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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공인(公人)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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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JTBC 기동이슈팀 기자

박태인 JTBC 기동이슈팀 기자

“우리는 이제 모두 연예인이다(We Are All Celebrities Now)”

미국 공영라디오(NPR)가 2011년 소셜미디어의 폭발적 성장을 다루며 보도한 특집 기사의 제목이다. NPR은 여기서 ‘프라이버시 2.0’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정보가 공유되고 일반인도 쉽게 유명해져 공인과 사인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프라이버시의 영역이 줄어들고 누구나 공인이 되는 사회가 온다는 전망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예측은 모두 현실이 됐다.

지금도 포털에는 공인과 사인의 경계선에 놓인 이들을 다룬 뉴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명 유튜버가 잘못하면, 그게 뉴스가 되고, 다시 사과하는 패턴은 이제 익숙하다. 코로나19 초기 국면에선 ‘0번 확진자의 동선’은 전 국민의 가십거리였다. 언론사의 전직 기자가 페이스북에 야당 정치인을 지지한 청년을 비판한 말이 뉴스가 되는 것도 새롭지 않다.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는 한 기자에게 ‘손가락 욕’을 날리며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슈퍼 공인’이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교수는 재판마다 지지자들이 찾아오고 그들에게 인사를 하는 유명인이다.

시선 2035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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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에서 공인은 더이상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SNS에 팔로워가 많거나,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지탄을 받을 행동을 하거나, 남들이 누리지 못한 특혜를 누렸다면 바로 그 사람이 공인이다. ‘公人’이란 개념을 새로 써야 한다는 뜻이다. 모두의 일상이 뉴스가 되고, 휴대폰만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추적하고 저격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언론 입장에서도 권력을 쥐고 있는 전통적 공인보다, 공인과 사인의 경계선에 놓인 이들을 비판하는 게 훨씬 더 쉽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공인이 될 수 있는 사회의 일상은 불안하다. 익명의 일원으로 오늘 하루는 공인이 된 사람을 비난하다가도, 어느 날엔 내가 손가락질받는 공인이 될 수 있어서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는 일반인이 급증하는 것을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NPR은 10년 전 기사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연예인의 장점은 누리지 못하면서 단점만 누리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예인처럼 부와 명예는 없지만, 공격은 비슷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SNS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어떤 전문가들은 SNS 자체를 떠나라고도 말한다. 설령 그럴지라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온라인에 접속한 사회다.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을 권리를 포기해야 할 순간이 왔는지 모른다.

모두가 연예인인 시대, 모두가 공인이 될 수 있는 시대. 우린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박태인 JTBC 기동이슈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