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만원때 압류 걸자 “세금 내겠다”…첫 암호화폐 압류한 '38기동대'

중앙일보

입력 2021.04.28 11:00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이병욱 과장(왼쪽)과 주성호 조사관이 세금징수법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이병욱 과장(왼쪽)과 주성호 조사관이 세금징수법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암호화폐 125억 보유에 10억 체납"

암호화폐 광풍이 뜻밖의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국세청에 이어 전국 각 지자체가 잇따라 체납세금 징수를 위한 암호화폐 압류에 나서면서다. 서울시는 가장 발 빠르게 움직여 고액체납자가 보유한 400억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압류한 상태다. 지난 27일 추가 압류를 추진 중인 서울시 38세금징수과의 이병욱 과장을 만나 압류 대상과 과정 등을 자세히 알아봤다. 이 과장과의 일문일답.

암호화폐, 압류 방법은.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4곳에 10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의 이름·생년월일·연락처 등을 보내 정보가 일치하는 계좌 보유자 명단을 받았다. 3곳에서 1566명을 확인해 이 중 284억원을 체납한 676명의 암호화폐를 압류했다. 암호화폐 자체를 점유하는 게 아니라 쉽게 말해 체납자가 거래소에 출금을 요청했을 때 내주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설마 체납자들이 나올까 반신반의했는데 돌아온 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트코인·드래곤베인·리플·이더리움 다양하게도 나오더라. 자료를 받은 날짜 기준 이들이 보유한 암호화폐 평가액은 251억원이다. 압수수색을 한다고 하자 나머지 거래소 한 곳도 뒤늦게 정보를 넘겼다. 고액 체납자 287명이 보유한 151억원 어치 암호화폐를 확인했다. 이들의 체납한 세금은 100억원이다. 
고액 세금 체납자의 가상화폐 보유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고액 세금 체납자의 가상화폐 보유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누가 처음 암호화폐 압류 아이디어를 냈나. 
나는 암호화폐를 잘 몰랐다.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은어)’ 뜻도 20대 아들에게 투자에 관해 묻다 알게 됐다. 38세금징수과 주성호 조사관이 2018년 처음 아이디어를 냈다. 
(주성호 조사관) 당시 외국에서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사 먹었다는 얘길 듣고 징수에 접목할 수 있겠다 싶었다. 투자가 아니라 세금징수를 떠올린 거다(웃음). 하지만 압류할 재산으로 볼 수 있을지 논란이 있었기에 몇 년 동안 설왕설래만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해 힘이 많이 빠진 상황에서 올해 1월 과장님이 부임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해보자고 하셨다. 개인이 암호화폐를 가압류한 사례 등 법적 근거를 쌓아가던 중 국세청 발표를 보고 지난 12일 본격적으로 압류작업에 들어갔다. 
다른 재산 압류와 비교해 효과가 어떤가. 
설마 이런 것까지 찾아 압류할까 하고 방심했던 것 같다. 거래를 막고 나서 납부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매각했다고 했더니 바로 118명이 12억6000만원을 냈다. 일부러 시기를 맞춘 건 아니지만, 압류 당시 비트코인 값이 8000만원까지 오르는 등 고점을 찍어 반응이 더 컸던 것 같다. 값이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해 많은 체납자가 팔지 말아 달라며 세금을 내겠다고 했다. 매각해달라는 체납자도 있었지만 아직은 납부를 독려하는 단계라 거래소에 매각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서울시 ‘38기동대’, 체납자 676명 암호화폐 압류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이병욱 과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자체 동아리 경제금융추적TF(태스크포스) 전현직 회원들. 최은경 기자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이병욱 과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자체 동아리 경제금융추적TF(태스크포스) 전현직 회원들. 최은경 기자

암호화폐 압류 방식도 한계가 있지 않나. 
압류할 수 없는 상황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은닉수단이 될 수 있어 말하지 않겠다. 암호화폐에 이은 또 다른 압류 대상을 찾았다. 추진 중이지만 이 역시 무엇인지 절대 밝힐 수 없다.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찾아 압류해왔다. 200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 도메인 압류가 활발했다. 요즘은 이게 별로 돈이 안 돼 잘 하지 않는다. 2008년에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 처음으로 법원 공탁금을 압류하기도 했다. 
서울시 발표 이후 각 지자체가 앞다퉈 암호화폐 압류 계획을 밝혔는데. 
미리 은닉할까 봐 발표를 최대한 미뤘는데 국세청 발표로 알려져 서울시도 공개한 것이다. 체납자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거래소 14곳에 추가로 자료를 요청했다.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거래소에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보도 후 다른 지자체에서 압류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 검찰에서도 문의가 온다. 거래소 업무가 거의 마비됐다더라. 시민 칭찬 전화도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징수기법을 개발해 이를 현실화하는 데 주력하겠다. 체납 비율을 뜻하는 ‘2%를 찾아서’와 ‘경제금융추적TF(태스크포스)’ 등 징수기법 연구 동아리도 자체 운영하고 있다. 이번 암호화폐 아이디어도 경금추TF에서 나왔다. 

고액·상습체납을 추적하는 38세금징수과는 잘 알려진 대로 ‘헌법 제38조 납세의 의무’에서 딴 이름이다. 38기동대라고도 불린다. 이 과장을 포함한 구성원 40명 중 25명이 현장에서 뛴다. 민간회사 출신 채권추심전문가도 6명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직원이 암호화폐 압류에 매달리고 있다. 이 과장은 “코로나19로 현장활동을 못 했음에도 최근 5년 중 올해 1분기 징수실적이 최고를 기록했다”며“과훈(課訓)처럼‘끝까지 추적하여 반드시 징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