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명 숨진 장난감 공장 화재에서 시작된 세계 산재 추모의 날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2021.04.28 17:34

"선진국 어린이들의 꿈이 담긴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의 피와 죽음이 묻어 있다."

1993년 5월 태국의 한 장난감 공장에서 불이 났다.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500명 이상이 중상을 입었다. 이 장난감들은 태국에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으로 수출될 예정이었다. 대형 화재 산업재해 사고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장난감들.(위 사건과는 무관)[사진 pxhere]

장난감들.(위 사건과는 무관)[사진 pxhere]

"노동자 죽는 발전은 지속가능 발전 아니다" 추모 

미국과 영국 등 반공산주의 국가의 노동조합들이 모인 국제자유노련 대표들은 1996년 4월 28일 매년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가 열리는 뉴욕 UN 본부 건물에서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노동자가 죽는 발전은 지속가능한 발전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국제노동기구(ILO) 홈페이지에 따르면 ILO는 노조 운동의 요구에 따라 2003년 4월 28일 캠페인에 참여해 부상자와 추락 노동자를 추모하고 산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기념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 UN본부 건물. [중앙포토]

미국 UN본부 건물. [중앙포토]

사망한 산재 노동자들을 공식적으로 추모하고 기념하는 나라도 있다. 사고가 발생한 태국은 사고 당일인 1993년 5월 10일을 법정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지정했다. 대만, 캐나다, 미국, 영국 등 19개 국가도 입법을 통해 산재 노동자의 날을 기념일로 추모한다.

국내에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김용균 재단 등이 매년 관련 행사를 진행하며 산재 사망자를 추모한다. 28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는 김용균 재단의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제막식이 열리기도 했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ILO 등이 지정한 '산재 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인 4월 28일을 법정기념일인 '산재 노동자의 날'로 제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루 2.4명 노동자 사망…정부 20% 감축 목표 

다시 증가하는 산재 사고사망자-최근 10년간 산재 사고사망자 발생 현황

다시 증가하는 산재 사고사망자-최근 10년간 산재 사고사망자 발생 현황

지난 14일 노동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는 882명으로 전년보다 27명(3.2%) 증가했다. 하루 약 2.4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는 셈이다. 이 중 60세 이상이 347명(39.3%)으로 가장 많았고 50대(292명)와 40대(137명)가 뒤를 이었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458명(51.9%)으로 절반이 넘었고 다음은 제조업(201명)이었다. 추락사(328명) 비율이 가장 높았고 5~49인 사업장(402명)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2024년 1월까지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이 유예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2020년 업종별 산재 사고사망자 수와 공사규모별 건설업 사고사망자 비율

2020년 업종별 산재 사고사망자 수와 공사규모별 건설업 사고사망자 비율

노동부 관계자는 28일 "아직 산재 추모의 날이 공휴일이나 법정 기념일은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행사나 입장은 없다"면서도 "최근 발생하는 산재 피해에 대해 장관과 관련 부처에서 큰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 산재 사고 사망을 20% 감축하는 목표를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안전 비용은 투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한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고 김용균 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오종택 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한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고 김용균 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오종택 기자

하지만, 산재 피해 유족들 사이에서는 국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동생을 잃은 산재 유족 김도현(31)씨는 "문재인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 절반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했지만, 임기가 다 끝나가는데 산재 사망자 수는 줄지 않고 있다"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여전히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20%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2%라도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노동자들이 죽고 있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노동법)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 노동자의 안전이 생산성보다 뒷순위로 밀렸다. 산업 안전 비용을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노사 간 대립의 영역이 아니라 노사정 이해관계를 같이해 협력할 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기업 제재라는 일차적 접근을 넘어 보호 장비와 안전 기구 등 산업 안전에 관한 산업이 발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유인책을 만들어 줄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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