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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싸대기, 분노의 샤워신…미드에 이런 장면 나온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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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드라마월드’에서 클레어(리브 휴슨)가 넘어지려고 하자 누군가 나타나 도와주는 모습. 클리셰로 사용되는 장면을 패러디했다. [사진 라이프타임]

‘드라마월드’에서 클레어(리브 휴슨)가 넘어지려고 하자 누군가 나타나 도와주는 모습. 클리셰로 사용되는 장면을 패러디했다. [사진 라이프타임]

미국 샌드위치 가게에서 틈틈이 한국 드라마 ‘사랑의 맛’을 보고 있던 클레어(리브 휴슨)는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떨어진다. 드라마 속으로 빨려 들어가 조력자로서 임무를 맡게 된 것. 이미 50여편의 드라마에서 조력자로 활약한 세스(저스틴 전)로부터 ‘마지막 회까지 남녀 주인공이 키스에 성공하지 못해 진정한 사랑에 실패할 경우 드라마월드는 사라진다’는 K드라마의 공식을 전해 들은 그는 재벌 2세 출신 셰프 박준(션 리차드)과 수석 셰프 서연(배누리)을 이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원·헨리 합류한 ‘드라마월드’ #B급 감성 한국식 클리셰 버무려 #박찬욱·봉준호 영화로 한국에 매료 #마틴 감독 “K드라마 입문 도움되길”

이런 내용을 담은 10부작 웹드라마 ‘드라마월드’가 2016년 미국 동영상 플랫폼 비키에서 방영됐을 때 팬들은 “가장 이상하고 재미있는 K드라마의 등장”이라며 반겼다. 분노의 샤워신부터 김치 싸대기까지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된 각종 클리셰를 B급 감성으로 버무려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글로벌 채널 라이프타임에서 시작한 13부작 ‘드라마월드’는 그 확장판이다. 2016년의 시즌 1분량을 그대로 남겨두고 새로운 내용을 담은 시즌 2를 덧댔다. 웹에서 TV로 옮겨온 만큼 제작 규모도 한층 커져 하지원·헨리·대니얼 대 킴·정만식 등이 합류했다.

시즌 1이 멜로에 초점을 뒀다면 시즌 2는 호랑이 인간과 뱀파이어의 대결부터 80년대 유행했던 홍콩 영화, 90년대 조폭 영화 등 다양한 장르가 얽혀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드라마 촬영을 마친 후 미국 보스턴에 머무르고 있는 크리스 마틴(38) 감독은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시즌제를 염두에 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사물 ‘비밀의 숲’, 좀비 사극 ‘킹덤’, 시네마틱 드라마 ‘SF8’ 등 한국 드라마도 점차 멀티 장르로 가고 있어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여느 한국 드라마처럼 허름한 식당에서 소주에 삼겹살을 먹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여느 한국 드라마처럼 허름한 식당에서 소주에 삼겹살을 먹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드라마월드’는 한국 드라마의 전형성을 활용하지만 전개 방식은 사뭇 다르다. ‘응답하라 드라마월드’ ‘슬기로운 조연 생활’ 등 매회 기존 드라마 제목을 패러디한 부제를 붙이기도 하고, 극 중 인물들도 ‘사랑은 잠복 중 1988’ ‘붉은 달의 전설’ 등 이 작품에서 저 작품으로 옮겨 다닌다. 러닝타임 45분 중 15분을 메이킹 필름 등 뒷얘기에 할애하기도 한다.

마틴 감독은 “처음 보면 ‘이게 대체 무슨 드라마지?’ 싶지만 ‘드라마월드’는 여러 한국 드라마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 모든 게 가능하다. 팬들도 클레어처럼 드라마 속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시즌 2 극본을 쓸 때부터 하지원씨를 꼭 캐스팅하고 싶었다. ‘시크릿가든’ 같은 로맨스부터 ‘다모’의 액션까지 안 되는 게 없지 않나. 정만식 배우는 ‘아수라’ 등 많은 작품에서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그 배우들이 가진 이미지를 살리려 외국 배우들에게 참고할 작품 목록을 건네기도 했다.”

외국 배우들은 영어로, 한국 배우들은 한국어로 대사하는 설정은 마틴 감독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자동으로 자막이 생성되면서 의사소통이 매끄럽게 연결될뿐더러 K드라마 팬들은 이미 ‘1인치의 장벽’을 극복한 사람들이어서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크리스 마틴

크리스 마틴

버지니아 공대 재학 시절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등을 보고 한국 영화에 매료된 그는 2006년 무작정 한국을 찾았다. 이후 연세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뉴욕대 싱가포르 캠퍼스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한국 영화를 처음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있다니. 그게 ‘게이트웨이 드러그(입문용 마약)’가 됐죠.” 한국 드라마를 소재로 한 독특한 실험에 이정재·한효주·이지아·한지민 등 막강한 카메오 군단이 출연해 힘을 보태기도 했다.

‘드라마월드’는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지만 한국 사람은 될 수 없다는 현실의 고민에서 나왔다. “션이나 저스틴처럼 한국계도 아니고, 미국인이지만 한국 등 아시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덕분에 이쪽에도, 저쪽에도 완전히 속하기는 어렵겠지만 양쪽을 잇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덕에 한국인이 볼 땐 ‘미드’ 같고, 미국인이 볼 땐 ‘한드’ 같은 교집합을 형성했다.

“어쩌면 ‘드라마월드’가 아직 K드라마를 접해보지 않은 외국인에게 ‘게이트웨이 드러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덜 낯설지만 새로운 재미가 있으니까.” 그는 “‘별에서 온 그대’나 ‘사랑의 불시착’ 같은 독특한 콘셉트에서 시작하는 K드라마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며 “어떤 장르에서도 진정한 사랑의 가치가 도드라지는 것도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품을 묻자 그는 “하나만 꼽긴 어렵다”고 답했다. 대신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4관왕에 오른 데 이어 올해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을 언급했다. “전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한국 콘텐트의 가치를 알아가고 있다”며 “‘드라마월드’를 티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OTT가 다양해지면서 더 많은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이경미 감독의 ‘보건교사 안은영’이나 애플TV 플러스에서 제작 중인 김지운 감독의 ‘Dr.브레인’ 등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도 많아졌다. 어제도 넷플릭스에서 ‘낙원의 밤’을 봤다. 나도 다크 코미디와 서스펜스가 결합한 한국 작품을 준비 중인데 이른 시일 내에 시청자들과  만났으면 좋겠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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