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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외무장관 “외교적 노력 수포”…성역 ‘혁명수비대’ 때렸다

중앙일보

입력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이 2018년 3월 이란 핵 합의에 대한 수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모습. [AP=연합뉴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이 2018년 3월 이란 핵 합의에 대한 수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모습. [AP=연합뉴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이하 혁명수비대)의 과도한 외교 정책 개입을 비판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의 비공개 인터뷰가 유출됐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솔레이마니, 회담 때마다 매번 훈수” #“혁명수비대 영향력 냉전 시기 유사”

FT·가디언 등 외신들은 이날 보도에서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이란 반체제 매체인 '이란 인터내셔널'이 입수한 녹음 파일 내용을 인용해 자리프 장관이 사망한 혁명수비대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의 독주를 비판했다고 전했다.

자리프 장관은 이란 개혁파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인 사이드 라일라즈와 올해 초 진행한 비공개 인터뷰에서 "이란의 외교적 노력은 암살된 솔레이마니와 같은 군인들의 개입으로 수포가 됐다"며 "우리가 지불한 많은 외교적 비용은 군사 분야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 외교에서 자신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도 밝혔다.

FT는 유출된 파일은 지난 2월 24일 이란 외무부가 정부 기록용으로 진행한 전체 7시간의 인터뷰 중 3시간 분량이라고 전했다.

이란 외무부는 인터뷰 사실을 인정했으나, 내부적으로 기록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외무부는 "(보도 내용은)자리프 장관이 솔레이마니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왜곡됐다"며 "허가가 나면 전체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무인기 공격으로 지난해 1월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사망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사령관. [EPA=연합뉴스]

미국의 무인기 공격으로 지난해 1월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사망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사령관. [EPA=연합뉴스]

자리프 장관은 지난해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국의 무인기 공격으로 사망한 이란 군부 실세 솔레이마니가 외국 고위인사들과 협상에서 무엇을 얻어내야 할지 말하곤 했다고 밝혔다. 그는 "회담을 하러 갈 때마다 거의 매번 훈수를 두었다"며 "솔레이마니가 '대화에서 이런 점을 이용하길 바란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란 외무부에 대한 혁명수비대의 영향력이 냉전 시대와 유사하다는 얘기도 했다. 자리프 장관은 "혁명수비대와의 관계에 그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며 "모든 사안을 안보 프레임으로 보는 세력이 이란에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2015년 당시 핵합의(JCPOA) 통과를 방해하기 위해 이란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공격하는 등 합의를 막으려는 세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자리프 장관은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JCPOA 협상을 방해하려 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는 혁명수비대가 지난해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했을 당시 공개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이번 사태로 오는 6월 18일 대선을 앞둔 이란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우파 이슬람 정권의 신정정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해 온 혁명수비대가 자리프 장관이 속한 중도 진영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이번 사건을 활용할 것으로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혁명수비대측 관계자는 유출된 파일로 인해 자리프를 해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도파의 한 정치인은 이번 사건이 자리프의 대선 출마를 막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혁명수비대가 장악한 이란 헌법수호위원회의 후보자 검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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