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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도 입은 한복, K팝 타고 세계로 향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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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호 19면

한복 패션전 2제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대대손손 소중하게 전해지던 전통 한복과 세계를 누비는 K팝 스타들의 무대용 한복이 각각의 자태를 뽐낸다. 다른 듯하면서 묘하게 통한다.

#예올 ‘통영 송병문家 복식 기증전’

통영 송병문家 복식 기증전 #예올 북촌가서 100년 간직 20점 공개 #“양복의 실용성 한복에 응용 실감” #‘케이팝X한복’전 #DDP서 K팝 8팀 공연 의상 전시 #“신한류 산업으로 성장 가능성 보여”

“친정 어머니는 봄가을이면 조선 시대 나비장에 잘 담아뒀던 한복들을 꺼내 바람을 씌워주고(거풍), 틈새에 켜켜이 한약재를 넣어 다시 조심스레 보관해오셨어요.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 아버지 옷들을 한 번도 땅바닥에 놓은 적이 없으셨죠. 의자에 걸치거나 옷걸이에 걸고 애지중지하셨어요.”

여인의 저고리 홍색 고름은 지아비가 있고, 남색 끝동은 아들을 낳았다는 표시. [사진 예올]

여인의 저고리 홍색 고름은 지아비가 있고, 남색 끝동은 아들을 낳았다는 표시. [사진 예올]

서울 예올 북촌가·한옥에서 5월 29일까지 진행되는 ‘통영 송병문家 복식 기증전’에 한복을 내놓은 송유숙(73)씨의 말에는 조상의 유품에 대한 사랑이 절절했다. 송씨는 할아버지 송병문(1886∼1945), 아버지 송경훤(1925∼1994), 어머니 박필순(1925∼2019)씨의 옷 등 4대에 걸쳐 100년 간 간직해온 100벌을 3년 전 재단법인 예올에 기증했다. 예올은 박경자 경운박물관 부관장, 김영재 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과 함께 조사 연구 끝에 이 중 20벌을 추려 지난 14일 전시를 시작했다.

박 부관장은 “모두 근대 한복들인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한복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알 수 있는 귀한 유물들”이라며 “당시는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라 신문물 도입이 빨랐던 통영 송병문 가문의 복식을 통해 서양 기법으로 직조하거나 수입했던 직물이 한복에 어떻게 쓰였는지, 또 양복의 실용성을 한복에 어떻게 응용했는지 등을 알 수 있어 한국 복식사에 가치가 크다”고 했다. 예를 들어 번아웃(Burnout)은 성질이 다른 두 가지 실로 직조해 무늬 부분을 녹여내는 기법으로 유럽에선 주로 블라우스를 만들 때 쓰이는데, 이번 전시에선 전통 문양인 수자표주박문을 새긴 것을 볼 수 있다.

암청록색에 금색 모란문을 넣은 1940년대 남성 상의. [사진 예올]

암청록색에 금색 모란문을 넣은 1940년대 남성 상의. [사진 예올]

김 학예연구관은 “남자 두루마기 고름의 고(리본 모양 매듭)를 길게 해 잘 풀리지 않도록 하는 등 실용성을 강조한 부분도 두드러진 점”이라고 했다. 한복감으로 양복 조끼를 지어 양복 단추를 달고, 괘종시계 걸이까지 만든 것도 흥미롭다. 양복 겉감과 안감의 대비되는 색감과 디자인으로 유명한 영국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도 놀랄 만한 한복 안·겉감의 매력적인 조합도 눈여겨 볼만하다.

여성 저고리에도 미처 몰랐던 이야기가 있다. 남색 끝동에 자주 고름을 단 저고리는 반가 여인의 격식을 갖춘 옷차림으로 필수 혼수품이다. 특히 홍색 고름은 지아비가 있다는 표시이며 남색 끝동은 아들을 낳았다는 표시라고 한다. 작은 실꼬리가 나풀거리는 여성 한복은 미처 바느질 정리를 못 한 게 아니라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진솔)이라는 얘기 역시 흥미롭다. 송씨는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오신 혼수인데 아마 아끼시느라 못 입었던 것 같다”고 했다.

기증 한복의 문양·소재를 재현해 디자이너 오유경이 현대인의 일상복을 만들었다. [사진 예올]

기증 한복의 문양·소재를 재현해 디자이너 오유경이 현대인의 일상복을 만들었다. [사진 예올]

할아버지의 옷은 여러 벌 있지만 할머니 김귀씨의 유물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이라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당신이 입었던 옷을 주변 분들에게 나눠주셨다. 반면 할아버지 옷은 며느리에게 잘 보관하라는 당부를 남겼다”고 전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00여 벌의 옷이 고스란히 보관돼온 건 모두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정성 덕분이다.

