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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환자는 찬성, 의사는 반대…논란 뜨거운 ‘죽을 권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84)

천재는 요절한다는 얘기가 있다. 흔히 모차르트를 그 예로 든다. 사실 그는 35세에 세상을 떠났다.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요절했다는 표현이 맞다. 그러나 당시 인간의 평균수명은 34세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모차르트는 요절한 것이 아니라 평균수명 이상을 산 것이다. 그렇게 수명이 짧았나 생각하겠지만 19세기 말까지도 인간의 수명은 채 마흔이 되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의학의 발전과 양질의 영양 공급으로 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더니 요즘은 80세에 달한다. 1세기 만에 거의 두 배나 증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더 늘어날 수 있을까. 미래학자들은 건강관리만 잘한다면 125세까지 살 수 있다고 연구에서 밝히고 있다. 실제로 117세의 노인이 코로나에 확진되고도 이를 잘 극복해 화제가 되었다. 주인공은 프랑스 남부 툴룽의 앙드레 수녀다.

20세기 들어 의학의 발전과 양질의 영양 공급으로 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더니 요즘은 80세에 달한다. 1세기 만에 거의 두 배나 증가한 것이다. [사진 pixabay]

20세기 들어 의학의 발전과 양질의 영양 공급으로 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더니 요즘은 80세에 달한다. 1세기 만에 거의 두 배나 증가한 것이다. [사진 pixabay]

그는 올해 1월 16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요양원에서 다른 어르신들과 격리돼 홀로 지내왔는데 이제는 완전히 나았다고 전한다. 할머니는 코로나에 걸려 걱정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 걱정 안 돼, 난 죽음이 두렵지 않거든. 하지만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는 오빠, 아버지, 어머니와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가 100세가 넘었음에도 외부 강의도 자주 하고 저술 활동도 활발하다. 주위를 둘러봐도 90대에도 건강한 노인이 적지 않다. 그래서 요즘 미디어에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는 글이 게재되기도 한다. 그러나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은 남성이 80세, 여성은 86세다. 게다가 병이 없이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남녀 모두 아직 65세에 불과하다.

이는 과거보다 오래 살기는 하지만 각종 질환을 앓고 사는 기간이 길어져 결국에는 노년층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 모르겠지만 고통 속에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면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100세라는 말에 혹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고 인생 후반을 설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전반기 삶이 타의에 의해 해야만 했던 일을 한 시기라면 후반기 삶은 자의에 의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기다. 취미 활동을 선택할 때도 남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을 그저 구경만 하는 TV 시청 같은 수동적 취미보다 직접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악기연주, 글쓰기 같은 능동적 취미가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이렇듯 무슨 일이든 자기가 주도해야 성과도 높고 만족도 크다.

후반기 삶을 마무리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임종 막바지까지 연명의료에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의연하게 세상을 떠날 것인가. 평소 이렇게 성찰하며 자신의 임종을 그려보는 것도 좋다. 죽음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으면 임종 후 자식들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 다만 태어날 때도 그렇지만 죽을 때도 주위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스위스에서는 일찍이 의사의 도움으로 생을 마감하는 의사조력사에 주목했다. 처음에는 비가역적인 상황에 돌입한 불치병 환자가 대상이었으나 나중에는 불치병이 아니더라도 그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런 의사조력사는 점차 이웃 나라로 전파되어 지금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호주 일부 주에서 시행하고 있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이유는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어서다. [사진 pixabay]

안락사를 지지하는 이유는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어서다. [사진 pixabay]

2019년 어느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 80.7%가 안락사를 지지하고 있다. 조사기관은 다르지만 2016년에는 66.5%가 안락사에 찬성한다고 손을 들었다. 이렇게 안락사를 지지하는 비중이 늘어난 현상은 1인 가구가 증가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힘들게 고통을 감수하기보다 의사의 도움을 받으며 임종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이유로는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두 번째 이유는 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안락사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경제적 이유로 안락사에 내몰리거나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 경시 풍조도 우려 사항이다. 특히 의료계나 법조계에서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이런 차이는 환자나 가족들은 당사자 관점에서 생각하는데 의료인이나 법조인은 제3자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어느 병에 대한 치료방법을 놓고 고민이 될 때 좋은 방법이 있다. 주치의에게 당신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의사도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고 자문하는 것도 필요하다. 삶의 막바지에서 고민할 때도 여전히 유용한 질문이다. 2018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이 제정된 것은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이 진일보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서구처럼 안락사 도입 문제를 공론화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적절한 시기라 생각된다. 물론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논의는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다.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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