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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집값 부담 덜어주겠다던 GTX…이젠 부동산 시장 ‘태풍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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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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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운정과 화성 동탄을 잇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철도차량의 실물모형(Mock-Up).

파주 운정과 화성 동탄을 잇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철도차량의 실물모형(Mock-Up).

얼마 전 열린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1~2030) 수립 연구’ 공청회에서 단연 관심사는 서부권 광역급행철도, 이른바 GTX-D였다.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될지와 노선이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시선이 쏠렸다. 이 계획은 관련법에 따라 국토교통부가 10년 단위, 5년 주기로 수립하는 철도 분야의 최상위 법정계획으로 새로 철도를 건설하려면 우선 이 계획에 들어가야만 한다.

2007년 김문수 지사 GTX 첫 언급 #교통 불편과 집값 부담 완화 목적 #지금은 GTX 노선 따라 집값 희비 #“GTX·연계망 늘려 수혜권 넓혀야”

결과는 인천과 김포 지역 주민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쪽짜리’였다. 계획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노선은 당초 인천과 경기도가 제안한 것과 달리 ‘김포(장기)~부천종합운동장’으로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을 거쳐 경기도 하남까지 이어지는 GTX-D 노선을 기대했던 지역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GTX-D 덕분에 서울로의 출퇴근 등 극심했던 교통 불편이 크게 덜어질 거란 기대감이 충족되지 못한 탓이 크지만, 못지않게 부동산 가격을 둘러싼 전망도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인 GTX(Great Train express)가 부동산 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자리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실제로 현재 사업이 진행 중인 GTX-A(운정~동탄), GTX-B(송도~마석)·GTX-C(수원~덕정)가 정차할 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GTX 수혜권에 포함될 거란 기대감이 높은 경기도 의왕시와 안산시 상록구, 경기도 남양주시 등은 아파트값이 10% 넘게 올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GTX의 시작은 교통 불편 해소와 집값 부담 완화가 목적이었다. 지하 40~50m에 뚫은 대심도 터널을 시속 100㎞대의 빠른 속도로 달리면 통근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교통 불편이 해소되고, 굳이 집값 비싼 서울에 살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였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GTX) 노선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토교통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GTX) 노선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토교통부]

GTX 개념이 처음 언급된 건 2007년 경기도 화성의 동탄 2신도시 광역 교통대책 논의 과정에서다. 김문수 당시 경기도 지사는 자신이 내건 공약이었던 ‘뻥 뚫린 경기도’를 실현하기 위해 ‘강남~동탄 간 대심도 급행철도’를 추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한때 GTX의 첫 글자인 G가 ‘Great’가 아닌 ‘Gyeonggi(경기)’의 약자로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방침은 2009년 GTX-A·B·C 등 3개 노선 계획으로 구체화된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GTX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아예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이 기조는 현 정부에도 이어져 GTX 3개 노선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GTX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드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부 관계자는 “워낙 집값에 미치는 영향이 큰 탓에 GTX 관련 언급 자체가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사실 광역급행철도의 건설이 집값을 대폭 끌어올리는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GTX의 롤 모델로 알려진 영국 런던의 크로스레일(CROSSRAIL)도 마찬가지다. 크로스레일은 런던 생활권 동서부를 가로지르는 광역급행철도 건설사업으로 2009년에 착공해 내년 상반기 개통 예정이다. 노선은 서쪽 레딩 지역에서 출발해 히스로 공항, 런던 도심을 지나 동쪽 셰필드까지 이어지는 118㎞ 구간이다. 속도는 지상구간은 시속 160㎞이며, 지하는 시속 100㎞가량으로 이 철도가 개통하면 런던 외곽에서 도심까지 40분대에 주파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영향으로 최근 5년간(2015~2020년) 크로스레일 역세권의 부동산 가격은 30% 넘게 올라 런던 중심부의 상승률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GTX 사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GTX 수혜 여부를 둘러싸고 부동산 가격 양극화만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준호 한양대 교수는 “철도는 한번 건설되면 50~100년 이상 유지되면서 도시개발과 접근성 향상 측면에서 도시민에게 큰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며 “단기적인 측면의 부정적 영향보다는 큰 틀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수도 “GTX 추진에 따라 직접 수혜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이를 GTX의 악영향으로 보기보다는 양질의 주거지가 확대된다는 긍정적 효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양질의 주거지가 확대되면 장기적으로는 수도권 집값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GTX 노선과 연계교통망 확충을 통해 GTX 수혜권을 대폭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GTX역이 위치한 도시의 대중교통체계를 GTX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정책 의지가 필요하다”며 “현재 3개 노선 외에 추가로 GTX 노선을 확충하고, 연계 교통망도 늘려 수도권 어디에서나 10~15분 내로 GTX 이용이 가능토록 하면 부동산 가격 양극화 문제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GTX 사업이 본래 목적대로 성과를 내기 위해선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세밀하고 장기적인 계획 추진이 필요하다. 선거 등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보단 실질적으로 주민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뚝심 있게 걸어가야 할 시점인 듯싶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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