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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임성근 운명 가른다, 원세훈·이민걸 '新직권남용론'

중앙일보

입력 2021.04.26 05:00

업데이트 2021.05.0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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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ON] 사법행정권남용 ②

지난 20일 서울고법 형사3부(박연욱·김규동·이희준 부장판사)에서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항소심 네 번째 재판이 열렸습니다. 지난 1월 7일 이후 3개월 만에 열린 재판에서 검찰이 새로운 요청을 했습니다.

“관련 사건 1심 판결 선고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 등에서 (직권남용에 대한) 법리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검찰이 그 부분에 대해 법리 의견을 말할 기회를 부탁드립니다” (공판검사 발언)

검찰 측은 이날 최근 나온 판례를 언급하며 ‘직권남용죄’에 대한 법리 공방전을 예고했습니다. '세월호 재판개입' 혐의와 관련 1심 무죄를 받은 임 전 부장판사의 항소심 재판이 3개월가량 멈춘 사이 법원이 직권남용죄에 대한 새로운 판단을 내놓았으니 법정에서 추가로 설명하겠다는 겁니다.

임성근 '세월호 재판개입' 인정 여부의 세 개의 관문

직권남용은 법조계에서 입증이 까다로운 혐의로 불립니다. 혐의를 인정받으려면 '세 개의 관문'을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형법 제123조에 따라 공무원이 직권(①)을 남용(②)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③)한 사실이 드러나야 합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탄핵 소추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20일 오후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4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탄핵 소추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20일 오후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4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 전 부장판사의 혐의는 해당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인 걸까요. 임 전 부장판사가 받는 혐의부터 되짚어봅시다. 혐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임 전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습니다.

같은 해 8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체포치상 사건에서 판결문의 일부 표현을 수정하도록 재판장에게 요청하거나, 2016년 1월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된 프로야구 선수 임창용ㆍ오승환 씨를 정식재판에 넘기려는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고 약식명령으로 종결하도록 한 혐의도 있습니다.

임성근 1심선 ① '직권'부터 “성립 안 된다”

1심은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는 위헌적'이라고 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장의 ‘권한대행 기관’인 수석부장판사에게 독자적 사법행정권을 행사할 ‘직권(①)’ 자체가 없었고,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도 인정할 수 없다(②,③)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직권남용 혐의 성립을 위한 1차 조건부터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본 겁니다.

그러면서 법원이 ‘죄형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대원칙)’를 위반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행위가 위헌적으로 평가된다는 이유만으로 직권을 남용했다고 인정한다면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며 “우리 헌법은 국가형벌권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형벌을 법률로 정할 것으로 요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검찰로선 ①번을 입증하는 데서부터 고비를 맞게 된 겁니다. 하지만 항소심 공판이 열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의 난관을 타개할 법원의 판결이 나옵니다. 지난달 선고가 나온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직권남용 혐의’ ‘이규진·이민걸 전 부장판사의 직권남용 혐의’ 판결입니다. 직권남용죄의 문턱을 낮춰 ‘新직권남용론’ 판결로 불리기도 합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8년 6월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8년 6월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민걸’ ‘원세훈’ 新직권남용론서 범위 확대 

지난달 11일 대법원은 원심이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장으로 재임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잘못 판단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원심에선 故 박원순 전 시장의 일본 출장을 사찰하라고 한 원세훈 전 원장의 혐의가 명백한 ‘정치 관여 행위’에 해당하므로 국정원 직원의 일반적 직무 권한(①)에 속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시를 받은 국정원 직원들은 그 지시가 형식적, 외형적으로 직무집행에 해당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등 피고인의 숨겨진 목적은 직무집행이 직권을 남용한 것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자료가 되어야지 그를 기초로 직권 행사가 없었다고 속단할 것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직권 행사의 ‘외관’을 갖추면 ①번을 통과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놓은 겁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1심 법원에서도 비슷한 판례가 나왔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특정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 대해 “일선 법관에 대해 지적(指摘)할 권한이 있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국민의 재판 청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재판 사무와 관련한 잘못을 지적할 권한(①)을 갖는데, 단순한 지적을 넘어 판단 방법과 방향을 설정하는 ‘권고’의 형식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면 직권을 남용(②)한 사례가 된다는 게 형사32부의 논리입니다.

재판부는 당시 재판 사무와 관련한 지적 권한의 예로 "직업적으로 충분히 단련되지 못한 나태한 판사가 사무분담이 정해진 후 기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장기미제 사건의 처리보다 상대적으로 최근 배당된 사건 중 쟁점이 많지 않은 사건 일부만을 골라서 거듭하다가 장기미제 사건 처리가 현저히 지연되는 경우"라고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지적(指摘) 권한'→헌법상 '독립된 심판권' 침해 가능? 

하지만 최근 판례를 대입하더라도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1심 판결의 주요 논리를 깨트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사법행정권자에게 나태한 판사의 장기미제 사건 처리 지연 등을 지적할 권한이 있다는 것과헌법이 보장한 ‘법관의 독립된 심판권’을 침해할 권한을 인정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때문입니다. 헌법 103조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헌법에 위배되는 사법행정권의 존재를 인정하는 모순을 넘어설 정교한 논리는 향후 검찰에 요구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다음 달 25일 열릴 5차 공판에서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검찰은 어떤 논리를 펼칠까요? #法ON’은 앞으로 법정에 펼쳐질 풍경을 생생하게 취재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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