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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회식 금지?…“공무원이 죄인이냐” 관가 불만 가중

중앙일보

입력

26일 세종정부청사 해양수산부 구내식당에서 공무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김기환 기자

26일 세종정부청사 해양수산부 구내식당에서 공무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김기환 기자

26일 낮 12시. 세종정부청사 5동 해양수산부 구내식당에 점심 줄이 길게 늘어섰다. 띄엄띄엄 마스크를 쓴 채 식사 차례를 기다리던 공무원들이 음식을 받아 칸막이를 친 식탁에 앉았다. 200여개쯤 되는 좌석이 금방 가득 찼다. 해수부 김모(40) 서기관은 “옆 부서 직원 1명과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사적 모임을 금지한다고 해서 취소하고 구내식당을 찾았다”며 “‘보여주기’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고 털어놨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이날부터 내달 2일까지 일주일을 ‘특별 방역관리주간’으로 정해 공무원의 회식ㆍ모임을 금지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여부를 불시 단속하기로 했다. 재택근무와 시차 출퇴근 제도도 확대한다. 인사혁신처는 중대본 지침에 따라 26일 정부부처에 ‘외부는 물론 소속 부서 외 공무원 간 친목을 위한 식사ㆍ모임을 금지한다. 업무상 필요에 의한 식사는 예외로 허용하되 음주를 동반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지침이 애매한 데다 실효성이 떨어져 애먼 공무원만 옥죈다는 불만이 나온다.

세종 관가 "지침 효과있나" 

먼저 기존과 차이가 불분명하다. 공직사회는 이미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5인 이하 사적 모임 금지 조치로 저녁 식사를 자제해 왔다. 세종시의 번화가로 꼽히는 어진동ㆍ도담동 '먹자거리'는 오후 9시만 되면 한적한 분위기다. 특별히 달라진 게 없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지침을 공무원들이 ‘엄포’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이모(42) 서기관은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책 잡히기 싫어하기 때문에 알아서 친목 모임을 자제해 왔다”며 “점심은 괜찮지만, 저녁 식사는 안 되고, 다른 부서 사람은 안 되지만 같은 부서는 괜찮고 식이라면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김모(36) 사무관은 "'업무상 필요'의 경계가 불분명해 아예 약속을 잡지 않는다"며 "새삼스럽지 않은 지침인데 공무원만 콕 집어 얘기하니 죄 지은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재택근무ㆍ시차 출퇴근제 확대 지침도 딴 나라 얘기긴 마찬가지다. ‘의무’가 아닌 ‘권고’ 수준이라서다. 세종시 중앙부처의 경우 이미 지난해부터 부서 근무 인원의 30% 이내에서 재택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지침을 내렸지만, 비율을 다 채워 운영하는 경우가 드물다. 실무급에서 시차 출퇴근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고위 공무원은 물론 사무관ㆍ서기관만 돼도 재택근무나 시차출퇴근제는 쓰지 못한다.

기재부 한 과장급 간부는 “그동안 (재택근무나 시차 출퇴근제가 있었을 때도) 잘 활용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1주일 만에 확대할 수 있겠느냐”며 “공무원은 주 52시간 근무제도 적용하지 않아 출퇴근도 따로 없이 일하는데 한가한 얘기로 들린다”고 꼬집었다.

정권말 공직 기강 다잡기? 

공공부문은 지난해 코로나19 발병 초기부터 항상 민간보다 강화한 방역 지침을 적용해왔다. 선언적인 차원에 그칠뿐, 실제 방역 효과와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려운데도 이런 상황을 반복하자 불만이 커졌다.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과 관련해 혈전 부작용 논란이 불거지자 6월 접종할 예정이던 경찰ㆍ해경ㆍ소방 인력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먼저 맞도록 한 조치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대선을 1년 앞둔 정부가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공직 기강 다잡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해영 영남대 행정학과 교수(전 정부업무평가위원회 민간위원장)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공직 기강 확립 명분으로 앞세웠지만 최근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며 “공무원이 모범을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만 통제하기 쉽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희생양 삼는 건 코로나19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선호 인사혁신처 복무과장은 “특별 방역 기간 동안 지침을 어긴 공무원은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대유행의 고비에 있는 만큼 일주일만 공공부문이 선제적으로 방역 조치를 지켜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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