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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첫 수상 윤여정, 3관왕 자오···오스카 벽 넘은 아시아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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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매드랜드'로 작품상, 감독상 트로피를 차지한 클로이 자오 감독. 한국에선 마동석의 할리우드 진출작인 마블 히어로 영화 '이터널스' 연출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

영화 '노매드랜드'로 작품상, 감독상 트로피를 차지한 클로이 자오 감독. 한국에선 마동석의 할리우드 진출작인 마블 히어로 영화 '이터널스' 연출로 알려졌다. [로이터=연합]

“일이 힘들 때마다 중국에서 자랄 때 아빠와 하던 게임을 생각합니다. 중국 시어를 외우고 서로 문장을 끝내주는 게임인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시의 첫 구절이 ‘사람들이 태어날 땐 선하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큰 영향을 받았고 아직도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가끔 살다 보면 믿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지만, 그래도 제가 만난 모든 사람의 내면에서 선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오스카상을 믿음과 용기를 갖고 자신의 선함을 유지하는 모든 분들께 돌리고 싶습니다.”

아시아 여성 빛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중국 감독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 3관왕 #74세 윤여정 '미나리' 한국 최초 여우조연상

영화 ‘노매드랜드’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역대 첫 아시아 여성 감독상 수상자가 된 중국 감독 클로이 자오의 말이다. ‘허트 로커’의 캐서린 비글로 감독이 2010년 여성으론 사상 최초 감독상을 거머쥔지 11년 만의 두 번째 수상이다. 아시아계 감독으론 대만의 이안(‘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 2회), 한국의 봉준호(‘기생충’)에 이어 4번째다.

노매드와 무대오른 자오 "길 위의 분들께 감사" 

'노매드랜드' 제작을 겸한 여우주연상 수상 배우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여우조연상 배우 윤여정('미나리')과 시상식 후 무대 뒤에서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노매드랜드' 제작을 겸한 여우주연상 수상 배우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여우조연상 배우 윤여정('미나리')과 시상식 후 무대 뒤에서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노매드랜드’는 동명 논픽션을 토대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여파로 떠돌이 생활에 내몰린 현대판 유목민(노매드‧Nomad)의 삶을 흡사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 극영화. 중국에서 태어나 영국‧미국에서 살아온 자오 감독이 선댄스영화제 초청 데뷔작 ‘내 형제가 가르쳐준 노래’, 2017년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로데오 카우보이’에 이어 만든 세 번째 장편이다. 공동 제작을 겸한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여우주연상에 이어 작품상까지 올 아카데미 최다 수상인 3관왕에 불리자 자오 감독은 영화에 출연한 린다 메이, 스웽키 등 실제 노매드들과 무대에 올라 “길 위에 사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진정한 친절함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다”고 했다.

25일(현지 시간) 미국 LA 유니온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클로이 자오, 윤여정 등 아시아 여성의 진격이 돋보였다.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 여우조연상을 안은 윤여정은 시상자이자 ‘미나리’ 제작자 브래드 피트에게 무대 위로 불렸다. 현지에 간 한예리, 정이삭 감독 등의 박수갈채 속에 “저는 한국에서 왔고, 제 이름은 윤여정이다. 유럽분들이 많이 제 이름을 ‘여영’이나 ‘정’으로 부르는데 여러분 모두 용서해드리겠다”며 뼈있는 농담으로 좌중을 웃겼다. 작품상‧감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미나리’는 여우조연상 수상에 그쳤다.

봉준호 올해도 한국말 시상으로 영상 출연

아카데미 공식 트위터에 등장한 봉준호 감독. 25일(현지 시간) 시상식에선 감독상 시상자로 한국에서 찍은 영상을 통해 등장했다. [연합뉴스]

아카데미 공식 트위터에 등장한 봉준호 감독. 25일(현지 시간) 시상식에선 감독상 시상자로 한국에서 찍은 영상을 통해 등장했다. [연합뉴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지난해 ‘기생충’으로 비영어 영화 최초 작품상 등 4관왕을 가져갔던 봉준호 감독은 한국에서 찍은 영상을 통해 감독상 시상자로 나섰다. 봉 감독은 “길에서 어린 아이를 붙잡고 감독이란 무엇인가 20초 안에 설명한다면 뭐라고 할 건가”란 질문을 후보 감독들에게 던졌고, “영화는 삶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미나리’ 정이삭) “어떤 하나의 신을 찍을 땐 수백 가지 방법이 있지만 결국 맞는 방법과 틀린 방법,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다”(‘맹크’ 데이비드 핀처) 등의 답변을 한국말로 전해 영어 자막이 뜨게 하는 진풍경도 펼쳐냈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상 부문에 비백인 배우가 단 한명도 지명되지 않으며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OscarsSoWhite)’는 비판 운동이 펼쳐지자 이후 투표권을 가진 회원 명단의 다양성 확보에 힘써온 바다. 올해는 그런 노력이 다양한 부문에서 어느 때보다 빛났다.

