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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이준석, 마지막 조언이다···남초 사이트서 주워듣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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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인구 절반이 대의되지 못하는 현실, 여성할당제는 효율·생산성 높여
‘성 격차 없애면 GDP 14% 증가’…할당제는 제로섬 아니라 윈윈 게임
2030 좌절시킨 사회에 대한 분노를 여성에게 대리분출 부추기지 말고
성실하게 일만 하고도 먹고살 수 있는 정책 내놓는게 공당의 역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10여 년 전에 똑똑한 보수의 두 청년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고한 적이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여전히 나는 그를 아낀다. 근데 그가 이상한 길로 가고 있다. 지적을 해도 듣지 않는다. 애정이 담긴 조언이라도 듣지 않으려는 이에게 억지로 하는 것은 민폐. 이게 마지막이다.

이준석의 포퓰리즘

먼저 여성에 대한 그의 뿌리 깊은 편견을 지적하고 싶다. 중앙일보 지면에서 그는 해괴한 소리를 했다. 여성할당제의 수혜자인 세 여성 장관이 무능해 이 나라의 민생이 무너졌단다. 그게 다 최고 실력자를 기용하지 않고 수치적 성평등에 집착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걸 말이라고 하는가.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후임인 변창흠 장관은 어디 남자라서 유능하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전임 조국 전 장관은 유능해서 나라를 두 토막 냈는가. 게다가 민생의 책임을 왜 여성 교육부총리에게 묻는가? 이 나라 민생을 책임진 것은 총리와 대통령. 모두 남성이다. 역대 정권의 무능한 장관들 역시 대부분 남성들이었다.

‘시대착오’라는 여성할당제는 OECD 모든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도. 그 덕에 내각과 의회에서 여성비율이 OECD 평균 30%에 이르게 됐다. 한국은 10~20% 안팎. 다른 나라들은 2030년까지 완전한 성비를 이룬다는 목표 삼아 나아가는데, 저 혼자 시대착오에 빠져 과거로 가고 있다.

성평등은 생산성을 증대한다

퍼스펙티브

퍼스펙티브

선진국에선 왜 할당제를 할까? 첫째, 인구의 절반이 공적 결정에서 제대로 대의되지 못하는 것이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여성이 섞이면 집단의 지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준석씨는 ‘수치적 성평등’을 비효율로 보나, 성평등은 외려 조직의 효율과 생산성을 증가시킨다.

골드먼삭스의 2019년 보고서는 성 격차를 해소할 경우, 한국의 GDP가 14.4%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일본에서도 여성관리자 비율이 높은 회사의 매출이나 수익성이 평균 대비 높다. OECD의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 이는 여성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남성들의 편견을 무색하게 한다.

OECD에서 할당제는 국가경쟁력 제고 방안으로 여겨진다. 작년에 보수당이 주도하는 독일의 연립정부는 “상장기업이 여성 이사를 자발적으로 선출하도록 유도하려던 정책은 실패했다”며, 기업의 반발에도 3인 이상 이사를 두는 기업엔 반드시 1인 이상 여성을 두도록 의무화했다.

이씨에게는 이 상식이 없다. 결핍된 교양을 남초 사이트에서 주워들은 소리로 때우고 있는데, 그런 얘기는 애초에 공론의 장에 들여올 게 못 된다. 남초 사이트에서는 환호를 받을지 모르나, 공론장에서는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뿐. 그래서 만날 때마다 공부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는 할당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나, 원래 그것은 ‘윈윈 게임’이다. 성 격차를 없애 GDP가 14% 증가하면 그것은 남녀 모두의 일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나마 잘 지켜지지도 않는 이 제도마저 없애면 GDP 증대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될 터. 이걸 공당의 정책이라고 내놓는가?

무엇을 주려고 하는가

그가 이대남(20대 남성)에게 주는 메시지는 알량하기 짝이 없다. 한국이 2030을 장관이나 기업임원 시켜주는 쿨한 나라던가? 어차피 여성할당은 2030과는 별 관계없고, 남은 것은 이공계 장학금, 기관이나 지자체의 지원사업에서 가산점 등 몇몇 산발적인 예들뿐. 그거 없앤다고 이대남의 처지가 달라지나?

그가 문제 삼은 이공계 장학금 여학생 할당 규정. 그 제도는 여성들의 이공계 진학률을 30%로 끌어올리는 계획의 일환으로 2014년 박근혜 정권에서 도입한 것이다. 그게 문제라면 ‘박근혜 키즈’인 본인이 해명할 일이다. 도대체 박근혜 정권보다 더 후퇴해서 어쩌자는 얘기인가?

