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잔칫날 터진 '박원순 실종'…그날 김종인 예견, 현실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1.04.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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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20년 7월 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국민의힘 지도부가 연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팔순 잔치가 한창이었다. 오후 6시 무렵 ‘박원순 서울시장 실종’이란 뉴스 속보가 떴다. 이후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참석자들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걔 중엔 “보궐선거 이기고 대선까지 잡자”는 말도 나왔는데, 이를 들은 김 위원장은 “하늘이 준 기회는 맞는데 독이 될 수도…”라며 말끝을 흐렸다고 한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한 인사는 이런 얘기를 기자에게 전하면서 “한참 지나 ‘그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재보선 승리가 당 개혁을 더디게 해 대선에 외려 독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 뜬금없는 소리 같았는데 요즘 당 상황을 보면 알 것도 같다”고 덧붙였다.

제1야당 재보선 이긴 뒤 더 혼란
당 개혁 실종, 당권 놓고 이전투구
초선들 “영남당 안 돼” 세대교체론
친박계 일부 탄핵부정 발언 시끌

대선 인물난에 윤석열 영입 목매
일부선 “검증 필요, 플랜B 세워야”

김 전 위원장의 예견이 옳았던 걸까. 그의 말처럼 국민의힘은 정말 승리의 역설에 빠진 걸까. 내부 충돌부터 퇴행 논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파열음까지 제1야당의 난맥상을 이슈별로 짚어봤다.

지난 4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고별사를 마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4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고별사를 마친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오종택 기자

①영남당 회귀와 초선 vs 중진 충돌 

김 전 위원장이 떠난 후 당 내 세력들간 이합집산과 경쟁이 거칠게 진행되고 있다. "또 영남당으로의 회귀냐"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대구 출신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은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 출마 여부를 아직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초선 의원들이 세대교체론으로 치고 나섰다. 당 소속 101명 의원 중 초선 의원은 56명으로 과반이다. 지난 8일 초선 의원 42명은 “우리 당은 특정 지역 정당이 아니다”는 성명을 냈고, 최근 들어선 '초선 대표론'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김 전 위원장도 당 밖에서 “초선 당 대표로 새로운 모습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거들고 있다.

이에 주 대행은 “영남 정당의 한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9일 당 회의 후)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30일 열릴 차기 원내대표 선거를 영남(김기현) vs. 비영남(권성동·김태흠·유의동)의 구도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선 “영남 죽이기”라며 배후설을 제기한다.

영남당 논쟁은 국민의힘에선 해묵은 이슈인데, 중요한 순간에 또 당내 권력투쟁의 테마로 등장했다. 익명을 원한 재선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내 갈등이 특정 계파나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문제지만 이 정도의 논쟁은 필요하다”고 옹호했지만, 당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4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차려진 2021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소에서 신분확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4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차려진 2021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소에서 신분확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②“탄핵” 퇴행 논란

재보선 승리 후 일부 친박계를 중심으로 ‘탄핵 부정론’이 제기되면서 “당이 강경 보수층에 휘둘리던 과거로 퇴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는 중이다. 당 최다선(5선)인 서병수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할 만큼 위법한 짓을 저질렀느냐”고 한 게 발단이 됐고, 일부 의원이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바로 그 이튿날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요청하면서 당 내부가 ‘사면·탄핵’ 논쟁으로 들썩거렸다.

당의 다수는 사면엔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탄핵에 대해서도 “사법적 판단이 끝난 만큼 이를 부정해봐야 ‘도로 한국당’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각이 강한 영남을 중심으로 "과연 탄핵당할 만큼 잘못 했느냐"는 정서 또한 존재한다. 당 지도부는 “탄핵 부정 발언은 당 전체 의견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주 대행)고 선을 그었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③윤석열 두고 내전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구애 일변도라는 지적이 많다. 새 원내대표 후보군과 차기 당 대표 주자들도 대체로 ‘윤석열 영입’을 공약의 우선순위로 뒀다. 김기현·조해진 의원은 서울법대 선후배 사이라는 점을, 권성동 의원은 검사 때 같이 근무한 인연을 내세우며 영입을 자신하고 있다.

정작 윤 전 총장 본인은 지난 3월 사임 후 정치적 발언이나 입장 표명을 극도로 삼가고 있다. 이에 당 일각에선 섣부른 기대 대신 ‘플랜 B’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러다 윤 전 총장이 불출마나 중도 사퇴라도 하면 어찌할 거냐”는 것이다. 당 대표에 출마하는 김웅 의원은 통화에서 “당이 처절한 개혁 방안은 내놓지 않고 또 윤석열이라는 외부 인사의 피를 빨면서 기생하려 한다”며 자강론을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당내에선 ‘윤석열 선 검증’ 주장도 제기됐다. 야권 대선 주자가 되면 더불어민주당이 집중 공격을 할 게 뻔한데, 그에 앞서 검증하자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김용판 의원은 최종 무죄로 판결 난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당시 수사를 지휘한 윤 전 총장이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5일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 예식장에서 열린 '국민의당 서울지역 당원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5일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 예식장에서 열린 '국민의당 서울지역 당원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④커지는 원심력

이러는 사이 야권 통합 내지 재편을 둘러싼 원심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당장 재보선 직후 속전속결로 될 것 같던 국민의당과의 합당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주 대행은 이날 대한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순리대로 하면 된다"며 합당을 급하게 진행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국민의당 또한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와 합당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금태섭 전 의원은 최근 “제3지대에서 윤 전 총장을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며 신당 창당의 뜻을 내비친 뒤, 곧이어 김 전 위원장과도 회동했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이 이미 윤 전 총장과 몇 차례 접촉을 시도했다는 복수의 전언이 이어지면서 김 전 위원장에게 야권 재편의 주도권을 빼앗길까 우려하는 국민의힘 내부 기류도 감지된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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