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정배의 시사음식

영화 ‘자산어보’ 속 홍어

중앙일보

입력 2021.04.2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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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최근 개봉한 영화 ‘자산어보’는 슬픔이 가득하다. 정약전(丁若銓·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譜)』(1814)에서 “나는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고 고백하고, 흑산을 검붉은 색을 뜻하는 자(玆)로 바꾸어 불렀다. 19세기 초는 한국인의 어보(魚譜)가 처음이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다. 조선 최초의 어류도감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1803)에 이어 『자산어보』와 『전어지(佃漁志)』가 잇따라 발간됐다. 조선 후기의 인구 증가와 도시 발달로 인한 어물 수요 증가의 결과였다.

서학이 들어오고 근대의 파고가 서양의 고래잡이배들처럼 한반도의 바다에 출몰하기 시작한 혼돈과 파괴의 시기였지만 조선은 여전히 ‘힘이 센’ 성리학의 이기론이 지배하던 세상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형인 약전은 흑산도 청년 장창대에게 어류에 관한 지식을 얻고 그것을 실용적 관점으로 기록한다. 약전은 글에 더해 그림을 그려 색칠을 한 해족도설(海族圖說)까지 구상했으나 다산의 반대 등으로 생각을 접는다.

[사진 박정배]

[사진 박정배]

그림이 빠졌지만 『자산어보』의 어류 설명은 크기·형태·색·맛 등을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 압권은 홍어다. ‘회·구이·국·포에 모두 적합하다.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홍어를 썩혀서 먹는 것을 좋아하니 지방에 따라 음식을 먹는 기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국을 만들어 배부르게 먹으면 몸속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며, 술기운을 다스리는 데도 효과가 크다.’

오늘날에도 삭힌 홍어의 중심지는 나주 가까운 마을인 영산포다. 영산포에는 삭힌 홍어회가 가장 유명하지만 홍어보리앳국도 즐겨 먹는다.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심은 보리의 싹을 살코기보다 아린 맛이 덜 나는 애나 내장과 함께 끓여낸 홍어보리앳국은 구황(救荒) 음식이자 술안주이며 ‘몸속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 주는 보양식이었다. 보리순은 다른 지방에서는 먹지도 않지만 보리농사가 많은 남도 지방은 겨울에서 봄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재료다.

전라도 서해안 특산물인 홍어는 8세기 중 후반 신라시대의 목간(木簡)에 홍어의 우리말인 가화어(加火魚·가브리=가오리)로 등장한 만큼 오랜 식자재였다.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청장관전서』에서 ‘홍어는 곧 가오리(加五里)다’라고 적었다. 영화 ‘자산어보’에는 정약전과 알고 지내던 홍어 장수 문순득이 나온다. 풍랑을 만나 일본에서 중국의 광주와 마카오를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 여정을 약전이 기록한 『표해시말(漂海始末)』(1818)에 그 내용이 전한다. 19세기 초반의 멀고 검은 섬 흑산도는 전라도의 고도가 아닌 서양의 고래잡이배와 천주교 때문에 한양에서 유배 온 실학자와 학문으로 신분 상승을 꿈꾼 상놈과 동남아를 다녀온 홍어 장수까지 등장하는 패러다임의 교차점이었다.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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