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무기화’ 격랑, 시험대 오른 한·미동맹

중앙선데이

입력 2021.04.24 00:37

업데이트 2021.04.24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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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호 01면

23일 대구시 삼덕동 대구육상진흥센터에 마련된 수성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75세 이상 일반인들이 화이자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뉴스1]

23일 대구시 삼덕동 대구육상진흥센터에 마련된 수성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75세 이상 일반인들이 화이자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뉴스1]

5월 후반기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외교 당국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최근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이번 회담이 열리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백신 협력 등 양국 현안과 관련해 긴밀히 공조하겠다”며 “백신 수급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다루겠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해 백신 공급 문제에서 활로를 뚫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양국 정상회담 개최일 못 정해
외교가 “백신 의제 이견 보여”

미, 쿼드 회원국 우선 지원 방침
한국 특별 배려 받기 쉽지 않아
일각 “끊임없이 미국 외면 결과”

코로나 대응 부정 평가 긍정 앞서
정부 “추가 확보 곧 밝힐 수 있을 것”

하지만 한·미 양국이 지난 16일 문 대통령의 5월 방미를 발표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회담 개최 날짜는 특정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정상회담 의제 조율 과정에서 양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회담 연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러자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23일 문자 공지를 통해 “한·미 양국은 5월 후반기 중 상호 편리한 시기를 조율 중이며 회담 연기 가능성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백신 확보가 결코 만만찮을 것이란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힘겨루기가 심화되면서 ‘백신 무기화’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고, 미국 등 백신을 충분히 보유한 국가들이 ‘백신 외교전’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북핵 문제와 대중 관계 등을 둘러싸고 한·미가 엇박자를 보인 상황까지 더해지면서 5월 정상회담 논의 과정에서 한·미동맹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당장 백신 제공과 관련한 미국 정부와 현지 분위기는 한국 정부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1일 “해외로 보내는 것을 확신할 만큼 백신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는)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원 대상으로 인접국과 중미 국가 등을 꼽았다.

이에 더해 미 국무부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비롯해 (중국 견제용 연합체인) ‘쿼드(Quad)’ 회원국인 일본·호주·인도 등과 백신 수급 관련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쿼드 백신 전문가 그룹 회의에서 최소 10억 회 분량의 백신을 지원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접종 강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공개했다. 미국이 백신 우선 공급 대상으로 주변국과 쿼드 회원국을 우선 거론하면서 주변국도, 쿼드 가입국도 아닌 한국이 특별 배려를 받기는 쉽지 않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한국이 미국의 백신 우선 협력 대상에서 밀린 데는 문재인 정부 4년간 쌓인 한·미 관계의 그늘이 투영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미국은 끊임없이 중국에 대항하는 미국 쪽에 서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매번 거부해 왔다”며 “미국이 어려울 때는 외면하다 갑자기 ‘동맹에게 백신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미국이 선뜻 수용하겠느냐”고 지적했다.

한국 백신 지원에 소극적인 미국, ‘코리아 패싱’ 시그널 가능성 제기 

실제로 한국 정부는 ‘백신 스와프’까지 거론하며 백신 확보 총력전에 나섰지만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은 상황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지난 2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며 미국을 향해 공개 구애했지만 미국의 공식 반응은 “한국 등 외국과의 비공개 외교적 대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 지금의 초점은 미국 내에서의 백신 접종 노력”(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이었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백신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그럴 리 없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미국이 백신 금수 조치를 취한다면 그건 깡패들이나 하는 일”이란 말까지 했다.

쿼드 가입 등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입장 차도 부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한국에 쿼드 가입을 요청해 왔고 이는 바이든 정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양국 외교·국방장관의 ‘2+2 회담’과 이달 초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이후에도 한국 정부의 입장엔 변함이 없었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미국이 쿼드를 중심으로 한 백신 공급 계획을 밝힌 상황에서 국무·국방장관의 방한은 사실상 마지막 쿼드 가입 요청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봉 위원은 “최근 미·일 정상회담 후 쿼드 회원국인 일본에겐 백신 추가 공급이 결정된 반면 한국과는 정상회담 일정 조율까지 난항을 겪는 모습은 자칫 ‘코리아 패싱’의 시그널로 해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백신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외교 관행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백신 계약 당사자는 정부가 아닌 기업으로, 회담 의제로 백신을 올린 것은 정상적 외교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영우 전 수석도 “미국은 문 대통령의 백신 관련 언급을 ‘한국이 백신 수급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합의되지 않은 사실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 자체가 외교 프로토콜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여론도 심상찮게 흘러가고 있다. 한국갤럽의 지난 20~22일 조사에서 응답자의 49%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한국갤럽 조사에서 코로나19 관련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선 것은 지난해 2월 1차 대유행 이후 1년 2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 같은 일련의 지적에 정부는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여권 고위 인사는 “미국은 한국이 소외감을 느낄까봐 한·미 정상회담 개최 발표를 일부러 미·일 정상회담 전으로 앞당길 정도로 한국을 배려하고 있다”며 “백신 추가 확보 결과도 곧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총리 직무대행도 이날 코로나 상황점검회의에서 “일부 제약사와 상당한 물량의 추가 공급 협의가 진전됐다”며 “백신 추가 도입 노력은 기존 계약의 차질 때문이 아니라 추가 소요 가능성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태화·윤성민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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