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철' 명찰 단 그녀…종로 한복판서 머리채 잡혀 끌려갔다

중앙일보

입력 2021.04.27 14:19

업데이트 2021.04.27 14:51

27일 정의기억연대와 여성·인권·평화·종교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의 존엄과 인권을 외면한 재판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외쳤다. 권혜림 기자

27일 정의기억연대와 여성·인권·평화·종교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의 존엄과 인권을 외면한 재판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외쳤다. 권혜림 기자

27일 오전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 한 여성이 머리채를 잡힌채 끌려나가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이 여성은 ‘민성철 재판부’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었다. 정의기억연대가 지난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민성철)를 비판하는 퍼포먼스였다.

“국제법 흐름 스스로 퇴행시켜”  

정의기억연대와 여성ㆍ인권ㆍ평화ㆍ종교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의 고통에 눈감고 그 절실한 호소를 짓밟은 이번 판결에 우리는 분노한다”며 “이번 판결은 인권 최후의 보루라는 법의 정신을 내팽개치며 역사를 거꾸로 돌린 행위”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재판부는 불과 3개월 만에 판결의 의미를 뒤집으며 인권 중심으로 변화해가는 국제법의 흐름을 스스로 퇴행시켰다”며 “일본군 성노예제라는 심대한 범죄행위마저 국가의 주권적 행위로 해석하고, 주권면제를 적용해 전시 성폭력을 묵인하는 반인권적ㆍ반평화적 판결을 감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황당한 것은 이번 재판부가 ‘2015 한일합의’를 피해자 권리구제의 근거로 삼았다는 점”이라며 “2015 한일합의는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수차에 걸쳐 발표했고, 헌법재판소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입은 피해의 원인이나 국제법 위반에 관한 국가책임이 적시되어 있지 않고 일본군 관여의 강제성이나 불법성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민성철 재판부' 이름표를 붙인 한 시민단체 회원이 판사봉으로 먹칠을 하고 있다. 권혜림 기자

'민성철 재판부' 이름표를 붙인 한 시민단체 회원이 판사봉으로 먹칠을 하고 있다. 권혜림 기자

“재판부, 법 기술자들 같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발언자로 나선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는 “법원은 피해자들의 호소와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판사들은 법에도 눈물이 있고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그들은 마침 법 기술자들 같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인용한 국제 관습법은 어디에 근거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일본군성노예제 문제가 전시 성폭력의 원인이자 인도에 반한 범죄이며 불처벌 되어선 안되는 것이 규범으로 인정되고 굳어지고 있는 것이 국제적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정태효 기독여민회 여성인권복지위원장은 “민성철 재판장을 통해 아직도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너무나 뼈아프게 느낀다”며 “우리는 역사적 인식을 새롭게 하고 어떻게 이 잘못된 재판을 뒤엎을 것인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될 것 같다”고 했다.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대표는 “성노예제 문제는 피해자 중심 접근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재판부 말처럼 한일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노력해왔으나 해결 못 했다”며 “사법부는 정권 눈치 보지 말고 정상적 판단을 위해 노력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지난 21일 고(故) 곽예남ㆍ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한 주권국가가 다른 나라의 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국가면제를 적용해 사건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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