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폐지된 지 20년도 넘은 군 가산점 부활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최근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직원 승진 심사 때 군 복무기간을 포함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보내면서다. 연차 낮은 군필 직원이 손해를 본다며 불공정 시비가 나왔다(현재 정부 부처는 물론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승진 심사 시 군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공기업 승진 평가에서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나섰다. 내친김에 “개헌을 해서라도 군 가산점제를 재도입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더 나아가 군 복무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해, 채용·승진, 주택청약에 가산점을 주겠다는 법안을 내놨다. 김 의원은 “군대 간 게 벼슬 맞다”라는 발언으로도 논란을 일으켰다.

군 가산점제는 그간 몇 차례 부활 시도에도 무산됐다. 군 복무 보상 체계의 필요성과 별개로, 제도 자체가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헌재 판정을 뒤집을 명분과 논리가 없어서다. 가령 공기업 승진 시 가산점을 준다면 공기업에 취직하지 않은 이들은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김병기 의원은 미국의 군 가산점제를 예로 들었지만 “미국의 군 가산점은 군대만 가면 주는 게 아니라 연방의회가 인정하는 전쟁에 현역으로 참여하는 등 엄격한 요건 아래에 부과되는 것”(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유사한 문제 제기에 “군 가산점제는 여성·장애인 등이 공직에 입직할 기회를 광범위하게 배제하고, 국제인권기준에도 위배된다. 병역의무 이행자 간에 형평성을 유지하지 못하므로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냈다. 진짜 군 복무 보상 체계를 만들고 싶으면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맞다. “개헌” “군대 벼슬” 등 무책임하고 감정적인 발언으로 젠더 갈등만 더 키웠다.

#여성도 군대 가라는 문제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징병제를 폐지해 모병제로 전환하고, 남녀 모두 100일간 의무군사훈련을 받아 예비군으로 양성하는 남녀평등 복무제”를 제안하면서, 여성징병제 논란도 재점화됐다. ‘여성도 징병하라’는 청와대 청원에는 현재 23만명이 동의해,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여성징병제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의 단골 이슈다. 지난해만도 관련 청원이 11개나 올라왔다. 남녀평등복무제에 대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찬성 의견은 연령별로 20대가 54.9%로 가장 높았다.

여성징병제 역시 해묵은 이슈다. 군 가산점제 폐지 직후부터 남성만을 징집 대상으로 규정한 병역법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위헌 소송이 10차례 넘게 있었으나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성 신체는 전투에 부적합하고 여성을 복무시키려면 군 시설 마련 등에 큰 비용이 든다고 판단했다. 남성들은 여자는 왜 군대 안 가냐고 따지지만, 정작 남성만 복무하라는 결정은 국가가 내린 것이다.

최근에는 여성 징병에 동의하는 여성들도 많아지고 있다. 2030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차라리 군대 가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많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조사에서도 여성 53.7%가 여성도 군대 가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최근 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남성중심 징병제가 일자리나 직장문화와 관련한 성차별의 큰 근원”이라며 “군대는 여성에게 좋은 일자리며, 군대에 여성이 많아지고 여성 친화적인 조직으로 바뀌는 것은 성 평등 문화 확대에 좋은 요소”라고 말했다. 모병제 찬성론자인 권 의원은 명지대 교수 시절 쓴 논문에서도 “군에서의 여성 수의 증가와 역할 확대는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지금 같은 ‘나도 힘드니 너도 당해봐라’ 식이다. 군대 내 성평등이 확보되지 못하고, 낮은 인권, 미비한 가사 육아 분담 등이 여전한 가운데 여성복무는 기존의 성차별을 강화할 뿐이다. 군사안보도 주요 변수다. 특히 군사전문가들은 안보에 미치는 영향과 전략에 대한 검토 없는 여성징병제나 모병제 논의에 우려가 많다. 장기적인 준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득표전략으로 가볍게 던질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전통적인 여성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북한·리비아 등을 제외하고 성 평등 의식이 높은 유럽에서는 2010년대 후반부터 여성징병제 논의가 뜨겁다. 노르웨이·스웨덴·네덜란드가 여성징병제 시행에 들어갔으며 스위스·오스트리아·덴마크·핀란드·독일 등에서도 논의가 한창이다. 모병제 국가인 미국에서도 18세 이상 남성에게 적용되는 ‘유사시 징병제’를 여성에게 확대하는 방안이 수년째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박진수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에선 여성징병제 논의가 남성 역차별 해소 문제에 집중돼 있지만, 노르웨이나 미국의 경우 여성징병제 도입이 가져올 안보적 효과,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젠더 평등 효과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의 경우 여성이 군 복무를 해서 성 평등해진 것이 아니라 남녀 성비가 과도하게 불균형한 마지막 분야가 군대였기 때문에 여성 징집이 시작됐다는 걸 놓치지 말아야 한다”(손희정 평론가)의 지적도 의미 있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