기증 한복의 문양·소재를 재현해 디자이너 오유경이 현대인의 일상복을 만들었다. [사진 예올]

기증 한복의 문양·소재를 재현해 디자이너 오유경이 현대인의 일상복을 만들었다. [사진 예올]

전시를 총괄한 서영희 아트 디렉터는  “처음에는 밋밋한 일상복이라 이런 걸로 어떻게 전시를 하나 생각했는데, 학예사님들의 설명을 들을수록 감춰진 멋이 눈에 띄었다”며 “트렌드만 쫓아가는 패션업계에서 진짜 좋은 옷은 무엇인지, 오래 남을 만한 고급스러운 옷감이 왜 중요한지 새삼 공부가 됐다”고 했다. 서씨는 오유경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이 아름다운 옷감과 문양을 재현해 셔츠·스커트·코트 등 현대인의 일상복을 만들어 전시장을 채웠다. 무료.

# DDP ‘케이팝X한복’전

21일 오후 서울 DDP 살림관 ‘D숲’. 투명 플라스틱 4면체 안에 서 있는 민머리 마네킹이 걸친 옷은 방탄소년단(BTS) 슈가가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서 공연할 때 입은 실크 한복 슈트다. 한국 문화 알리기 작업에 한창인 ‘리을(Rieul)’의 김리을(본명 김종원·29) 디자이너가 5년 동안 품어왔다는 아이디어가 구현된 옷이다. 2020년 미국 NBC ‘지미 팰런 투나잇’에서 이 옷을 입은 공연 영상이 공개되면서 이슈가 됐다. 그 옆에는 래퍼 지코가 글로벌 콜라 광고에서 입었던 파란색 한복 슈트도 볼 수 있다. 역시 리을의 작품이다. 한복 원단 슈트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김리을 디자이너는 “지코 의상은 남자 두루마기용 원단으로, 슈가 의상은 남자 저고리용 원단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한복진흥센터와 서울디자인재단 공동주관으로 1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DDP 살림관에서 열리고 있는 ‘케이팝X한복’에서는 BTS와 지코 외에 골든차일드·모모랜드·에이티즈·오마이걸·청하·카드(가나다순) 등 총 8개 팀이 뮤직비디오·무대·CF 등에서 실제 입었던 한복 25벌을 만나볼 수 있다. 리을 외에 기로에·단하주단·리슬·시지엔이·차이킴·혜온(가나다순) 등 총 7개 한복 브랜드가 참여했다.

황이슬 디자이너의 ‘사폭 슬랙스’를 입고 공연하는 BTS 지민. [사진 마이티제이, 리슬]

황이슬 디자이너의 ‘사폭 슬랙스’를 입고 공연하는 BTS 지민. [사진 마이티제이, 리슬]

BTS 지민이 2018 멜론 뮤직어워드 무대에서 입었던 ‘사폭 슬랙스’도 전시됐다. 사폭 슬랙스는 남성 한복 바지인 사폭 바지와 서양의 슬랙스를 결합한 스타일로 ‘리슬(Leesle)’의 황이슬(35) 디자이너가 새롭게 만든 옷이다. 황 디자이너는 “당시 BTS의 스타일리스트가 ‘동작이 크고 격렬한 안무를 소화할 수 있는 바지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제작한 옷”이라고 말했다.

황이슬 디자이너의 ‘사폭 슬랙스’. [사진 리슬]

황이슬 디자이너의 ‘사폭 슬랙스’. [사진 리슬]

최근 남미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혼성그룹 ‘카드(KARD)’의 의상도 황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그는 “이 옷은 기획 단계부터 디자인에 가수들이 참가해 함께 만든 옷”이라며 “열정적인 남미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조선시대 무관의 복식인 철릭을 이용한 로브, 배꼽티처럼 길이가 짧은 저고리, 도포에서 착안한 코트로 화려함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혼성그룹 ‘카드’를 위한 황이슬 디자이너의 한복 의상. [사진 리슬]

혼성그룹 ‘카드’를 위한 황이슬 디자이너의 한복 의상. [사진 리슬]

지난 1월 제35회 골든디스크어워즈에서 오마이걸이 입고 나온 ‘단하주단(디자이너 김단하)’의 의상은 단청 문양을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또 가수 청하가 패션지 보그 2020년 12월호 화보를 찍을 때 입었던 ‘차이킴(디자이너 김영진)’의 의상, ‘몽유도원’을 주제로 모모랜드의 낸시와 나윤이 제작에 참여한 ‘혜온’(디자이너 권혜진)의 화보용 의상도 볼거리.

문화체육관광부 이진식 문화정책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복이 보여주는 현대적 아름다움과 신한류 산업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보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무료지만 사전 예약을 통해 시간당 50명만 입장할 수 있다.

정형모 전문기자·서정민 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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