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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 '여영'이라 부르는데 오늘만은 용서" 또 터진 윤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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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이 제작사 플랜B의 대표 브래드 피트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이 제작사 플랜B의 대표 브래드 피트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온 윤여정입니다. 유럽 분들은 제 이름을 여영이라고 하거나 그냥 정이라고 부르는데, 오늘만은 모두 용서해드리죠.(웃음) 내게 (아카데미 시상식은) 텔레비전으로 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여기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네요. 전 경쟁을 믿지 않아요.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스(‘힐빌리의 노래’)를 이길 수 있겠어요. 그의 영화를 그렇게 많이 봤고 좋아했는데…. 경쟁이란 있을 수 없고 다만 제가 운이 좀 더 좋았습니다. 미국인들이 한국 배우를 특별히 환대해주는 것 같네요.”

이름 잘못 부르는 서구인 언급에 폭소 터져 #"경쟁 안 믿어…미국의 환대인 듯" 겸손도

25일(현지시간) 한국 배우 첫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룬 윤여정은 이렇게 영어로 소감을 이어갔다. 짙은 네이비색 드레스에 떨리는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뒤 첫 마디는 “브래드 피트, 드디어 만났군요. 우리가 털사에서 영화 찍을 동안 어디 계셨나요?”하는 우스개. 무대 오른쪽에 서 있던 시상자 브래드 피트는 ‘미나리’의 제작사 플랜B 대표다. 무더위 속에 털사에서 촬영한 ‘미나리’ 현장이 녹록치 않았음을 환기시키는 재치 있는 한마디에 좌중의 웃음이 터졌다. 윤여정은 자신의 이름을 잘 못 부르는 서구인들에 대한 농담으로 본격 소감을 시작해 경쟁자에 대해 추켜세우는 말로 이들의 환대에 값했다.

소감 마무리는 1971년 첫 영화 ‘화녀’를 함께 했던 김기영 감독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는 “김기영 감독님은 천재적인 분이었다”면서 “살아계셨다면 오늘밤 무척 기뻐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서구인들에게 한국영화의 축적된 역량과 계보를 넌지시 일깨워주는 관록의 한마디였다.

배우 경력 55년의 윤여정은 이렇듯 언제 어디에서도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 화법이 빛난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즉흥적으로 말하면서도 세계인들을 사로잡은 그의 수상소감‧인터뷰 등을 모아봤다.

한국의 배우 윤여정과 한예리가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오스카 홈페이지=연합뉴스]

한국의 배우 윤여정과 한예리가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오스카 홈페이지=연합뉴스]

◆콧대 높은 영국인들, 땡큐=“모든 상이 의미있지만 이번엔 특별히 콧대 높은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았다(Specially recognized by british people known as very snobbish people).” 지난 11일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은 시청자는 물론 진행자까지 폭소를 터뜨리게 한 ‘뼈 때리는 발언’이었다. ‘snobbish’는 ‘콧대 높은’ ‘고상한 체하는’ ‘젠체하는’ 등을 포괄하는 형용사다. 비판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윤여정은 밝은 미소에 어깨를 으쓱하는 동작으로 영국인들의 ‘블랙 유머’를 휘어잡았다. 이날 시상식 방송 주관사인 BBC가 SNS를 통해 “우리가 가장 좋아한 수상 소감”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윤여정의 ‘snobbish’ 발언에 대해 대만계 사회학자로서 할리우드 내 인종차별을 활발하게 지적해온 낸시 왕 위엔은 “서구를 자신의 렌즈(시선)로 평한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23일 미 시사주간지 ‘타임’ 보도에서 위엔은 “윤여정이 BAFTA 수상 의미를 한국 배우로서 재정의한 것은 서구를 탈중심화시킨 효과가 있다”면서 “마치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를 ‘로컬영화제’라고 했던 것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한국의 메릴 스트리프 아냐, 나는 나=윤여정은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뒤 미 ABC ‘굿모닝 아메리카’와 인터뷰 했을 때 앵커로부터 “한국의 메릴 스트리프”라는 소개말을 들었다. 그는 답변에 앞서 “우선 저를 한국의 메릴 스트리프라고 하셨는데… 스트리프는 그런 말 들으면 싫어할 것이다(웃음). 칭찬으로 듣겠다”고 말해 진행자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자신이 56년 경력의 한국 대표 배우임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소신 발언은 아카데미 후보 지명 후에도 되풀이돼 미국 평단이 ‘한국의 메릴 스트리프’라며 쏟아낸 찬사가 “일종의 스트레스였다”고 외신 인터뷰에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의 메릴 스트리프로 불리는 것이 칭찬이라는 것을 알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메릴 스트리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이고, 저는 단지 한국의 윤여정이다. 모든 사람은 다르고, 나는 나 자신이 되고 싶다”라면서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26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소감 발표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26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소감 발표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전설적이라니, 내가 늙었단 거니= tvN 예능 ‘윤식당’ ‘윤스테이’ 등에서 빛을 발한 유머감각은 라이브 행사장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지난해 초 선댄스영화제에서 ‘미나리’가 상영된 뒤 Q&A 시간에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한국에서 온 전설적인(legendary) 배우”라고 소개하자 윤여정은 “아이작, 전설적이란 말은 내가 늙었단 뜻이잖아(Isaac, ‘legendary’ means I am old)”라며 나무라듯 눈을 흘겼다. 관객 폭소를 자아낸 뒤 마이크를 잡았을 땐 “이번 영화는 하기 싫었다. 독립 영화라는 걸 알았기에. 그 말은 제가 고생할 거라는 뜻이라서다” 하면서 유쾌하게 분위기를 살렸다.