이공계에 여학생 비율을 늘려야 하는 것은 여성들의 이공계 기피가 임금격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학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math is not for girls)라는 편견을 둘러싼 논쟁. 그 결론은 여성들의 이공계 기피를 초래하는 교육환경이나 사회적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산점이나 할당제는 특정 성의 참여를 장려하는 데에 필요한 정책이다. 여초가 심한 곳에서는 남성의 참여를 장려하는 가산점이나 할당제가 적용된다. 현재 대다수 교대에서는 여학생 비율이 60~80% 넘지 못하게 제한한다. 아예 입학시 특정 성을 우대하는 예가 이거 말고 또 있던가?

이미 성평등을 이루었다?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만 읽었어도 할당제 없애자는 소리는 할 수 없을 게다. 국민 대다수가 읽은 이 책을 이씨는 아직 안 읽었단다. 그러더니 내게 그 대신 ‘투 웨이밍’이라는 학자의 이름을 판다. 검색해 보니 신유교주의의 주창자란다. 그런데 그 분의 사고가 많이 이상하다.

어느 책을 보니 이 분이 “대학의 거의 모든 학과에서 여성이 남성을 추월했다”며 대만의 교육이 곧 “여성 지식인들에게 장악”될 거라고 말했단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 저자는 그를 이렇게 평한다. “그는 ‘이젠 남자가 여자에게 역차별 당한다’고 말하는 중국 대륙의 남자처럼 군다.”

이씨 역시 2030에선 외려 남성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캔사스대 김창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20대 여성은 학과·학점·스펙이 똑같은 남성 대비 82.6%밖에 못 벌고 있다. 이대녀(20대 여성)는 성 격차가 본격화하는 경력단절 이전부터 이미 차별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2030에서는 남성의 역차별을 말할 정도로 성 평등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순수 판타지다. 현재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여성이라 해서 가산점 주는 예가 있던가. 반대로 기업에서 출산·육아로 기업에 부담을 준다고 시험점수를 조작해 여성들을 떨어뜨렸다 적발된 예는 몇 차례 있었다.

왜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가

그들은 분노케 한 가산점들을 모아 봤다. 서울 ‘2017년 창업허브 예비창업기업 육성 프로그램’(0.5점), 2018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소상공인 특화기술개발지원사업’(1점), ‘창업 프로젝트’(3점), ‘반려동물산업 창업지원’(3점), 과기부 ‘K-Global 창업 멘토링 사업’(2점). 달랑 이게 전부다.

창업 분야에서 과소대표되는 여성의 참여를 장려하기 위한 제도이리라. 달랑 이 몇 개 프로젝트의 여성 가산점에 그토록 분노한다면, 남성할당제로 아예 입학하는 여학생 수를 제한하는 교대 입시에는 광분을 해도 모자랄 일. 하지만 여성들은 군말 없이 이 불이익을 수용하지 않던가.

‘나는 왜 사소한 일에만 분노하는가?’ 간단하다. 거대한 일엔 분노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2030을 좌절시킨 것은 거대한 사회구조. 알기 힘든 이 추상적 구조에 대한 분노를 그들은 여성이라는 구체적 존재에 투사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그들을 좌절시킨 그 구조의 의인화다.

할당제나 가산점을 없애면 가능할 수도 있었을 GDP 14.4% 증대, 거기서 창출될 일자리는 포기해야 한다. 그들이 좌절과 분노를 여성에게 대리 분출하는 것을 부추길 때, 이씨는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외려 그들의 절규를 무시하고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표(票)퓰리즘

황교안씨(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거기에 숟가락을 얹는다. “문재인 정부는 일반 국민이 부자 되는 꼴을 결단코 보지 못하는 듯하다.” 늙으나 젊으나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2030의 문제의 대책이 고작 빚내서 가상화폐 사라는 것인가? 코인 사는 젊은이가 외국의 다섯 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거늘.

젊은이들이 가상화폐에 매달리는 것은 그것밖에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취직해도 근로소득으론 집을 살 수 없다. 성실하게 일만 하고도 먹고살 수 있게 해줄 방안을 내놔야지, 이대남의 분노는 여성에게 돌리고, 좌절은 가상화폐로 풀어주는 게 공당에서 할 짓인가.

이준석씨가 이대남 표심을 안티페미니즘의 표출로 푸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해석을 고집하는 것은 당내의 입지를 위한 개인 이데올로기일 뿐. 그의 안티페미 캠페인은 국민의힘으로 올 수도 있었을 2030 여성들을 ‘영원히’ 내칠 뿐이다. 그는 제 이익을 위해 당의 이익을 해치고 있다.

김병민 정강정책위원장이 국민의힘의 공식입장을 밝혔다. “양성평등 사회의 실질적 구현을 위해 남녀가 기회를 동등하게 보장받도록 해야 하며, 정치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서 성별의 대표성을 확보하도록 남녀 동수를 지향한다.” 이게 정답이다. 당을 위해서라도 그는 일탈을 멈춰야 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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