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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삐그덕 공수처·국수본…구멍난 국가 수사 역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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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호 30면

국민의 힘 곽상도 의원이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항의 방문했다. 그는 "이규원 검사가 윤중천씨 등과의 면담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를 받는 사건에 대해 신속하게 수사해달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국민의 힘 곽상도 의원이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항의 방문했다. 그는 "이규원 검사가 윤중천씨 등과의 면담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를 받는 사건에 대해 신속하게 수사해달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무소불위의 검찰 수사권을 분산·견제하겠다며 출범시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국가수사본부 등의 신설 수사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삐그덕거리고 있다. 국가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큰 일임에도 청와대와 여당이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에만 집착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부작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수사 역량의 총량에 대한 예측 조사나 국가 수사 기구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졸속 출범시킨 탓이 크다.

올초 나란히 출범 두 기관 수사역량 부족 #황제조사·비서 특채로 휘청, 성과 초라 #공정하고 성역없는 철저 수사만이 살 길

올해 1월 권력형 비리수사 전담 기구로 공식 출범한 공수처는 3개월여 동안 갖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을 자초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위법 출국금지 수사에 외압을 가한 의혹을 받는 이 지검장을 휴일에 관용차까지 제공해 청사에서 비공개 면담을 한 자체가 수사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면담 조사라고 해명했지만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수사의 ABC를 망각한 치명적 일탈이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국가정보원 3급 이상 공무원,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공무원 등 고위 공직자들이다. 이제 이들에 대해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는 공수처장의 말을 누가 곧이곧대로 믿겠나. 김 처장이 대한변협 전 회장의 추천으로 여당 정치인 출신 인사의 아들을 5급 비서관에 특채한 것을 두고 보은 인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잇단 ‘공수처장 리스크’에 공수처는 1호 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됐다. 일주일 전 일부 진용을 갖추고 수사 체제로 전환했으나 선발 검사 숫자가 당초 계획(23명)보다 10명이 모자라 국가의 중추적 독립 수사기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올해 1월 초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경찰 개혁에 따라 범죄 수사 전담 기구로 첫발을 내딛은 경찰청 국수본은 조직 규모에 비해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등의 신도시 투기 의혹 사건 수사에 수사 인력 770여명을 투입했으나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방자치단체장 10명 등 공무원 157명, 국회의원 5명, 지방의원 40명 등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강조하지만 속 빈 강정이다. 구속자가 경기 포천시 공무원, LH 직원 등 단 6명에 불과하다. 과거 1,2차 신도시 투기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이 올린 성과와 대비된다. 더욱이 부동산 투기의 구조적 비리 규명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국수본의 일반 형사 사건 처리 속도도 지속적으로 둔화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대검 형사정책담당관실이 공개한 검·경 수사권 조정 운영 현황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경찰이 검찰에 사건을 송치(기소 의견)하거나 사건 기록을 송부(무혐의 의견)한 사건은 총 22만7241건이었다. 전년 동기 29만874건의 78.1% 수준에 해당한다. 처리 사건이 21.9% 감소했다는 의미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형사사법체계 전반이 바뀌면서 국가 전체의 수사 역량이 떨어지고 있음이 수치로 증명된다.

검찰 역시 윤석열 검찰총장 퇴임 이후 ‘수사 휴업’ 상태다. 직접 수사 범위가 대형참사나 방위산업 등 6대 범죄로 국한된 영향이 크다. 수사기관의 본령은 범죄 척결을 통한 정의 구현이다. 국가의 수사 역량이 저하되면 반칙이 횡행하고 법치와 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진다.

공수처와 국수본의 수뇌부들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수사 지휘부부터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어떤 작은 행동도 삼가야 한다. 그동안 검찰이 축적해온 선진 수사 기법과 역량을 신속하게 전수받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공정하고 성역 없는 수사만이 살 길이다. 공수처든, 국수본이든 정권의 하명을 받드는 출장소가 되어선 수사기관으로서 존재할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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