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매일 딴 직장으로…대기업 출신의 ‘독립 노동자’실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퇴사선배(4) 플라잉웨일 대표 백영선

평생직장은 이미 옛말, 이직 횟수는 늘고 근속연수는 짧아졌다. 먹고사는 방식이 달라진 요즘은 N잡러에 부업은 필수인 시대다. 취업과 동시에 퇴사를 꿈꾸고, 언젠가는 맞이할 프리랜서나 자영업자의 삶을 대비한다. 인생 환승을 준비하는 퇴사선배의 커리어 인터뷰를 연재한다. 〈편집자〉

백영선 플라잉웨일 대표는 매일매일 다른 직장에 출근한다. 하루는 본인이 대표로 있는 커뮤니티 컨설팅 회사 ‘플라잉웨일’로, 하루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스타트업 '프립'의 임팩트 디렉터로, 하루는 커뮤니티 공간 ‘페이지명동’의 디렉터로 일한다. 이렇게 총 세 곳에서 일주일에 하루씩 근무를 하는 주3일 근무를 실험 중인 그는 자신을 ‘독립 노동자(Independent Worker)’라고 소개했다. 그에게 독립적으로 일하는 삶과 퍼스널브랜딩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봤다.

백영선 플라잉웨일 대표. [사진 정예림]

백영선 플라잉웨일 대표. [사진 정예림]

-과거 IT대기업 K사에서 일주일에 3일만 근무했던 특이한 경험이 있다. 당시의 주3일 근무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

“원래는 다른 사람들처럼 주5일 근무를 했는데 본사에서 자회사로 근무지를 이동하게 되었을 때 해당 조직장이 제안한 옵션 중 하나였고요. 회사 차원의 정식적인 제안이라기보다는 대화 도중 나온 격식 없는 시도 느낌이었어요. 당시에 저는 겸직을 해보고 싶었을 뿐 아니라 하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싶은 상황이었어요. 연봉이나 복지는 이전보다 포기해야 했지만, 회사와 이야기가 잘 되었던 상당히 예외적인 케이스였죠. 퇴사하고 다른 일을 시도하는 것보다 절반을 걸치는 게 마음에 안정을 줘 선택했었어요.”

-당시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저는 근무조건이 바뀌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안 바뀌었으니까 협업이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근무 조건에 상관없이 일이 진행될 때는 당연히 일이 우선이니까요. 6개월 정도 그렇게 일하면서 조금씩 협업이 쉽지 않아졌고 저 스스로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퇴사를 했어요.”

그는 직장에 다니던 시절에도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중 하나인 소규모 경험공유살롱 ‘리뷰빙자리뷰’는 2년을 꾸준히 하다보니 월 40만원 정도의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는 퇴사 이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먹고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여행기 등 누군가의 재미있는 경험을 리뷰하는 판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던 '리뷰빙자리뷰'는 이름이 알려지며 고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줬다. [사진 '리뷰빙자리뷰' 페이스북]

여행기 등 누군가의 재미있는 경험을 리뷰하는 판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던 '리뷰빙자리뷰'는 이름이 알려지며 고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줬다. [사진 '리뷰빙자리뷰' 페이스북]

-퇴사 이후 지금의 근무 방식에 관해 설명해달라.

“현재 3곳에서 주1일 근무를 하는 '주3일 근무'를 실험해보고 있어요. 이전 직장에서의 주3일 근무 실패 경험 덕분에 새로운 레퍼런스를 만들 수 있었어요. 퇴사 후 처음 주1일 근무를 시도한 회사는 ‘프립(Frip)’이라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스타트업이었어요. 모든 조직에는 주니어와 시니어가 있어요. 그런데 스타트업은 조직을 완벽히 세팅한 다음에 시작하면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별로 없거든요. 또 시니어는 연봉도 비싸고 데려오기도 힘들어요. 저는 새로운 일을 벌여보고 싶었고, 주1일 근무라는 카드가 서로에게 윈윈인 상황이었죠. 그래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일주일에 하루, 프립의 신규 프로젝트(소셜클럽 등)와 해당 사업의 주니어의 실무를 디렉팅해주는 시니어로 프립에 먼저 제안해서 입사했어요.”

