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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대책없이 무리한 추진" 반발…역세권 청년주택 지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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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1천여 가구에 달하는 서울 최대 규모의 청년주택 '용산 베르디움 프렌즈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15일 오전 한 시민이 아파트 앞을 지나고 있다. 이 청년주택은 지하 7층, 지상 35~37층 2개 동이다. 건폐율 57.52%, 용적률 961.97%가 적용됐다. 연합뉴스

1천여 가구에 달하는 서울 최대 규모의 청년주택 '용산 베르디움 프렌즈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15일 오전 한 시민이 아파트 앞을 지나고 있다. 이 청년주택은 지하 7층, 지상 35~37층 2개 동이다. 건폐율 57.52%, 용적률 961.97%가 적용됐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20~30대 청년층 주거 복지를 위해 추진한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이 주민 반발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역세권 청년주택은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지난 2016년부터 추진했다. 2022년까지 8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입주 대상은 19~39세의 대학생·사회초년생 등 청년 1인 가구나 신혼부부다. 편리한 교통 환경과 주변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무리한 추진과 주민 반발 등이 겹치면서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곳이 서초구 서초동 서초초등 인근 강남역세권 청년주택이다. 노후 빌라를 허물고 그 자리에 20층 규모의 청년주택이 들어설 예정이지만, 지난 1월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촉진지구 지정 등을 위한 열람공고 이후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이 지역 주민 A씨는 "인근 상가와 주택의 일조권·조망권 등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최근 사업주가 기존 빌라의 철거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한다. 초등학교 통학로와 겹쳐 안전사고 위험이 있고, 소음·분진·석면 등 때문에 학부모들이 방학 중 공사를 진행해달라고 서초구에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덧붙였다. 서초초등 학부모 B씨는 "청년 임대주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안전 문제와 직결되는 공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반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지역 주민 1530여 명은 지난 2월 "강남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지의 50m 이내에 위치한 서초초등 학생들의 통학 안전을 비롯한 교육 환경이 침해되고, 이 지역이 내수재해구역(상습침수 발생 등)에 해당하지만, 사전검토 없이 지하 5층, 지상 20층 규모로 사업을 추진해 주변 토지 및 건물의 균열, 붕괴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는 데다 일조권, 조망권, 재산권, 사생활 침해 등 주민들의 복지를 저해한다"는 내용을 담은 청원서를 서울시의회에 전달했다. 지난달 5일 시의회 본회의에서 해당 청원이 의결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이 지역 주민 반발이 심해 주민설명회를 통해 의견 수렴을 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아직 만남 일정조차 잡지 못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역 인근에 추진 중인 역세권 청년주택. 지역 주민들이 임대주택 철회하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사진 독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 강남역 인근에 추진 중인 역세권 청년주택. 지역 주민들이 임대주택 철회하라는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사진 독자]

서울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인가가 난 사업장은 지난달 기준으로 75곳이다. 사업 고시 후 착공·입주자 모집 등 향후 일정을 잡지 못한 사업장이 22곳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청년주택과 관련해 허가가 완료된 물량이 2만4000가구, 진행 중인 물량이 2만3000가구 정도"라며 "검토 중인 사업을 포함하면 약 6만 가구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주민 반발이 심해 2022년까지 공급하기로 한 8만 가구 달성은 요원한 상황이다.

공공임대 주택 사업은 애초에 지역 주민의 반발이 심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년주택 관련 민원인 대부분이 집 주변에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동작구청 홈페이지 민원게시판에 청년주택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민원인은 "수십 년간 (개발을) 참아온 지역 주민들이 누려야 할 혜택을 왜 알 수 없는 청년들이 무슨 로또 맞듯이 서울 한복판 초역세권에 사는 혜택을 누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썼다. 동대문구에서는 역세권 주변 임대사업자들이 원룸 공급 과잉을 걱정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서울시는 최근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 초기 단계부터 주민 의견을 수렴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구청장협의회가 지난 1월 주민 의견 수렴 절차의 개선을 건의했고, 서울시는 최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서울시의회도 나섰다. 김광수 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은 역세권 청년주택 촉진지구 지정에 앞서 서울시의회가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도록 하는 조례안을 지난 7일 발의했다. 이 조례안이 통과되면 사업 초기에 해당 지역 주민은 물론 시의회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역세권 청년주택은 지하철역 등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입지에 민간자본을 이용해 공급하는 형태다. 서울시는 민간사업자에게 청년 임대주택 공급을 조건으로 같은 땅이라도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용적률 혜택을 준다. 용적률은 용도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1000%까지 부여받는다.

올해 입주한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의 청년주택의 경우 대지면적 8671㎡에 1086가구(공공임대 323가구, 민간임대 763가구)가 사는 37층짜리 건물 두 동이 들어섰는데, 용적률이 962%에 달한다.

정부는 2·4 공급대책을 통해 역세권 고밀 개발로 전국에 12만3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용적률 혜택을 줘 주택 공급량을 늘리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런 고밀 개발은 역세권 청년주택처럼 일조권·조망권 침해 등 주변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주변 여건을 고려해 종 상향이나 용적률 혜택 등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공급 숫자를 늘리는 데만 치중하면 역세권 개발지 인근 주민들의 반발은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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