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현옥의 시시각각

허둥지둥 여당의 위험한 베팅

중앙일보

입력 2021.04.26 00:43

업데이트 2021.04.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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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팀장
 권덕철 백신도입 TF팀장(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코로나19 백신 추가 도입 계약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권덕철 백신도입 TF팀장(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코로나19 백신 추가 도입 계약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도박판에서 돈을 잃은 뒤 본전을 만회하려는 이는 무리한 베팅을 하게 마련이다. 성과가 저조한 펀드매니저는 수익률 회복을 위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픈 유혹에 빠진다. 회사의 손실을 메우려 무모한 도전을 감행해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궁지에 몰리면 누구든 더 위험한 극단적 선택을 하기 쉽다.

백신스와프ㆍ위탁생산 헛발질에
무주택자 LTV 90% 완화 주장도
‘은행빚 탕감법’까지 상임위 상정

 이를 이론화한 것이 ‘전망이론’이다. ‘준합리적 경제이론’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미 프린스턴대 명예교수가 만들었다. 인간은 (같은 크기라도)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받아들이고, 손실을 피하려고 한다는 게 이론의 골자다. 그 결과 이익 구간에서는 안전한 선택을, 손실 구간에서는 위험한 선택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백신 대란과 4ㆍ7 재·보궐선거 참패로 정부와 여당이 손실 구간에 진입한 모양새다. 이미 시작된 민심 이반(손실)에 당황한 정부와 여당이 허둥지둥 본전 회복 시도에 나서며 무리수를 남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코로나19 백신 도입과 관련한 정부의 오락가락 발표다. 화이자와 백신 2000만 명분 도입 계약을 마쳤다고 지난 24일 밝히며 한숨 돌렸지만, 그동안의 백신 관련 발언과 대응은 혼란 그 자체다.

 사실상 무산된 미국과의 ‘백신 스와프’에 제약사와 백신 종류도 공개하지 못한 위탁생산까지 설익은 카드를 꺼내 들며 혼선과 불안만 부추겼다. 그나마 가장 많은 양을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혈전 발생 논란에 접종 차질이 빚어지고, 백신의 도입 지연으로 인한 백신 대란 조짐 속 여론이 심상치 않자 앞뒤도 재지 않고 부랴부랴 각종 패를 꺼낸 게 오히려 패착이었다. 양치기 소년처럼 불신만 키웠다.

 손실 회복에 나선 여당의 헛발질도 만만치 않다. 25번에 달하는 부동산 정책이 선거의 주요 패인으로 꼽히자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완화 등을 만지작거렸지만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핵심 지지층의 반발 속 엇박자를 내며 논란만 키웠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송영길 의원은 끊어진 주거 사다리를 다시 놓자며 무주택자에 대해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90%까지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집값의 90%까지 빌려주자는 것이다. 심지어 “청년들이 축의금만 있으면 집을 갖게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고 주택 가격 급등을 야기한 각종 대책의 문제와 부작용에 대한 성찰은 없다. 공급 대책에 대한 고민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도 모자라 ‘영영끌’까지 해야 할 판국이다.

 이른바 ‘은행 빚 탕감법’도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은행법 개정안’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재난 상황에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의 소득이 급감하면 은행이 대출금을 감면해주는 내용으로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에 상정됐다. 은행에 빚 탕감을 의무화하는 강제조항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비판은 쏟아지고 있다. 정부와 금융권, 국회 전문위원까지 반대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성실하게 돈을 갚는 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어서다. 커지는 손실 부담에 은행의 대출 문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재난의 정의도 모호해 탕감이 남용될 우려도 있다. 결국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 반발이 심하자 정무위 여당 간사가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법안은 법안심사 소위에조차 상정되지 않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유권자의 변심은 여당에는 큰 손실이자 두려움이다. 하지만 더 두려워해야 하는 건 당황한 나머지 상황을 되돌리려는 조급함에 위험한 베팅을 불사하는 것이다. 등 돌린 민심을 잡기 위한 전략이 무리수나 ‘아무 말 대잔치’ 수준이 돼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유권자가 비합리적 선택을 일삼는 존재라도 말이다.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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