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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비혼출산도 가족 인정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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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족의 개념이 달라진다. 정부가 방송인 사유리로 촉발된 비혼 출산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고 혼인·혈연·입양만을 가족으로 인정한 현행 법률도 바꾸기로 했다. 민법에선 아예 가족 규정을 삭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자녀의 성(姓)을 부모 협의로 정하는 법률 개정도 추진 중이다.

여가부, 민법 가족 규정 삭제 검토 #현행법선 혼인·혈연·입양만 해당 #여가부, 5개년 건강가정계획 발표 #정자공여·대리출산 등 쟁점 논의 #미혼부 출생신고 요건도 완화 #관련법 개정 국회 문턱 넘어야 #종교계 “전통적 가족 해체 우려”

여가부가 27일 발표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년)에는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공론화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20대 55%, 30대 56% 정도가 수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처럼 비혼 출산에 대한 우리 사회 수용도는 많이 높아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그러나 비혼 출산은)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상 시술 대상에서 배제되고 난임 시술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등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유리는 지난해 결혼하지 않고 정자를 기증받아 아기를 출산했다고 밝히면서 자발적 비혼모에 대한 논란을 불렀다. 국내에서는 비혼 상태로 정자를 기증받아 난임 시술(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주는 병원이 없어 일본으로 건너가 임신·출산을 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난임 시술을 받아 출산하는 게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대표변호사는 “금지조항은 없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현재는 법률혼이나 사실혼 부부만 시행하고 있다.

자녀 성 부모 협의로 결정…사유리식 비혼출산 공론화

지난해 11월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와 그의 아들. [사유리 인스타그램]

지난해 11월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와 그의 아들. [사유리 인스타그램]

보건소에서 사실혼 확인서를 떼가야 하고, 비혼 출산은 건강보험이 안 돼 진료비를 전액 본인이 내야 한다. 정부의 난임 시술비 지원도 받을 길이 없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이윤성 위원장은 “(비혼 출산은) 여성 인권 차원에서 논의할 때가 됐다”며 “생식이나 임신·출산 관련 의료기술이 매우 발전한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두륜 변호사는 “시대가 발전하면서 가족이나 가정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새로운 의료기술이 많이 나온다. 좀 더 일찍 했어야 하는데 늦었다”고 밝혔다.

지금은 엄마 성 쓰려면 혼인신고 때 결정

비혼 출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정자나 난자를 누가 내놓을 것 같으냐. 결국은 사회적 취약계층일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이런 사람을 도구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은 “(비혼 출산은) 사회질서와 가족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비혼 출산이 허용되면 낙태가 수월해지고, 아이를 키우다 유기하는 경우가 늘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일단 6월까지 관련 설문조사와 간담회를 실시해 난자·정자 공여, 대리출산 등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관련 법·윤리·의학·문화적 측면에서의 쟁점을 논의할 계획이다. 정책 방향 설정을 위한 연구도 추진한다. 정영애 장관은 “어떻게 논의를 추진해야 할지 공감대 형성을 위한 여러 절차를 밟아가고, 그 결과에 따라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주요 내용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주요 내용

전통적인 가족 개념도 바뀔 전망이다. 건강가정기본법 3조는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 단위”라고 규정해 놨다. 정 장관은 “건강가정기본법상의 가족의 범위나 정의 규정을 확대했을 때 다른 법에서 적용되는 차별적인 인식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가부는 2018년에도 가족의 범위에 ‘사실혼’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정 장관은 “현행법 안의 가족 범위 안으로 비혼 동거를 어떻게 넣을지 법무부 등과 추가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민법 규정에선 아예 가족의 정의를 삭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또 다양한 가족관계 내에서의 폭력 피해를 포괄하도록 가정폭력처벌법에서의 배우자 정의를 개정하기로 했다. 가정폭력을 저지른 배우자의 범위에 비혼 동거 같은 가족관계를 포함시켜 피해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단 얘기다.

여기에 자녀의 성(姓)을 부모가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현행 민법 781조는 부성 원칙을 우선하고 있다. 출생신고 시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한 것이다. 혼인신고 때 미리 정한 경우에만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출생신고 시 부모의 협의에 따라 성을 결정할 수 있게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그동안 민법이 규정한 부성 원칙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회 변화를 반영해 전면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법무부 산하 법제개선위원회도 지난해 5월 부성 우선주의 폐지를 권고했다. 김민아 여가부 가족정책과장은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황”이라며 “국회와 적극적으로 논의해 개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혼부의 출생신고 문턱도 더욱 낮춘다. 2015년 이른바 ‘사랑이법’으로 불리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미혼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친모의 성명이나 주민등록번호 등을 알 수 없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여가부는 엄마의 정보를 일부 알고 있고, 엄마가 협조하지 않을 때도 법원을 통해 신고할 수 있게 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민간 육아도우미도 정부서 신원 보증

아울러 혼외자, 혼중자 등의 차별적 용어를 개선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민법에는 부모의 혼인 여부에 따라 아동을 ‘혼인 외의 출생자’와 ‘혼인 중의 출생자’로 구분해 놨다. 이를 별도 구분 없이 ‘자녀’로 통일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부모가 양육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자식의 유산 상속에서 제외하는 이른바 ‘구하라법’도 검토한다. 여가부는 “채무 불이행에 대한 입증 책임을 양육비 채권자에서 채무자로 변경하고, 채무를 일부 이행할 때도 감치명령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추가적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 돌봄 부담 완화를 위한 계획도 담겼다. 여가부는 민간 육아도우미가 범죄 경력이나 건강 상태에 대한 신원 확인을 원하면 증명서를 발급해 주기로 했다. 2022년에는 이들 대상의 국가자격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정 장관은 “가족의 개인화, 다양화, 계층화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고 안정적 생활 여건을 보장하며, 함께 돌보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이날 한국교회총연합은 “전통적 가정과 가족의 해체 및 분화를 가속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며 “특히 다양한 동거인에 대한 분별 없는 보호와 지원 계획은 전통적 혼인과 가족제도에 대한 해체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밝혔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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