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초유의 미술품 기증…‘인왕제색도’ 국민 품으로

중앙일보

입력 2021.04.28 11:25

업데이트 2021.04.28 16:23

이건희 삼성 회장은 문화 유산 수집이 인류를 위한 일이자 우리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했다. [중앙포토]

이건희 삼성 회장은 문화 유산 수집이 인류를 위한 일이자 우리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했다. [중앙포토]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2004년 10월 삼성미술관(리움)을 개관하는 자리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했던 말이다. 홍라희 전 리움 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은 이 같은 뜻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유족들은 삼성전자를 통해 고인의 보유했던 미술품과 유산 일부를 사회에 기부한다고 28일 밝혔다.

이건희 전 회장이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이중섭 '황소(사진)' 등 근대 미술품을 상속인들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하기로 했다. [사진 삼성미술관]

이건희 전 회장이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이중섭 '황소(사진)' 등 근대 미술품을 상속인들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하기로 했다. [사진 삼성미술관]

3조원대 ‘이건희 컬렉션’, 전국 박물관 기증

삼성 일가가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한 유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미술품이다. 이 회장이 생전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2만300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한다.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으로 알려진 미술 작품의 감정가를 미술계에서는 최소 3조원 안팎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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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가는 3조원대지만 문화예술계에서는 “가치를 헤아리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사실상 가격으로 따지기 어려운 작품이 많아서다. 국보 14점, 보물 46점 등 국가 지정문화재가 포함돼 있고, 경매 시장에 내놓으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 세계적인 미술품도 많아서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나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등 지정문화재 60건을 비롯해 최고(最古) 유물·고서·고지도 등 고미술품 2만1600여 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근대 미술품 1600여 점은 각각 국립현대미술관·이중섭미술관·박수근미술관 등에 기증한다. 또 모네·미로·달리·샤갈·피카소 등 서양 미술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

원칙적으로 미술품을 상속받을 경우 상속인은 상속가액의 절반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미술품을 기증하면 상속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운구차량이 경기도 화성사업장에서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운구차량이 경기도 화성사업장에서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감염병·소아암 등 의료공헌에 1조원 

이와 별개로 상속인들은 의료공헌 방식으로 1조원을 기부한다. 이 중 절반인 5000억원은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된다. 현재 국립중앙의료원이 담당하고 있는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이 이전·신축할 때 같은 부지에 별도로 설립할 예정이다. 음압병상·음압수술실·검사실 등을 갖춘 150병상 규모의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을 세우는데 이 회장의 기부금 5000억원이 투입된다.

또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에 2000억원을 기부한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가운데 감염병 백신·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연구소·설비 등 기반시설 확충에 쓰인다. 총 7000억원의 기부금은 일단 국립중앙의료원에 출연한 후, 관련 기관이 협의해 활용한다.

1990년 7월 이건희 회장 지시로 설립한 서울꿈나무어린이집에서 이 회장(왼쪽)이 현판을 걸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1990년 7월 이건희 회장 지시로 설립한 서울꿈나무어린이집에서 이 회장(왼쪽)이 현판을 걸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복지재단이 건립해 서울시에 기부한 서울꿈나무어린이집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왼쪽). [사진 삼성전자]

삼성복지재단이 건립해 서울시에 기부한 서울꿈나무어린이집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왼쪽). [사진 삼성전자]

나머지 3000억원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소아암·희귀질환 어린이 지원에 투입한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1만7000여 명에게 향후 10년간 유전자 검사·치료와 항암·신약 치료 비용을 지원한다. 대상은 백혈병·림프종 등 13종의 소아암 환아(1500억원)와 크론병 등 14종의 희귀질환 환아(600억원)다. 별개로 관련 임상·치료제 연구에 9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어린이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1997년 출간한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그는 ‘어린 자녀들이 길거리에서 배회하지 않도록 교육 프로그램과 여가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87년 삼성그룹 회장 취임 직후엔 서울 장충동 달동네를 둘러보고 어린이집 건축을 지시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유가족은 삼성전자를 통해 “국가 경제 기여와 인간 존중, 기부문화 확산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한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의료 공헌과 미술품 기증 등 사회 환원을 실천한다”고 전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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