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층·면적 같은데 공시가 큰 차이…고무줄 잣대, 깜깜이 산정 탓 불신 초래

중앙선데이

입력 2021.04.24 00:23

업데이트 2021.04.24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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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호 07면

[SUNDAY 진단] 공시가격 수술 불가피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지방자치단체나 집주인의 반발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주택 보유세(재산·종합부동산세)의 과표인 공시가격이 확 올랐는데도 정작 납세자는 어떤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산정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불공정하기까지 하다. 예컨대 내 집의 공시가격은 전년보다 10% 올랐는데, 옆집·윗집은 5%만 오르는 식이다. 주택 공시가격이 ‘고무줄’ ‘깜깜이’라고 비판을 받는 이유다.

구체적 산정 근거·방식 안 밝혀
1인당 2만7000여 가구 조사
펜션을 공동주택 분류 오류도
“전문가 참여 늘려 객관성 높여야”

실제 올해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는 같은 층 같은 면적의 두 가구 공시가격이 다르게 매겨졌다. 매도 호가(부르는 값) 등 시세는 차이가 없는데, 공시가격은 각각 8억9100만원과 9억1000만원이다. 전국 최고 상승률(70.68%)을 기록한 세종시의 한 아파트는 1~2건에 불과한 실거래 건수를 그대로 공시가격에 반영해 상승률이 무려 133%에 이른다. 한국부동산원이 내놓은 지난해 서울 집값 상승률(3.01%)만 봐도 이번 공시가격 상승률(19.91%)과 큰 격차를 보인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런 데도 정부는 공시가격 산정 근거를 공개하지 않는다. 정부는 단순히 “실거래 자료, 감정평가 선례, 시세 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한다”고만 할 뿐 구체적인 산정 근거나 방식, 시세 반영률 등을 밝히지 않고 있다. 공시가격 산정 과정에서 어떤 데이터를 쓰는지, 시세는 어떻게 책정하는지, 시세 반영률은 얼마인지 모두 비공개다. 논란이 확산하자 정부는 29일 올해 공시가격 확정안과 함께 산정 기초자료를 공개키로 했다. 기초자료에는 최근 거래사례(층·전용면적)와 계약일자, 거래금액과 시세의 상·하한가 등이 포함된다.

또 어떤 점을 고려해 공시가격을 책정했는지에 대한 ‘산정의견’이 들어간다. 정부가 기초자료를 공개하면 아랫집이나 윗집·옆집과의 공시가격 차이 이유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기초자료를 공개하더라도 집주인·지자체 반발을 잠재우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흔히 ‘시세’(거래사례)를 두고선 시기, 대상지 등을 어느 정도 참고했는지 등이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 기회에 공시가격에 대한 산정 방식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캐나다처럼 ‘감정평가’를 통해 주택의 가치를 매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공시가격은 크게 토지(공시지가)와 주택으로 나뉘는데, 공공성이 큰 토지는 감정평가법인이 샘플인 ‘표준지’의 공시지가를 감정평가해 산정하면 이 가격에 맞춰 주변의 개별 필지의 공시지가를 매기는 방식이다. 조세를 목적으로 한 주택 공시가격은 다시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아파트 등)으로 나뉘는데, 주택 공시가격 업무는 감정평가법인이 아닌 한국부동산원이 맡는다. 부동산원은 부동산원법상 감정평가 업무를 할 수 없다. 즉, 주택 공시가격은 감정평가가 아닌 ‘조사·산정’ 방식이다.

그나마 단독주택은 토지처럼 ‘표준주택’의 공시가격을 우선 산정한 뒤, 주변의 개별 주택 공시가격을 매기는 방식이어서 납세자 입장에선 공시가격을 비교해볼 수 있는 기준점이라도 있다. 그러나 공동주택은 표준주택이 없고, 부동산원만 아는 내부 기준으로 공시가격을 매긴다. 산정 기초자료도 공개하지 않는 데다 ‘기준점’도 없다보니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인력도 많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부동산원 직원 중 520명이 공시 대상 1421만 가구의 공시가격을 매기니, 오류가 생기는 건 당연한 결과다. 제주도에 따르면 펜션 등 숙박시설인데 공동주택으로 분류돼 세금이 매겨진 예도 있다. 이런 엉터리 공시가격 42개를 솎아내 공개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렇게 엉터리로 산정한 공시가격이 보유세의 과표이면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대상 결정 등 63개 행정 지표로 쓰인다는 점이다. 예산 문제 등으로 당장 감정평가 방식으로의 전환이 어렵다면 토지·단독주택처럼 우선 표준주택의 공시가격을 공개하고 이에 맞춰 산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은 저마다 고유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실거래가를 따라가는 지금의 공시가격 산정 방식은 왜곡되기 싶다”며 “중장기적으론 감정평가 방식으로 가는 게 맞지만 당장 전환이 어렵다면 전문가의 참여라도 늘려 조사의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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