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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70대로 분장하고 서로 바라보며 알게 되는 것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97)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같은 질문을 바탕으로 궁금한 나의 미래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컨셉의 프로그램이 몇 년 전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아보면서 지금의 소중함을 느껴보자. 그래서 조금은 덜 후회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죠.

당시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러 패널 가운데 당시 신혼 8개월 차였던 가수 이석훈 씨와 부인 최선아 씨의 이야기가 최근 한 포털사이트에 다시 소개되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40년 후로 미래여행을 떠났죠. 그리고 73세가 된 이석훈은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했었던 장소에서 두 번째 프러포즈를 준비했습니다. 70세가 된 아내를 위한 이벤트였습니다.

노인으로 분장한 이석훈 씨와 최선아 씨 부부. [사진 MBC '미래일기']

노인으로 분장한 이석훈 씨와 최선아 씨 부부. [사진 MBC '미래일기']

먼저 70대 노인으로 분장을 마친 남편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연신 얼굴을 만져봅니다. 거울 속 40년 후 자신을 보고 쉽게 말을 잇지 못합니다. 나인 듯 나인 것 같지 않은 모습이 낯설기만 합니다. 분장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세월의 흐름이 그대로 얼굴에 담긴 모습에 웃음이 났다가도 당황스러움이 표정에 그대로 묻어납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에 신랑이 실망하면 어떡하나 귀여운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말자 생각합니다.

이벤트를 준비하던 남편이 잠시 방을 나선 사이 아내는 남편과 약속한 장소에 들어섭니다. 문을 등지고 창문을 바라보던 사이 남편은 들어서고 아내는 쉽게 뒤돌아보지 못했죠. 문을 열고 들어선 남편 역시 백발이 된 아내의 뒷모습에 놀라 쉽게 다가서지 못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마주한 부부는 별다른 말 없이 서로를 꼭 안아줍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서로를 찬찬히 살피는데 멋쟁이 할머니, 멋쟁이 할아버지라 칭하며 웃음을 짓는 듯하던 부부의 눈에 눈물이 흐릅니다. 왜 눈물이 자꾸 나는지 모르겠다면서도 둘은 연신 눈물을 훔칩니다.

아내는 그날의 기억을 40년 만에 떨어져 지내던 남편과 만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죠. 그렇게 미래 여행을 마친 두 사람은 결혼해 그 나이까지 같이 사는 게 당연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또한 감사해야 하고 행복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겹쳐 보게 된 또 하나의 영상이 있습니다. 결혼 후 10년이 지나 두 딸을 가진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가족이기도 전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이들과 함께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내용의 영상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어쩐지 처음부터 함께였을 것 같지만 사실 각자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죠. 그리고 지금 보는 엄마, 아빠와는 다른 연예인 같은 젊고 근사한 모습에 아이들은 놀랍니다.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에 블랙핑크 같다며 웃음을 가득 짓습니다.

두 영상을 통해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을 떠올립니다. 모든 부부에게는 함께 지나온 과거와 한 치도 알 수 없는 미래가 있습니다. [사진 pixnio]

두 영상을 통해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을 떠올립니다. 모든 부부에게는 함께 지나온 과거와 한 치도 알 수 없는 미래가 있습니다. [사진 pixnio]

지금은 누구보다 가까운 부부도 처음은 누구보다 낯설기만 했죠. 아빠는 아내의 통화를 듣다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멀리 있어 자주 뵙지 못하는 할머니와의 통화를 옆에서 듣다 친절하고 예의 바른 여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 생각했죠. 엄마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급박한 순간에서도 평온한, 그래서 늘 차분하게 자신을 지켜주는 남자의 매력을 확인하며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마침 남편의 생일날 영상을 본 부부는 그때의 기억과 함께 만들어온 순간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함께 잘 지내온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두 영상을 통해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을 떠올립니다. 모든 부부에게는 함께 지나온 과거와 한 치도 알 수 없는 미래가 있습니다. 새삼 떠올려보는 과거와 가끔 생각해 보는 미래 속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요.

어쩌면 당연하게 주어지는 24시간, 그 시간 속 우리는 어떤 감정을 공유하고 있나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면, 어떤 순간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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