아시아 할머니 주목한 오스카 전통의 변화

올해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미나리'의 윤여정(여우조연상),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다니엘 칼루야(남우조연상),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먼드(여우주연상)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는 시상식에 불참했다. [EPA=연합뉴스]

올해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미나리'의 윤여정(여우조연상),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다니엘 칼루야(남우조연상),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먼드(여우주연상)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는 시상식에 불참했다. [EPA=연합뉴스]

남우조연상을 받은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다니엘 칼루야, 음악상의 ‘소울’ 재즈 음악가 존 바티스트 등이 수상 소감에서 흑인 생존권 등을 강조한 데 더해 코로나19 속 자선활동으로 진 허숄트 박애상에 호명된 영화감독 타일러 페리는 “아이들에게 증오를 거부하라는 가르침을 주고 싶다. 멕시코인이라서, 흑인이라서, 백인이라서, 성소수자라서, 경찰이라서, 아시아인이라서 증오하는 것을 멈추라”고 호소했다.

올해 수상 결과에 대해 김형석 영화 평론가는 “아카데미는 오래된 쇼지만 사회적 요구에 맞물려 심사위원들의 변화를 추구하며 (지난해 ‘기생충’으로) 언어적 장벽을 무너뜨렸고 올해는 아시아에서 온 두 여성(윤여정, 클로이 자오)을 영화제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면서 “‘노매드랜드’ ‘미나리’ 둘 다 미국 사회를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카데미가 계급적‧인종적 약자인 아시아 여성, 할머니에게 트로피를 쥐어준 것은 단지 미국 사회의 반영을 넘어서 변화를 촉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스카의 상징을 권위와 전통에서 변화와 혁신으로 바꿔가려는 게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영화인 추모 영상에 김기덕 감독 얼굴도 

한편 매년 개최해온 LA 돌비극장이 아닌 유니온스테이션에서 수상자 및 시상자 등 인원을 최소화해 대면 진행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은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안았다. ‘파고’ ‘쓰리 빌보드’에 이어 세 번째 수상이다. 남우주연상은 유력시됐던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고(故) 채드윅 보스만이 아닌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가 여든넷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기록을 세우며 수상했다. 1992년 시상식에서 ‘양들의 침묵’으로 첫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뒤 29년 만에 두 번째 오스카를 거머쥔 것이다. 각본상‧각색상은 모두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가져갔다. 각본상은 배우이기도 한 에메랄드 펜넬 감독의 여성 복수극 ‘프라미싱 영 우먼’이, 각색상은 프랑스 극작가 겸 연출가 플로리안젤러 감독이 치매 노인의 혼란을 그려낸 ‘더 파더’가 차지했다.

시상식 중 상영된 영화인 추모 영상 속에는 지난해 12월 코로나19로 숨진 김기덕 감독의 얼굴이 비치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17년 CJ 이미경 부회장, 정정훈 촬영감독 등과 더불어 아카데미 신규 회원으로 위촉된 바 있다.

제93회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 수상 결과

작품상 ‘노매드랜드’

남우주연상 ‘더 파더’ 안소니 홉킨스
여우주연상 ‘노매드랜드’ 프랜시스 맥도먼드
남우조연상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다니엘 칼루야
여우조연상 ‘미나리’ 윤여정
감독상 ‘노매드랜드’ 클로이 자오
각본상 ‘프라미싱 영 우먼’ 에메랄드 펜넬
각색상 ‘더 파더’ 플로리안 젤러 외
촬영상 ‘맹크’ 에릭 메서슈미트
편집상 ‘사운드 오브 메탈’ 미켈 E G 니엘슨
미술상 ‘맹크’ 도널드 그라함 버트 외
의상상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앤 로스
음악상 ‘소울’ 트렌트 레즈너 외
주제가상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 ‘파이트 포 유’
음향상 ‘사운드 오브 메탈’ 니콜라스 베커 외
시각효과상 ‘테넷’ 앤드류 잭슨 외
국제장편영화상 ‘어나더 라운드’
장편애니메이션상 ‘소울’
장편다큐멘터리상 ‘나의 문어 선생님’
단편애니메이션상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
단편 다큐멘터리상 ‘콜레트’
단편영화상 ‘투 디스턴트 스트레인저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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