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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암호화폐, 광란의 20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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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김창규 경제에디터

얼마 전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한 30대 직장인은 곳곳에서 ‘주식으로 연봉보다 더 벌었다’‘암호화폐(가상화폐)로 집을 샀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여윳돈으로 약간의 주식투자만 하고 있다는 그는 “한 동료가 암호화폐로 큰 돈을 벌어 회사를 그만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나는 그동안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요즘 2030세대 두 명만 모이면 암호화폐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2030세대가 다른 사람은 돈 벌고 있는데 나만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했다. 이른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다.

올들어 암호화폐 계좌수 두배 #신규 가입자의 64%가 2030 #전문가 “1920년대 떠올라” 진단 #500만 투자자 보호 대책 필요

투자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광풍은 부동산, 주식에 이어 암호화폐로 옮겨 갔다. 최근 암호화폐는 하루 거래대금이 25조원에 달해 국내 주식 거래 규모를 넘어섰다. 지난 2월 계좌수는 250만개를 넘어서 두 달만에 두 배에 육박했다. 특히 신규 가입자의 64%가 2030세대다. 투자자예탁금도 4조6000여억원으로 지난해 말의 2.7배 수준으로 뛰었다.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가격도 올 초에 비해 두 배 수준으로 오르기도 했다. 말 그대로 광풍이다.

기성세대보다 경제활동 기간이 적은 탓에 집을 살 만큼 돈을 모으지 못했던 2030세대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때 절망했다. 하지만 이들은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기회를 봤고 주가 상승세가 밋밋해지자 암호화폐 시장으로 갈아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암호화폐는 투기성이 강한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기 때문에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보호할 수는 없다”는 입장(은성수 금융위원장)이다. 그러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올 정도로 2030세대의 반발이 거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1929년 2월 발매된 에디 캔터라는 가수의 ‘I Faw Down an’ Go Boom!(나는 폭망했다네)’라는 노래를 소개했다. 이 노래는 “주식 관련 정보를 얻어 주식을 샀더니 셔츠와 양말까지 잃었다. 내가 주식을 사는 순간 주가가 폭락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러 교수는 “(지금) 1929년 수준의 시장 붕괴를 예측할 만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면서도“주식 시장의 급락이 발생한다 해도 결코 놀랄 만한 상황이 아니다”고 밝혔다.

서소문 포럼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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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문가는 최근 흐름이 100년 전인 ‘광란의 20년대’와 비슷하다고 진단한다. 1918년부터 2년간 5000여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이 시들해지자 1920년대 들어 한동안 눌렸던 소비와 투자 욕망이 분출했다. 이후 전 세계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929년 주식시장이 폭락하며 결국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건축 자재부터 주식, 비트코인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자산 가격이 한꺼번에 치솟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세계 자산 시장이 버블에 접어들었다는 두려움이 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주택 매매 건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6년 이후 가장 많았고, 목재 가격도 덩달아 올해에만 57% 오르며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한국을 비롯해 뉴질랜드·캐나다 등 주요국의 집값이 고공행진 중이다. 곡물·구리·원유 등도 상승세다. 또 세계 곳곳에서 주식 시장이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은 올해 들어서만 23번 기록을 경신했다. 실러 교수도 S&P500지수의 총수익률이 지난 10년간 연평균 12%에 달해 이 기간 투자자산의 실질가치는 3배나 뛰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 대공황 직전이던 ‘광란의 2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고 분석한다.

모든 자산시장이 동시에 들끓고 있는 건 코로나19 여파로 각국 정부가 돈줄을 풀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에 돈이 흘러넘치고 각종 자산 값은 오르니 많이 오를 만한 자산으로 돈이 몰려다닌다. 암호화폐가 급등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발 금융시장 혼란을 우려한다. 관련법조차 제대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암호화폐는 가상자산이라며 팔짱을 끼고 있다. 지금 암호화폐는 3~4년 전의 암호화폐가 아니다. 투자자가 500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패닉에 빠지면 한국 경제도 패닉에 빠진다.

김창규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