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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하다 '유령원서'까지 등장…지방대 충격의 신입생 실종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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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가득 핀 캠퍼스 곳곳에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올해 지방대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대규모 정원 미달사태 때문이다. 봄 학기가 개강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지방대 소멸'에 대한 위기감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지방대들은 대학과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학제를 개편하는 등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한창이다. 이 과정에서 정원 미달 사태 책임을 두고 대학 측과 학생들 간 갈등을 빚거나 폐과 대상 학과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지방대 위기] ①신입생 감소 쓰나미 닥친 지방대학

중앙일보는 올해 대학가를 강타한 정원 미달사태와 학내 갈등, 지방대들의 생존 전략, 지방대 미래비전 등을 네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충북 음성에 있는 극동대는 올해 신입생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코로나19와 신입생 감소로 캠퍼스 내 버스정류장이 텅 비어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음성에 있는 극동대는 올해 신입생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코로나19와 신입생 감소로 캠퍼스 내 버스정류장이 텅 비어 있다. 최종권 기자

“신입생 충원 실패. 개선의지 전무. 총장님 이제 그만 합시다.”

 지난 2일 총장실 점거농성을 열흘 만에 푼 원광대 학생들이 든 피켓 내용이다. 올해 신입생 최종 등록률이 79.9%로 전년보다 20%포인트 정도 줄어든데 대한 책임론이었다. 학생들은 “신입생 유치에 실패한 무능한 총장”이라며 지난달 24일 총장실을 점거했다. 원광대 교수협의회도 성명을 내고 “현 총장은 원광대 구성원 앞에서 석고대죄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원광대는 10여년 전만 해도 ‘한강 이남의 명문대’로 불렸다. 신입생 50% 이상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광주광역시, 전남, 대전 등 타 지역에서 진학했다. 2008년엔 호남권을 비롯한 충청권, 수도권 등 160여 개 학교에서 4만명을 초청해 캠퍼스 투어를 진행할 정도였다. 당시 동원된 버스만 하루 130여 대에 달했다. 최근 학교 측은 서울행 시외버스 승강장까지 마련해 수도권 학생들의 통학을 지원해 왔지만 정원 미달사태를 피하진 못했다.

경북에 있는 4년제 사립대인 A대학은 지난 12일 '(대학) 이전 추진위원회' 첫 회의를 열었다. 현재 경북에 있는 학교를 수도권 등 신입생 모집이 수월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한지를 논의하는 기구다. A대학 관계자는 "지방대의 위기 상황에서 생존을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원광대. [중앙포토]

원광대. [중앙포토]

‘무능한 총장, 개선 의지 전무’

올해 대입에서 정원을 못 채운 지방대가 속출하면서 상당수 지방대에서 ‘미달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 정원 미달 상태로 봄꽃 핀 캠퍼스를 열긴 했지만, 입시 실패 책임론, 폐과·학과 신설, 대학 통폐합 등 각종 ‘생존전략’ 바람이 불면서다. 지방대들은 "(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속설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라고 걱정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4년제 대학 162곳에서 2만6129명을 추가모집 했다. 전년도(9830명)보다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더 큰 문제는 정시에 실패해 진행한 추가모집 대학 대부분이 비수도권에 있는 지방대라는 점이다. 올해 비수도권의 추가모집 인원은 전체의 91.4%(2만3889명)에 달했다. 반면 서울·경기·인천은 8.6%(2240명) 수준이어서 '위기의 지방대'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지방대의 ‘미달 후유증’은 총장 자리부터 위협한다. 김상호 대구대 총장은 최근 학교재단에 의해 해임이 결정됐다. 앞서 김 총장은 지난달 올해 신입생 입학 정원을 못 채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구대의 2021학년도 신입생 등록률은 80.8%로 전년도보다 19%포인트 떨어졌다.