이 같은 윤여정의 화법과 영어 구사를 두고 영국 출신의 제이슨 베셔베이스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외국인이 어떻게 볼까에 연연하지 않고 나는 나 자신이란 걸 당당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그는 윤여정의 소감이 매번 화제가 되는 데 대해선 “여러차례 인터뷰로 알려지는 동안 한결같은 모습과 유머감각을 보여서 외국인들도 그의 코드를 이해하게 됐다”면서 “마치 봉준호 감독이 지난해 전세계적인 팬덤을 끌어모은 것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윤여정 수상소감 전문

브래드 피트, 드디어 우리 만났네요. 털사에서 우리가 촬영할 땐 어디 계셨던 거예요? 만나서 정말 영광이에요.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왔고 제 이름은 윤여정입니다. 유럽인들 대부분은 저를 '여영'이나 또는 '유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지만 오늘만큼은 여러분 모두를 용서하겠어요. 저는 지구 반대편에 살아서 오스카 시상식은 TV로 보는 이벤트, TV 프로그램 같았는데 제가 직접 왔다니 믿기지 않네요. 잠시만요, 마음을 가다듬고진정 좀 할게요. 저에게 투표해주신 아카데미 회원분들에게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원더풀한 미나리 가족들에게 감사드립니다. 'Next Speech' 보통 이렇게 얘기하곤 하죠. 그리고 원더풀한 미나리 가족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스티븐 연, 정이삭, 한예리, 노엘 조, 앨런 김. 우리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이삭 감독이 없었다면 저는 오늘 밤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정이삭이 우리의 캡틴이었고 저의 감독이었습니다.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또감사드릴 분이... 저는 경쟁을 싫어합니다. 제가 어떻게 글렌 클로즈를 이기겠어요? 저는 그녀의 영화를 수없이 많이 봤습니다. 5명 후보가 모두 각자 다른 영화에서의 수상자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역을 연기했잖아요. 우리끼리 경쟁할 순 없습니다. 오늘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죠. 당신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네요. 그리고 아마도 미국인들이 한국 배우를 대접하는 방법일 수도 있죠. 아무튼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도 고맙다고말하고 싶네요. 저를 일하게 만든 아이들이요.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그리고 저는 이 상을 저의 첫 번째 감독님, 김기영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아주 천재적인 분이셨고 제 데뷔작을 함께 했습니다. 살아계셨다면 아주 기뻐하셨을 거예요. 정말 진심으로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Mr. Brad Pitt, finally! Nice to meet you. Where were you while we were filming in Tulsa? It's a very honor to meet you. As you know, I'm from Korea, actually my name is Yuh-Jung Youn. Most of the European people call me Yuh-Yung, some of them call me Yu-Jung.But tonight, you are all forgiven. And well.. I usually... I'm living in the other part of the world. I just watched television, It is a oscar, event on the television. Just watching, like a television program for us. But me being here by myself, I cannotbelieve it that I'm here. Okay, let me put myself together. Thank you, Tremendous thanks to the Academy members who voted for me. Thank you for the wonderful MINARI family, Steven, Isaac, Yeri, Noel, and Alan. We became a family. And most of all, Lee IsaacChung, without him, I couldn't be here tonight. He was our captain and my director. Thanks to you, Too many thanks to you. And I'd like to thank.. see, I don't believe in competition. How can I win Glenn Close? win over Glenn Close? I have been watching herso many performances, so this is just... all the nominees, five nominees, we are the winner for the different movies. We played different roles, so we cannot compete with each other. Tonight I'm here is that just because of a little bit of luck, I think. Maybeluckier than you. And also maybe.. Is that an American hospitality for the Korean actor? I'm not sure. Thank you so much. And I'd like to thank to my two boys who made me go out and work. So, beloved sons, , this is the result because mommy works so hard.And I'd like to dedicate this award for my first director, KIM Ki-Young who was a very genius director. I made a movie together with my first movie. I think he will be very happy if he is still alive. Thank you very much! Tremendous thanks for everybody. Thank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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