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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시상식 불참한 앤서니 홉킨스, 아버지 무덤에서 시 낭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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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국 웨일스 자택에서 피아노 연주 중인 앤서니 홉킨스. [사진 앤서니 홉킨스 트위터 캡처]

영국 웨일스 자택에서 피아노 연주 중인 앤서니 홉킨스. [사진 앤서니 홉킨스 트위터 캡처]

영화 ‘더 파더’로 제93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앤서니 홉킨스(83)는 25일(현지시간) 열린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전년도 남우주연상 수상자 호아킨 피닉스는 “앤서니 홉킨스에게 트로피를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남우주연상 수상에 “예상 못해” #고향 웨일스 생활엔 “정말 행복”

시상식 이튿날 아침 홉킨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 세계 팬들에게 수상 소감을 전했다. 홉킨스는 영국 웨일스의 푸른 들판을 배경으로 찍은 이 동영상에서 “좋은 아침이다. 저는 (영국) 웨일스 제 고향에 와 있다”면서 “저는 너무 일찍 우리를 떠난 채드윅 보스만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정말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하며 “모든 분에게 정말 고맙다. 영광이다”고 인사했다.

지난해 대장암으로 사망한 채드윅 보스만은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로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됐다. 사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유색인종 배우다. 홉킨스는 영화 ‘더 파더’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앤서니’로 분해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의 역할을 탁월한 연기력으로 소화해냈다.

시상식 후 미국 언론들은 ‘앤서니 홉킨스는 어디에 있었나’‘홉킨스는 왜 시상식에 나오지 않았나’라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불참한 건 매우 이례적이어서다. 뉴스위크는 “홉킨스는 앞서 열린 골든 글로브와 BAFTA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팬들은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시상식 날 오후 홉킨스는 웨일스에 있는 아버지의 묘지를 찾았고, 자신의 트위터에 딜런 토머스(1914~1953)의 시 “고이 잠들지 마십시오(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를 낭송하는 영상을 올렸다. 이 시는 딜런 토마스의 시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시인이 오래 앓고 있던 아버지에게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절규하듯 당부하는 내용이다.

홉킨스는 트위터에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리처드 홉킨스 영원히 편히 쉬세요”라고 적고 묘지 근처에 서서 시를 낭송했다.

“고이 잠들지 마십시오./노년에는 날이 저물수록 더욱 불태우고 몸부림쳐야 하니,/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분노하십시오./ 똑똑한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 어둠이 마땅함을 알게 되지만,/자신의 언어로는 어떤 번개도 가르지 못하기 때문에/고이 잠들지 않습니다···”.

홉킨스는 시를 읊다가 왼쪽 손을 가슴에 얹으며 “아, 마음이 아프다”며 낭송을 멈췄다. 이 동영상은 27일 오전(한국시간)까지 현재 160만 명이 보았다.

뉴스위크는 홉킨스가 최근 선데이 타임스 인터뷰에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 밝혔다고 전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오트밀을 먹고, 운동한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피아노 연주를 하고 고양이와 논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이 별로 없다. 난 웃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주 사교적이진 않다. 옛날엔 파티가 열리는 곳에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 있는 게 너무 행복하다.”

실제 홉킨스는 최근 트위터에 웨일스에서의 생활을 종종 올린다. “아티스트이자 화가, 작곡가, 배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피아노 연주 동영상도 올렸다. 지난달 미술 전문 매체 아트뉴스(ARTnews)는 화가로서 홉킨스 인터뷰 기사를 소개했다. 인터뷰에서 홉킨스는 “다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내가 예전에 그린 그림을 본 아내(스텔라)의 권유로 몇 년 전부터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나는 그저 즐기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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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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