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15%만 채운 대학도…‘유령원서’ 의혹까지 떠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4.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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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봄꽃이 가득 핀 캠퍼스 곳곳에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올해 지방대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대규모 정원 미달 사태 때문이다. 봄 학기가 개강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지방대 소멸’에 대한 위기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방대들은 대학과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학제를 개편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강원대·강릉원주대 등 통합 자구책
일부 대학선 학생들 “총장사퇴” 시위
“폐과 막아달라” 청와대 청원도 나와
전문가 “수도권 쏠림현상 해소해야”

이 과정에서 정원 미달 사태 책임을 두고 대학 측과 학생들 간 갈등을 빚거나 폐과 대상 학과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대학가를 강타한 정원 미달 사태와 학내 갈등, 지방대의 생존 전략과 미래 비전 등을 짚어봤다.

올해 비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대규모 정원 미달 사태가 ‘지방대 소멸’ 위기를 더욱 키우고 있다. 지난달 3일 조선대 재학생들로 구성된 홍보대사들이 신입생 등에게 캠퍼스를 안내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올해 비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대규모 정원 미달 사태가 ‘지방대 소멸’ 위기를 더욱 키우고 있다. 지난달 3일 조선대 재학생들로 구성된 홍보대사들이 신입생 등에게 캠퍼스를 안내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신입생 충원 실패, 총장님 이제 그만합시다.”

지난 2일 총장실 점거농성을 열흘 만에 푼 원광대 학생들이 든 피켓 내용이다. 올해 신입생 등록률이 79.9%로 전년보다 20%포인트 정도 줄어든 데 대한 책임론이었다. 학생들은 “신입생 유치에 실패한 무능한 총장”이라며 지난달 24일 총장실을 점거했다. 원광대 교수협의회도 성명을 내고 “현 총장은 석고대죄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원광대는 10여 년 전만 해도 ‘한강 이남의 명문대’로 불렸다. 신입생 50% 이상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광주광역시, 전남, 대전 등 타 지역에서 진학했다. 최근 학교 측은 서울행 시외버스 승강장까지 마련해 수도권 학생들의 통학을 지원해 왔지만 정원 미달 사태를 피하진 못했다.

올해 신입생 미달 사태가 벌어진 충북 음성의 극동대. 최종권 기자

올해 신입생 미달 사태가 벌어진 충북 음성의 극동대. 최종권 기자

경북에 있는 4년제 사립대인 A대학은 지난 12일 ‘(대학) 이전 추진위원회’ 첫 회의를 열었다. 학교를 수도권 등 신입생 모집이 수월한 곳으로 옮기는 것을 검토하기 위해서다. A대학 관계자는 “지방대 위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올해 대입에서 정원을 못 채운 지방대가 속출하면서 ‘미달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입시 실패 책임론, 폐과·학과 신설, 대학 통폐합 등 각종 ‘생존 전략’ 바람이 불면서다. 지방대들은 “(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속설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라고 걱정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4년제 대학 162곳에서 2만6129명을 추가 모집했다. 전년도(9830명)보다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이 가운데 91.4%(2만3889명)가 비수도권 지방대여서 ‘위기의 지방대’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경북 경주대 정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 인근 서라벌대와 통합을 촉구하고 있다. 김윤호 기자

경북 경주대 정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 인근 서라벌대와 통합을 촉구하고 있다. 김윤호 기자

지방대의 미달 후유증은 총장 자리부터 위협한다. 김상호 대구대 총장은 최근 학교재단에 의해 해임이 결정됐다. 앞서 김 총장은 지난달 신입생 미달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구대 신입생 등록률은 80.8%로 전년도보다 19%포인트 떨어졌다.

대학 ‘합치기’ 바람도 거세다. 4년제 사립대인 경주대는 거리로 3㎞ 정도 떨어진 같은 학교법인 산하 전문대인 서라벌대와 통폐합을 논의 중이다. 신입생 등록률이 경주대는 15.4%, 서라벌대는 77%였다.

강원대와 강릉원주대는 지난 2월 25일 업무협약을 맺고 통합에 합의했다. 강원대 관계자는 “캠퍼스별 특성화를 전제로 한 ‘연합대학’ 설립에 합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제 개편을 고민 중인 곳도 있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학기제를 3학기제로 바꾸는 것 같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학제 개편 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0%였던 신입생 등록률이 올해는 83.8%를 기록한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우 총장은 “최근 새로운 단과대학 과정(사이버대학)을 만들고, 수험생들이 선호할 만한 인기 학과 개설(탐정학과 등), 비인기 학과 모집 중단 등을 결정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전 배재대는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배재성장위원회’를 구성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 나갈 방침이다. 배재대는 신입생 등록률이 지난해 100%에서 올해는 88.4%로 떨어졌다.

숫자로 보는 위기의 지방대

숫자로 보는 위기의 지방대

갈등도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지난 2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한국음악과 폐과를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학교 곳곳에 성명서와 폐과 이야기가 실린 전문지 기사가 나붙었다. 김인홍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무처장은 “추가 모집에도 충원율이 지난해보다 6.4%포인트 감소했다”며 “필사적으로 학사구조를 개편해 경쟁력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에선 심각한 정원 미달 사태로 인해 이른바 ‘유령원서’ 의혹도 나오고 있다. 대학 관계자가 자신의 지인, 친인척 등에게 대학에 서류만 접수하도록 해 인위적으로 신입생 충원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육행정학과 교수는 “지방대 위기는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 등이 주된 원인”이라며 “장기적으로 미달 문제가 더 심화할 것이며, 지금 상태로 가면 지방대 고사는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지역 균형발전을 통한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인성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지역 균형발전이 이뤄지면 수도권 쏠림으로 인한 지방대의 위기를 일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주·음성·대전·익산·대구=김윤호·최종권·이은지·허정원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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