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출산율 1.8명 아이슬란드의 비결

중앙일보

입력 2021.04.2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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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여성가족부는 동거와 비혼 출산도 가족으로 인정하고, 자녀의 성(姓)을 부모 협의로 결정할 수 있게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지난 27일 밝혔다. 전통적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종교계 등의 반발을 극복하고 국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돼야 하지만 남녀평등을 향한 진일보한 계획이다.

한국은 남녀평등에서 후진국
평등 사회서 여성 잠재력 꽃펴
대담한 문샷 프로젝트 나서야

최근 한국 사회는 젠더 갈등 조짐이 보인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 등 공기업이 승진 심사 때 군 경력을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일부 군필 남성이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이들 공기업은 군필 직원의 급여에선 군 경력을 지금처럼 인정하고, 군필자의 승진 시험 응시 자격을 1년 앞당겨 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군필자들의 반발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국가를 위해 1년 8개월 청춘을 바쳤는데 국가가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지 않으니 반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승진 심사에 군 경력을 배제하는 건 옳은 방향이다.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들이 차별받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남존여비가 여전하다. 여성은 취업·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기업의 고위직일수록 여성이 드물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달 말 발표한 남녀평등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156개국 중 102위를 차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32.5%다. 37개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최악의 남녀 임금 격차에 대해 남자가 상대적으로 고위직에 있거나 생산성이 높은 일을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는 일부만 맞는다. 유리 천정으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막히고 성차별적 인식·제도가 공학 등 생산성이 높은 직종으로의 여성 진출을 막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열악하니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도 저조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OECD의 여성 고용지표를 분석한 결과 2019년 기준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0.0%로 OECD 37개국 중 33위였다. 여성들의 65.0%가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 육아·가사 부담을 꼽았다. 그 결과 한국 여성의 출산율은 지난해 0.84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서소문포럼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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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극복은 한국 사회에 주어진 엄청난 도전 과제다. 1948년 제헌 헌법부터 70년 이상 한국은 성 평등이라는 숙제를 풀지 못했다. 성 평등을 향한 10개년 ‘문샷(moonshot)’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1961년 1월 취임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10년 내 달에 가겠다”며 문샷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1969년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다행히 성 평등 문샷 프로젝트에는 본받을 나라가 있다. 북유럽 국가 아이슬란드는 WEF 남녀평등 순위에서 2009년부터 1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아이슬란드도 1980년대까지 남녀 불평등이 심했다. 이 나라 여성들은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75년 직장과 가사에서 동시에 손을 놓는 총파업을 벌였다. 이는 여성들이 주로 하는 육아·가사의 중요성을 남성들에게 인식시키며 사회 변화를 불러왔다.

아이슬란드는 남녀 비율을 동등하게 한다는 정치적 합의에 따라 의원과 장관의 40%를 여성에게 할당한다. 2013년에는 기업 이사진의 4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법이 통과됐다. 여성 대졸자가 남성보다 두 배나 많고 과학기술 분야의 여성 졸업생 비율은 세계 1위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88%로 OECD 1위다. 아이슬란드 여성의 왕성한 사회 활동은 그만큼 육아·가사 부담이 적은 덕분이다. 남성 육아 휴직 의무제가 2000년 도입돼 육아 휴직 9개월 동안 기존 임금의 80%를 받는다. 아버지의 90% 이상이 육아 휴직을 쓴다. 또 정부가 보육비의 85%를 지원해 가정의 보육 부담을 줄였다. 아이슬란드는 2017년 남녀 동일노동 동일임금법을 제정해 남성보다 현재 14% 정도 적은 여성의 임금 차별을 내년까지 완전히 없애는 걸 목표로 한다. 아이슬란드 여성의 출산율은 1.8명이다. 선진국 중 가장 높은 편이다.

한국이 아이슬란드 수준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성 평등 사회를 이룬다면 여성의 삶의 질이 높아질 뿐 아니라 한국에 엄청난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배우 윤여정 씨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이나, 골프 등 국제 스포츠 무대 활약상을 보면 한국 여성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이 잠재력이 활짝 피어나게 하는 건 여성뿐 아니라 남성, 정부를 포함한 한국 사회 전체의 과제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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