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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피트에 돈 좀 쓰라해" 윤여정 거침없는 '입담'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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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순간? 잘 모르겠어요.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

아카데미 시상식 후 국내 매체 공동 인터뷰 #입담의 비결은 "나이듦과 친구들과 수다" #"최고의 순간? 아카데미가 전부 아니다"

오스카 트로피를 품은 배우 윤여정 씨는 국내 매체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25일(현지시간) 이른 시간부터 시작된 오스카 일정을 마친 윤 씨는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한 뒤 국내 매체와 마련된 공동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밤 9시 30분이 넘어 LA 총영사관저에 도착했다. 영화 '미나리'에 딸 역으로 출연한 한예리 씨도 함께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입었던 검정 드레스 차림 그대로였고 손에는 '여우 조연상' 트로피가 쥐여 있었다.

25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씨가 LA 총영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JTBC 캡처]

25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씨가 LA 총영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JTBC 캡처]

영국 아카데미(BAFTA)상 시상식에서 대놓고 "고상한 체한다고 알려진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아 영광"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던 그의 입담은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그대로였다.  "두 아들에게 특히 감사한다. 저에게 일하러 나가라고 잔소리한 덕분"이라면서 "엄마가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입담의 비결을 묻는 말에 "오래 살아서 그렇다"며 "좋은 친구들하고 수다 잘 떨다 보니 입담이 좋아졌다"며 또 한 번 재치를 발휘했다.

이날 공동 인터뷰장에는 아들이 깜짝 방문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윤 씨는 아들을 뜨겁게 끌어안으며 수상의 기쁨을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랜 세월 연기하면서 달라진 철학이 있는지
아르바이트하다가 (연기를) 시작했다. 제 약점을 잘 알았다. 그래서 열심히 대본을 외워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절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절실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연기를 했기 때문에 대본이 성경 같았다. 상 탔다고 멋있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아무튼 많이 노력했다. 브로드웨이 명언도 있다. 누군가 "어떻게 브로드웨이에 입성할 수 있느냐" 물었더니 "연습(Practice)"이라고 답했다는 거다. 연습은 무시할 수 없다.
솔직하고 재치있는 언변 때문에 많은 사람을 사로잡았다.  
오래 살지 않았느냐. 좋은 친구들하고 수다를 잘 떤다. 거기서 입담이 왔다.    
지금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일까.
최고의 순간은 없다. 난 최고 그런 말이 참 싫다. 너무 일등, 최고 그러지 않느냐. 다 '최중(最中)'이 되면 안 되나. 같이 살면? 최고의 순간인지는 모르겠고,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지 않나. 너무 최고가 되려고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최중'만 되면 되니까.  
연기 인생 50년 동안 세계가 특히 이번 작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본을 잘 쓴 거다. 할머니나 부모가 희생하고 그러는 것은 보편적인 이야기지 않나. 그게 사람들을 움직였을 거다. 할머니 관련 소재는 정이삭 감독이 진심으로 썼으니까.  
앞으로의 계획, 윤여정의 앞으로의 여정은?
앞으로 계획 없다. 그냥 살던 대로. 오스카상 탔다고 해서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옛날부터 결심한 게 있다. 남한테 폐 끼치는 것은 싫으니까 (대사를 열심히 외웠다.) 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브래드 피트와 무대 뒤로 팔짱 끼고 나가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나.  
미국 사람들도 우리랑 똑같더라. 계속 브래드 피트 본 게 어땠느냐고 자꾸 묻더라(웃음). 브래드 피트에게 한국에 한 번 오라고 했다. 한국에 팬 많다고. 그러니까 꼭 올 거라고 하더라. 그리고 이 영화를 브래드 피트가 제작한 거다. (촬영 과정에서) 너무너무 힘들었으니 다음 영화 만들 때 돈 좀 더 써달라고 했다. 그런데 굉장히 잘 빠져나가더라. '조금' 쓰겠다고 하고, 크게 쓰겠다고는 안 그랬다.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 말하면서 정이삭, 김기영 감독을 언급했는데.  
영화는 감독이다. 감독이 굉장히 중요하다. 김기영 감독 만난 게 21살인가, 사고에 의해 만났다. 정말 죄송한 것은, 60세 이전에는 그분에 대해 잘 몰랐다. 그때는 너무 힘든 감독이었는데, 지금은 후회가 된다. 그런데 김기영 감독은 어렸을 때 만났고, 정이삭 감독은 늙어서 만났다. 정 감독은 나보다 어린데, 촬영 현장에서 누구도 모욕하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고 존중하면서 차분하게 컨트롤한다. 정 감독은 마흔셋인데 내가 존경한다고 그랬다. 내가 김기영 감독에게 미처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 정 감독이 다 받는 것 같다. 내가 감사를 아는 나이가 됐다.  
영화 '미나리'에서 마지막이 갑자기 끝나는 느낌도 있었다.  
원래 엔딩이 그렇지 않았다. 처음 시나리오대로라면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한참 뒤에 손자들이 와서 양로원에서 화투 쳐주려고 하는데 그것도 못 하게 된다. 결국 숨지면서 미나리에 대한 내레이션이 나온다. 그걸 좋아했다. 그런데 정 감독이 바꿨다. 나는 반대하는 주장을 폈는데 정 감독이 "돈(제작비)이 없다. 아이들이 10대가 되는데 그러면 다시 오디션 봐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바꾸기로 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바뀐 내용을 처음 봤는데 그 엔딩이 너무 좋더라. 사실 (영화를 본) 내 동생도 "끝이 그게 뭐냐"고 했다. 그래서 "영화를 좀 세련되게 보라"고 말해줬다.  
국민이 많이 성원하고, K 할머니라는 말까지 나왔다.  
정말 상을 타서 보답할 수 있게 돼 감사한다. 영화 찍으면서 아무 계획한 게 없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응원해주시니 나중에는 힘들어서 눈에 실핏줄이 다 터졌다. 운동선수들의 심정을 알겠더라. 2002년 월드컵 때 축구 선수들이 얼마나 정신없었을까, 김연아 선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처음 받는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꼭 말씀드려야 할 게 있다. 그동안 외국 매체와만 인터뷰 하고 한국 매체 인터뷰는 안 해 서운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 한국말로 인터뷰하는 거 좋아하지 영어로 하는 것 좋아하겠나. 이게 회사에서 하라고 한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표를 사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과 같다. 오해를 풀어달라.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살겠나.  

로스앤젤레스=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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