-직장인의 주N회 근무 형태가 일반화할 날이 올까.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이런 ‘기브앤테이크’의 채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는 해요. 아직 흔치 않은 이유는 서로 간의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거든요. 모르는 사람을 선뜻 이런 방식으로 채용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더라도 자기 자신을 계속 외부에 커밍아웃해야 해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꾸준하게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업무 스펙 나열만으로는 앞으로의 커리어에서 리스크가 큽니다.”

-주5일 정규직이 아니면 아직 인식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노마드족, N잡러, 프리랜서 같은 낯선 분류의 노동자가 많아지면서 목소리도 같이 커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보호 법안이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규직도 쉽게 이쪽으로 넘나들 수 있도록요. 이런 근무 형태를 가진 사람에게 수당이나 복지 같은 기본적인 것이 지원되기 시작하면 막연한 두려움도 적어질 거예요. 그렇게 인력풀이 넓어진다면 사회적 가능성도 엄청나게 팽창되겠죠.”

-매일 다른 곳으로 출근하는 삶은 어떤가.

“출퇴근 거리가 매일 달라진다는 건 루틴이 매일 다르다는 말과 같아요. 그래서 일마다 요일을 정해둔 거예요. 나름대로 교통정리를 한 거죠. 그리고 여백의 시간을 항상 남겨서 백업을 해요. 일하다 보면 주1일로 해결되지 않는 게 많거든요. 이 시간에 강연이나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외부활동도 함께 합니다."

-한 회사에 다닐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한 회사에 있을 때는 내가 잘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없어 힘들었어요. 자율성의 제한 속에서 퍼포먼스를 뽑아내야 하는 게 사육당하는 기분이었죠. 농담 삼아 말하는 거지만 회사는 마치 관리가 잘되는 동물원 같았어요. 비가 와도 천장이 있고 너무나 안전한 곳이요.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손바닥만으로 비를 막아야 한대도 행복해요. 물론 회사 밖은 밀림이라 언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몰라요. 제가 겁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주3일 근무는 저에게 안전한 동물원에 자발적으로 발을 반만 걸치고 있는 것과 같아요. 저만의 생존방식을 찾은 거죠.”

주1일 근무를 하고 있는 페이지명동의 공간웰컴.

주1일 근무를 하고 있는 페이지명동의 공간웰컴.

-우리가 다른 방향의 일하기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옛날처럼 조직이 나를 책임져주지 않아서요. 조직이 저를 뽑을 당시 중요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하지 않아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마냥 그 안에서 운이 좋기만을 바라고 나를 잘 키워주기만을 바라면 안 됩니다. 내가 잘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해요. 모두가 기존의 레거시 시스템에 마냥 녹아 들어가지 않고 개인의 다양성과 어떻게 시너지를 만들지 고민하게 될 거예요. 예전에는 개인이 무조건 직장을 바라봤다면,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직장이 능력 있는 개인을 바라보고 있는 거죠.”

그는 “개인이 주어진 업무에 가진 역량과 경험을 쏟아부었더라도 조직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쩔 수 없이 집단의 목적을 위해 개인에게 다른 스탠스를 취한다”며 조직과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시도가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거나, 이후 이직이나 창업을 할 때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근무형태 변화를 예측해본다면.

“사회는 결국에는 우상향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주6일제가 당연했어요. 지금은 선진국들과 몇몇 기업에서 주4일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나오고 있고요. 이런 흐름이 본격화된다면 점차 다양한 근무 형태가 존중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든 사람을 정규직화하는 게 아니라 협업의 방식을 바꾸게 될 거예요. 회사의 전문성을 채우기 위해서 능력 있는 개인을 부분적으로 고용하는 형태요.”

퍼스널브랜딩을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극적으로 다양한 사람에게 소개하고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사진 '리뷰빙자리뷰' 페이스북]

퍼스널브랜딩을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극적으로 다양한 사람에게 소개하고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사진 '리뷰빙자리뷰' 페이스북]

그는 앞으로 퍼스널브랜딩을 고민하는 이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중이라고 전했다. 지금 속한 조직에 나의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화중이다.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모두에게 퍼스널브랜딩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이유다. 끊임없는 커리어 커밍아웃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 미래의 선택지를 넓혀줄 것이다.

정예림 인턴 chung.yer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