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강수의 시선

'피의자'가 검찰총장 후보가 되는 시대

중앙일보

입력 2021.04.2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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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29일 열릴 예정인 가운데 사흘 전 법무부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포함된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 명단을 위원들에 전달했다. 14명이 적힌 명단엔 이 지검장(왼쪽),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검사)이 들어 있다. [뉴스1]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29일 열릴 예정인 가운데 사흘 전 법무부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포함된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 명단을 위원들에 전달했다. 14명이 적힌 명단엔 이 지검장(왼쪽),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검사)이 들어 있다. [뉴스1]

하다하다 검찰총장 인선에서도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차기 총장 후보에 이성윤 포함
정의,법치,국민정서에 안 맞아
무리수 두면 후폭풍 거셀 것

 형사 사건 피의자가 분명한데도 그제 검찰총장 후보 추천군에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포함된 것은 정상이 아니다. 더구나 가능성이 별로 없는 한동훈·이두봉, 친정부 성향의 임은정·한동수가 들어간 것은 이들을 병풍으로 세워 본질을 흐려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현 정부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절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종 결과야 어찌 될 지 모르지만 지금 검찰총장 인선을 놓고 돌아가는 모양새는 어느 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한 '조직적 봐 주기'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그는 검찰의 황태자 격이다.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인데다 추미애 법무부와 보조를 맞춰 윤석열 전 총장의 대척점 선봉에 섰다. 피의자가 됨으로써 곤경에 빠진 그에게 가시덤불을 치울 시간을 주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가 길을 터서 살아 돌아오면 그 자리를 하사하겠다는 게 큰 그림 같다. 이 때 조직은 물론 법무부와 청와대다. 임기 후반 검찰 조직의 안정적 운용을 원하는 집권 세력과 검찰 최고위직을 추구하는 후보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 이 지검장은 조직 장악력과 검사들의 신뢰 양면에서 상처를 많이 입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관련 수사 무마 의혹 사건(재작년 6월)의 피의자가 된 것은 치명타다. 검사(이규원)와 청와대 비서관(이광철)이 사고를 치고 지검장이 비호한 구도다. 이들의 행위는 명백한 인권 침해 범죄다. 진짜 '검찰농단'이다. 수사 대처 방식도 꼼수였다. 검찰 후배들의 수사력과 서슬이 두려워 그랬는지는 모르나 검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하고 공수처 이첩을 요청한 것부터 패착이다. 전국에서 가장 큰 검찰청 수장이 자기 살겠다고 친정을 저버린 꼴 아닌가. '황제 조사' 논란에,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도 자구책이라고는 하나 이율배반, 내로남불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권고한 한동훈 전 검사장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겠다는 수사팀 결재 상신을 몇달 째 뭉개며 질질 끌고 있는 게 이 지검장 아닌가 말이다.
 수사심의위 소집이 검찰 기소를 최대한 늦추려는 노림수였다면 결과는 나쁘지 않다.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29일 열린다. 그 전에 수사심의위가 기소를 권고하면 낭패를 볼 뻔했으나 회의 일자가 뒤로 밀리면서 일단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전임 총장 임명 때 추천위 개최 이후 장관 제청 및 대통령 결재까지 나흘이 걸렸다. 그 나흘 안에 기소할지 말지, 조남관 총장 직무대행의 고민이 깊을 것이다. 2019년 8월 말 윤 전 총장은 조국 전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해 전격 수사에 착수했다가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을 두고 두고 들어야 했다.
 피의자 검찰총장 후보 시대를 맞아 격세지감이 드는 일이 있다. 이전 정부에선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으로 직행하는 것이 맞냐 틀리냐가 주된 원초적 논란거리였다. 한상대 전 총장 임명 때도 격론이 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검찰총장을 제치고 청와대와 직거래할 수 있어서 수사의 독립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우려였다. 이제 그런 건 논란거리 축에도 못 낀다. 당시라면 검찰 조사를 받고 기소가 임박한 사람이 언감생심 생각도 못 할 일이 요새는 꿈꿀 수 있는 일이 됐다. 어떤 경우엔 오히려 피의자나 피고인들이 더 당당하다. 법이 잘못됐거나, 검찰이 표적 수사·기소했지 나는 잘못이 없다고 믿는 이들이 거리와 카페, 심지어 국회 마당을 활보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형해화된 국민정서법의 도덕적 잣대와 기준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이번 검찰총장직은 수사 무마 사건만 돌출하지 않았다면 그의 자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숨만 쉬고 있으면 검찰총장이 됐을 것'이라는 오래된 농담처럼. 그러나 여기에서 그쳐야 한다. 무리수를 두면 후폭풍이 거셀 것이다. 말 그대로 무죄추정의 원칙이 일상 생활 속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고 해도 정의와 법치를 중시하는 나라에서 '피의자 검찰총장''피고인 검찰총장'은 무모한 도전  아닐까.
 "저 양반이 저렇게 망가지는 게 안타까워. 누가 되든간에 조금 더 기개가 있고 바르고 소신을 가진 분이 되면 좋겠다. 좌고우면하는 분이 되면 정치권에 끌려다닐 거야. 내부 분란이 일어날 수 있어. (검찰이) 다 곪고 피폐해졌어. 운신을 못하겠어." 검찰의 한 친구가 일말의 기대를 담아 건넨 독백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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