대학 앞 신입생 ‘환영’·‘대학 통합’ 현수막 

지난달 경북 경주대 정문 신입생 환영 현수막 앞에 서라벌대와 통합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윤호 기자

지난달 경북 경주대 정문 신입생 환영 현수막 앞에 서라벌대와 통합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윤호 기자

대학 '합치기' 바람도 거세다. 대표적인 곳이 경주대와 서라벌대다. 4년제 사립대인 경주대는 거리로 3㎞ 정도 떨어진 같은 학교법인 산하 전문대인 서라벌대와 통폐합을 논의 중이다. 경주대의 2021학년도 신입생 최종 등록률은 15.4%. 추가 모집까지 했지만 대규모 미달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서라벌대의 신입생 최종 등록률은 77%였다.

강원도에 있는 강원대와 강릉원주대는 지난 2월 25일 업무협약을 맺고 통합에 합의했다. 이들 대학은 ‘1도 1국립대’체제를 구축해 학령인구 감소 위기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강원대 관계자는 "캠퍼스별 특성화를 전제로 한 '연합대학' 설립에 합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살길 바쁜 지방대…통합·학제 개편 몸부림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지난달 25일 광주 서구 광덕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예비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뉴스1]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지난달 25일 광주 서구 광덕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예비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뉴스1]

학제 개편을 고민 중인 곳도 있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학기제를 3학기제로 바꾸는 것 같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학제 개편 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0%였던 대구가톨릭대의 올해 입시 최종 등록률이 83.8%를 기록한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우 총장은 "최근 새로운 단과대학 과정(사이버대학)을 만들고, 수험생들이 선호할만한 인기 학과 개설(탐정학과 등), 비인기 학과 모집중단 등을 결정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전 배재대는 대학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배재성장위원회’를 구성,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책을 마련해 나갈 방침이다. 배대재는 정원 2048명 모집에 1810명이 등록해 238명이 미달됐다. 등록률이 지난해 100%에서 올해는 88.4%로 떨어진 상태다.

162곳, 2만6129명 추가모집…91%가 지방대

충북 음성에 있는 극동대 앞에 있는 원룸 건물이 코로나19와 신입생 감소로 입주자가 줄었다. 최종권 기자

충북 음성에 있는 극동대 앞에 있는 원룸 건물이 코로나19와 신입생 감소로 입주자가 줄었다. 최종권 기자

갈등도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지난 2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한국음악과 폐과를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온 게 대표적이다. 학교 곳곳에 성명서와 폐과 이야기가 실린 전문지 기사가 나붙었다. 김인홍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무처장은 ”우리 대학은 올해 추가모집을 하였음에도 충원율이 지난해보다 6.4% 감소했다“며 ”필사적으로 학사구조를 개편해서 경쟁력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올해 최종 등록률 93.3%로 전년(99.7%)보다 떨어졌다. 지난달 추가모집에서 수능 점수가 없는 지원자까지 개교 이래 처음 받았다는 게 대학 측의 설명이다. 아울러 이 대학은 미래지향적인 대학 느낌이 들도록 '경주캠퍼스' 대신 다른 이름을 찾는 중이다.

친인척 동원 ‘종이원서 제출’ 의혹도 

지난달 경북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신입생 미충원 사태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어있다. 김윤호 기자

지난달 경북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신입생 미충원 사태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어있다. 김윤호 기자

일부 대학에선 심각한 정원 미달사태로 인해 이른바 '유령 원서' 의혹도 나오고 있다. 대학 관계자가 자신의 지인, 친인척 등이 대학에 인적사항 등만 접수해 서류상으로만 신입생 충원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전문가들 또한 지방대의 미래에 대해 대체로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남기 광주교육대 교육행정학과 교수는 “지방대의 위기는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 등이 주된 원인”이라며 “장기적으로 미달 문제가 더 심화할 것이며, 지금 상태로 가면 지방대 고사는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대학구조조정과 함께 지역균형발전을 통한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황인성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지역 균형발전이 이뤄지면 수도권 쏠림으로 인한 지방대의 위기를 일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주·음성·대전·익산·대구=김윤호·최종권·이은지·허정원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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