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린 사생활도 없냐” 공무원들 사적모임 금지에 뿔났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정부는 26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1주일간을 ‘특별방역관리 주간’으로 선포해 방역의 고삐를 죄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공공 부문에서는 회식·모임이 금지되고 재택근무 및 시차출퇴근 제도를 확대 시행한다.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재택근무에 들어간 공무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26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1주일간을 ‘특별방역관리 주간’으로 선포해 방역의 고삐를 죄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공공 부문에서는 회식·모임이 금지되고 재택근무 및 시차출퇴근 제도를 확대 시행한다.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재택근무에 들어간 공무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

26일 낮 12시. 정부세종청사 5동 해양수산부 구내식당에 점심 줄이 길게 늘어섰다. 마스크를 쓴 채 차례를 기다리던 공무원들이 음식을 받아 칸막이를 친 식탁에 속속 앉았다. 200여 개의 좌석이 금방 가득 찼다. 해수부의 김모(40) 서기관은 “옆 부서 직원 1명과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사적 모임을 금지한다고 해서 취소했다”며 “‘보여주기’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고 털어놨다.

4인 이하 부서간 회식까지 금지 #정부 특별방역관리에 불만 쏟아져 #레임덕 차단용 기강 다잡기 해석도 #재택근무 확대엔 “의무 아닌 권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이날부터 다음 달 2일까지를 ‘특별방역관리 주간’으로 정해 공무원 회식·모임 금지 조치 등을 내리면서 공무원 사회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침이 모호한 데다 실효성이 떨어져 애먼 공무원만 옥죄는 조치라는 게 불만의 요지다.

인사혁신처는 중대본 지침에 따라 26일 정부부처에 ‘4인 이하라도 외부는 물론 소속 부서 외 공무원 간 친목을 위한 식사·모임을 금지한다. 업무상 필요에 의한 식사는 예외로 허용하되 음주를 동반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이에 대해 공무원들은 기존 지침과의 차이가 불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직사회는 지난해 연말부터 5인 이하 사적 모임 금지 조치가 이어지면서 저녁 모임을 자제해 왔다. 세종시의 번화가인 어진동·도담동 ‘먹자거리’는 오후 9시만 되면 한적한 분위기다. 특별히 달라진 게 없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지침을 공무원들이 ‘엄포’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이모(42) 서기관은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책잡히기 싫어하기 때문에 알아서 친목 모임을 자제해 왔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김모(36) 사무관도 “예외적 식사 허용 조건인 ‘업무상 필요’의 경계가 불분명해 아예 약속을 잡지 않는다”며 “새삼스럽지 않은 지침인데 공무원만 콕 집어 얘기하니 죄 지은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함께 발표된 재택근무·시차 출퇴근제 확대 지침도 딴 나라 얘기이긴 마찬가지다. ‘의무’가 아닌 ‘권고’ 수준이라서다. 세종시 중앙부처는 이미 지난해부터 부서 근무 인원의 30% 이내에서 재택근무할 수 있도록 했지만, 비율을 다 채워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기재부의 한 과장급 간부는 “그동안에도 잘 활용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1주일 만에 확대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대선을 1년 앞둔 정부가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공직 기강 다잡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해영(전 정부업무평가위원회 민간위원장) 영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공직 기강 확립의 명분으로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최근의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깔린 것 같다”며 “통제하기 쉽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희생양으로 삼는 건 코로나19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코로나가 안 잡히니까 만만한 공무원만 잡는다” “공무원은 사생활도 없느냐” 등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공무원 사회 일각에선 “모범이 돼야 할 대통령도 5인 이상 모임을 하는 마당에 우리만 조심하라는 거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교체된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전직 참모 4명을 관저로 불러 술을 곁들인 만찬을 한 것을 꼬집으면서다.

공무원들의 불만에 대해 최선호 인사혁신처 복무과장은 “대유행의 고비에 있는 만큼 일주일만 공공부문이 선제적으로 방역 조치를 지켜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권혜림 기자 kh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